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놀람 교향곡

차보살 다림화 2013. 3. 30. 02:05

 

 

 

 

 

‘놀람’ 교향곡

 

                                                                                조윤수

 

 

  새 봄의 첫 만남이었다. 춘삼월을 맞는 꽃샘바람에 놀라서인지 아기의 눈망울처럼 말똥거리는 보랏빛 별꽃이었다. 양지바른 풀밭에 등을 대고 앉아서 눈 맞춤 했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넘어가는 아늑한 숲길에서 봄 햇살을 맞으려 하늘을 우러러 갖 피어나는 동백꽃송이에 가슴이 설레었다. 우리도 봄 햇살 따라 무조건 남녘으로 달려갔던 길이었다.

  지난주에 자매들이 남녘의 친척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전주에 들렀다. 백련마을에서 전주 백련정식으로 점심을 먹고, 오목대에 올라 한옥마을 전경을 보고 모두 놀라워했다. 나목 사이로 보이는 한옥 마을 지붕이 더없이 좋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전의 사고 앞마당으로 들어서면서 환하게 피어있는 홍매 한 그루에 또 놀랐다. 담장 옆의 백매와 청매까지 꽃송이가 피어나려고 바람에 떨고 있었다. 바람이 생기를 실어 날라 꽃과 새싹이 트니 어찌 꽃 시샘을 마다하랴. 좋은 사진을 탐하는 사진작가들의 시선에 더욱 붉어지는 꽃송이들이었다.

 

 

 

 

 

 

 

 

 

 

 

 

 

 

 

 

 

 

 

 

  3월은 천 상 놀람의 연속이다. 햇살 좋은 오후 건지산 오송지 주변에서도 봄바람은 놀람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물속에서 물고기의 찰랑대는 소리, 지난 계절 피었던 연줄기와 빛바랜 갈대들의 춤사위가 펼쳐지는 동안 기러기 한 마리는 하늘을 선회한다. 부끄럼도 모른 채 하늘 해우소에서 볼일을 뿌리고 빈 하늘을 신나게 날아간다. 물오리들은 수면에 미끄러지듯 왈츠의 준비 동작 중이다. 물가의 둔덕에는 원추리의 새싹이 뾰족 뾰족 힘차게 땅을 뚫고 올라왔다. 참 놀라운 일이다. 저수지 건너편의 왕버들 나뭇가지에 연두색물이 오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유지사사록이다.

  ‘유지사사록(柳枝絲絲綠)’이라! 벤취에 앉아 건너편 버들가지 물빛이 아련히 피어나는 것을 보자니, 저절로 나오는 문자다. 산책 나온 한 남자도 벤취에 앉으면서 한 마디 거든다. 벌써 건너편 복숭아밭의 전경을 바라보면서 봄 그림을 그린다. 복사꽃이 피면 한 폭의 그림 같겠다고 해서 나는 다시 도화점점홍(桃花點點紅)이라! 그는 내 말귀를 모르는지 대구가 없이 봄이 익는 정취를 그 나름대로 말한다. 영락없이 그 싯구의 전경을 상상하고 있었다. 문득 이 싯귀가 나온 배경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온다. 고려 때 시중 김부식과 학사 정지상은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는데, 서로 앙숙이었다. 정지상이 지은 어느 싯귀가 마음에 들어 자기 시로 삼고자 했지만 정지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중에 묘청의 난에 연루되어 김부식은 정지상을 죽이고 말았다.

 

  김부식이 어느 봄날을 두고 시를 지었다.

  유지천사록(柳枝千絲綠) / 도화만점홍(桃花萬點紅), 버들 빛은 일천 실이 푸르고 / 복사꽃은 일만 점이 붉구나, 라고 하자, 갑자기 공중에서 정지상 귀신이 부식의 뺨을 치면서 말했단다. ‘일천 실인지, 일만 점인지 누가 세어 보았는가’ 왜 柳枝絲絲綠 / 桃花點點紅 이라 하지 않는가? 이렇게 늘 정지상은 문장에서만은 김부식보다 한 수 위였던 것 같다. 얼마나 매끄러운 구절인가. 봄마다 이 싯구를 읊기를 몇 봄이나 하게 될까 알 수 없다. 언제나 봄은 오고 또 올테니.

  벤취에 가만히 앉아 귀 기울이자니 땅 속에서, 눈앞에서 뒷산 숲속에서 새소리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공중에서 모든 소리가 조화하여 알 수 없는 교향곡이 되어 흐르는 것 같다. 자연에는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리듬이 있다. 그 리듬에 맞추어 운행하는 생명의 질서가 있다. 작곡가들은 세상의 경계를 초월하여 작업하는 것 같다. 자연이 그러하듯. 아침에 tv에서 들었던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은 자연 리듬의 어떤 부문일까. 걷기 나온 사람들의 발걸음도 활기한 반주다. 하이든이 봄기운을 표현하였는지는 전혀 모른다. 그림이든 음악이든 일단 발표한 뒤로는 감상자의 몫이거늘.

  하이든은 너무나 많은 교향곡을 지었기 때문에 구분하기 어려워지자 후세 사람들이 곡에 별명을 붙였다. ‘놀람’ 교향곡은 하이든이 영국에 머물 때 귀족들을 위하여 작곡한 것인데, 잔잔한 연주곡에 졸고 있는 귀족들을 깨우기 위하여 2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팀파니를 치는 소리를 넣어서 놀라게 하여 깨웠다고 한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란다. 아침에 지휘자의 해설에서도 2악장을 유심히 들어보라고 해서 저녁에 다시 들어보았다. 예술에 있어서 형식과 내용,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통해 완벽한 아름다움을 실현하려는 것이 고전주의의 이상이었다. 음악에서도 전체적인 조화와 통일을 추구하는 형식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놀람' 교향곡도 그런 짜임에 알맞은 것 같다. 배경이 되는 악기와 멜로디가 되는 악기의 조화로움이 새봄의 생명을 깨우는 듯한 느낌. 순전히 나만의 감상법이다. 서서히 봄을 노크하는 듯하다가도 강렬한 악센트를 주면서 생기 넘치는 기운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매력적인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반복하여 경쾌하다. 교향곡이야말로 자연의 조화로움을 잘 표현하는 형식이 아닌가.

 

  매일이 다르다. 오목대 지나는 길 가의 양 쪽 절벽에서 개나리가 가지마다 샛노란 꽃줄기를 늘어트린다. 도열하여 오가는 차량을 손 저어 맞고 전송하는 것 같다. 어제와 다른 모습에 또 놀란다. 오늘 전북대학교 정문으로 들어서자 오른쪽 언덕이 환하다. 매화인 듯하다. 수업 시간이 남아서 그 꽃동산을 찾아 갔다. 매화 몇 그루가 푸른 하늘의 흰 구름과 어울려 있는 그림이다. 진달래까지 붉게 피어서 가까이 가서 얼굴을 갖다 대어 본다. 그림을 그려도 그렇게 그릴 수도 없고 글로도 꽃향기 퍼지는 언덕은 그릴 수가 없다.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을 악보로 그려내는 작곡가야말로 최고의 예술가인가? 죽은듯한 나뭇가지에 새순이 트고, 고목 가지 끝에서 터지는 매화꽃, 환희의 아픈 소리까지, 자연 만물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소리를 콩나물 대가리에 표현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아직은 요한스트라우스 ‘봄의 소리 왈츠’를 연주하기에는 이르다. '놀람' 교향곡의 전주에 부스스 졸리던 천지가 놀라 완전히 깨어나면 준비한 왈츠의 가락이 파도처럼 일렁거릴 것이다. 아무리 자연이 아름답다 해도 사람이 그 속에 어울릴 수 없다면 무슨 기쁨이 있을까. 자연의 심포니에 사람의 속내도 참으로 어울리는 모습이 되면 놀라운 우주의 심포니가 되지 않을까. 볼 것이 많은 봄이어도 두 발목이 뒤집어질 일은 없으리라. 칠십 고개 마루에서 스물 몇 살의 무량한 봄 속을 거니는 기쁨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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