영상일기

동백꽃을 찾아서

차보살 다림화 2013. 3. 14. 23:13

 

남도 답사 일번지는 월출산 자락에서부터

해남까지, 곳곳에 문화유적과 풍경 좋은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이

가장 으뜸입니다.

마음에 가까이 있는 그곳이라서 불현듯 나선 길이어서

그 길만 산책하며 옛날 다산과 혜장 스님의 지기지우의 뜻을

음미하며 걸었습니다.

숲이 울창하여 그곳 동백나무는 키가 훤칠하게 클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애틋하게 올려다 보는 맛이 있지요.

 

 

 

다산 초당 오르는 길

 

오랜 세월 나무 뿌리는 사람들의 발 디딤돌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무심히 나무의 뿌리를 밟고 오릅니다.

 

고사목이 된 나무 등걸은 이제 포토존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더군요.

 

 

 

 

전에는 없던 서재가 지어졌습니다.

 

초당 안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영전을 모셔두고 방문은 열려 있습니다.

다녀가는 사람들이 참배가 연이었습니다.

 

 

 

 

젊었을 때 이 초당에 앉아서 찍은 사진이 지금도 있는데.

그 때는 백련사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에 이 초당으로 넘어왔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시절이라 나무꾼이나 드나드는 길이었을 것 같았지요.

다산 선생이 백력사를 오갔던 때는 수풀을 헤치고 다녀야 했겠지요. 그때로부터

사람의 발길이 많아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40대 차유적지 답사차 이곳을 다녀가면서 앉았던 그 마루에 다시 앉아보는 격세지감을 맛보면서...

초당 뒤로 가면 다산이 손수 새겼다는 '정석'이란 두 글자에 바위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돌샘이 있습니다.

 

 

 

 차를 달이기 위하여 다산이 받아 마셨다는 석간수가 나오던 샘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맑은 물이 아닌지 모르겠네요. 샘물도 자주 퍼주어야

맑은 물이 나오나봅니다. 오랫동안 묻혀 있었지 싶습니다.

초당은 본래 초가집이었지만 후에 복원하는 과정에서 기와집이 되었지요.

앞으로 다시 초당으로 재복원할 계획을 했다는군요. 그 초당이 완성됐을 때

다시 와야겠습니다. 아니 그 전에도 철철이 이 길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전국에서 제가 첫째로 손꼽는 숲길입니다.

 

 

 

천일각에서 내려다 보는 강진만 구강포구가 한 눈에 펼쳐집니다.

다산도 유배시절 자주 이곳 바위에 걸터앉아 포구를 내다보면 흑산도에 유배간

형님 정약전을 그리워했겠지요. 흑산도에 유배간 정약전도 그냥 세월을 보내지는

않았지요. 귀중한 자료인 자산어보를 남겼으니 말입니다.

 

 

저 포구 옆으로는 지금은 자동차 길이 나 있고 단정하게 논이 개간되어 있지만,

옛날 처음 갔을때는 바로 강 가의 갈대밭이 한 풍경 더했습니다. 유홍준도

그때를 회상하면서 말한 바 있지요. 예술인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답사올 때

이 강가를 지나면 차를 세우고 갈대밭을 구경했다지요. 그리고 몇몇은 아예 갈대밭으로

덤벙덤벙 들어가면서 환호성을 지르는 바람에 시간을 보내게 되는 일이 왕왕 벌어진답니다.

답사일정이 어긋난다는 불평을 하면, 도시에 쩌들인 예술가들의 감성이 유홍준을 삿대질

하면서, 인문학하는 학삐리는 별수 없다고 농담을 퍼부었답니다. 그런 갈대밭 풍경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빼어난 포장길이랍니다.

 

 

與人不競心常靜 爲公無私夢亦閑 (여인불경심상정 위공무사몽역한)

남하고 경쟁하지 않으니 마음이 늘 고요하고,

공을 위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니 꿈조차 한가롭네.

<茶山 丁若鏞의 詩句>

 

초당에서 두 개 마루에 다시 '해월루'라는 팔각정이 세워져 있어 길손들이 쉬어가는 장소가 되고 있었습니다.

그 고개마루에 서서 숲속으로 백련사 전경이 보인답니다. 그리고는 아래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지금은 걷기 좋은 장치를 설치하어서 옛날 8,90년 대에 비하면 대로가 되었습니다.

 

 

산세 따라 절을 지어서인지 성을 쌓은 것처럼 절집에 어울리지 않는 축대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옛부터 저 포구로 들어오는 왜적들이 자주 출몰하여서 이 절은 방비를 잘 해야 했지요.

 

 

대웅보전의 저 글씨는 유명한 이광사의 글씨라서 볼만합니다. 사찰을 다니면 전각의 글씨체를 보는 맛도 한 재미입니다.

원교 이광사는 조선 후기 서화가인데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갈 때 대흥사의 현판을 보고 초의선사께 일침을 놓아

그 현판을 내렸다고 하지요. 후에 추사는 자신의 오만했던 태도를 뉘우치고 돌아올 때 다시 그 현판을 달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대흥사 현판의 글씨와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마당의 배롱나무 가지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같이 서보았습니다.

휘어진 가지가 이리저리 춤사위를 연출하는 것 같습니다. 고난의 여정 같기도 하고,

수행하는 승려의 말끔한 자태 같기도 한 배롱나무. 화사한 꽃이 만발할 때 이 나무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백련사 입구에서 걸어올라 오면 동백숲이 일주문을 대신합니다.

그리고 절 뒷편에도 이렇게 몇 백년 나이든 동백림이 울창합니다.

그 숲속을 거닐지 못하고 내려왔습니다. 언제나 다녀가는 길은 아쉬움을

남겨서 다시 오고 또 오는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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