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자연(自然)을 사랑한 詩人 도연명(陶淵明)
중국 송대(宋代)의 대표적인 시인 도연명(陶淵明:365~427년)은 동진(東晉) 말기에 태어나 남조(南朝)의 송(宋)나라 초기에 살았던 詩人이다. 그의 위대함을 알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도연명(陶淵明)을 두고 중국 문학사(文學史)를 통털어 가장 조화롭고 원만하고 유순한 삶을 살다 간
도연명(陶淵明)은 애정관(愛情觀) 또한 모범적인 사람 였다. 당시의 많은 명사(名士)들은 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에 달하는 첩(妾)을 두고 사는 것이 보통였지만 그는 그리하지 않았다. 육체적인 사랑도 지나치지 않게 적절하게 절재하며 평생을 살았다. 그렇다고 큰 이상을 품고 학처럼 고고하게 살아가는 금욕주의자(禁慾主義者)같은 삶을 산 건 결코 아니다. 높은 정신적 품성까지 갖춰 그 조화가 잘 어우러진 사람 였었다.
가장 이상적인 남성상(男性象)을 말하자면, 그에 초연(初演)하지만,
도연명(陶淵明)의 인생을 돌아보면 그의 詩처럼 지극히 순리적이고 자연적이며 진정한 자유(自由)를 알아 그것을 만끽하며 넉넉하고 풍요로운 마음으로 살다 간, 원인 모를 불이 나, 집과 세간을 다 태워 가족을 데리고 심양 근교 남촌(南村)으로 이사를 했으며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서기 405년 평택현의 지사(知事)자리를 그만두고 낙향하며 지은 詩가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귀거래사(歸去來辭)"이다. 소리치곤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자유로운 삶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짙게 녹아 있다. 귀거래사(歸去來辭)는 한시의 초기 작품이라 후기에 생긴 한시(漢詩) 형식(形式)과는 차이가 있다. 그는 관직을 그만 둔 후에도 여러 번 조정의 관직(官職) 권유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천하의 근본이며 땅의 진정한 주인인 농부로 살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詩는 사언체(四言體) 9수, 오언체(五言體) 115수와 산문 11편이 전해지고 있는데, 고요하고 자연스러운 읊조림과 멀리 세속의 티끌을 넘어서서
그는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이나 현실 부정적(否政的)인 사고와 미래 지향적인 사고만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처럼
이상(理想)과 현실(現實)이 잘 조화 된 그의 인생관(人生觀)에서, 한 걸음 빗겨서서, 맑은 아침 홀로 산책을 하거나 밭 가에 지팡이를 꽂아두고 잡초를 뽑고 곡식을 돌보는, 근본적인 삶을 택해 살았다. 도연명(陶淵明)... 그의 人生 목적(目的)은 자연(自然)과 인간(人間)의 아름다운 조화(調和)였지,
* 다음(DAUM) 네트워크에 저장 된 한자(漢子) 글자 수가 부족하여 싯귀절 중 몇 글자를 쓸 수가 없었다. 부득이 한글로 채워넣은 점은 씁쓸할 따름이니 이해를 부탁드리는 바이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의 전원 황폐해지려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舟遙遙以輕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동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창에 기댄 체 의기양양 해지니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짝 돌아나가고,
歸去來兮 (귀거래혜) 나 돌아왔도다!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 일러주니,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 세상 머물날 얼마나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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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註) -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는
즉 인위적 행위나 어느 틀과 법에 전혀 얽매임이 없는 완전한 자연상태를 말하며, 도연명(陶淵明)에 영향을 준 무위사상(無爲思想)을 좀 더 풀자면...
노자(老子) 80장에 나오는 이 말이 그 원류로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이란 말로, 문명의 발달이 없는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이 이상적 사회요, 이상적 국가임을 일컫는 말이다.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고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가사상(道家思想)이니 유가사상(儒家思想)이니 혹은 법가(法家)니 묵가(墨家)니 하는 사상들이
도연명(陶淵明)은 그의 시와 산문에서 이르듯
아무튼, 도연명(陶淵明)이 상상했던 도원경(桃源境)의 영향을 많이 받은것으로,
첫째로,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화가 안견(安堅)의 그림으로 유명한 안평대군의 표제와 발문을 비롯해, 신숙주(申叔舟),정인지(鄭麟趾),박팽년(朴彭年),성삼문(成三問) 등
십여 년 전 한국에 건너와 중앙박물관에서 전시회를 연 적이 있다.)
둘째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은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쓴 소설
나는 힐튼의 "잃어버린 지평선" 소설을 고등학교 1학년 때 문고판으로 읽었던 기억이 또렷하다. 출간되자마자 베스트 셀러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새롭다 고교 2학년 때 구정을 맞아 시골집엘 갔는데, 마침 안방의 흑백TV에서 카프카 감독의 영화 "잃어버린 지평선"이 한창 방영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아름다운 감동으로 남아있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싱가포르의 고급 호텔 이름을 비롯하여,
도연명(陶淵明)은 수도 없이 많은 영향을 문학사(文學史)에 끼쳤다. 그가 차지하는 문학(文學)과 예술(藝術)에서의 비중은 실로 커다란 거인(巨人)의 발자취라고 해도 전혀 그릇된 말이 아니다. 도연명(陶淵明)이 꿈꿨던 세외도원(世外桃源)의 세상! 그 이상(理想)과 정서(情緖)가 담긴 도화원기(桃花源記) 서문(序文)과 본시(本詩)를 여기 소개 한다.
桃花源記 序文 (도화원기 서문)
晉太元中 武陵人捕魚爲業 緣溪行 忘路之遠近 忽達桃花林 (진태원중 무릉인포어위업 연계행 망로지원근 홀달도화림) 진(晉)나라 태원년간에 무릉 사람으로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물길을 따라 갔다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도 모를 무렵 홀연히 복숭아꽃 숲이 눈앞에 나타났다.
來岸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빈紛 (내안수백보 중무잡수 방초선미 낙영빈분) 양쪽 강을 끼고 수백 보의 거리에 온통 복숭아나무뿐이며 다른 잡목은 하나도 없었다. 또한 향기로운 풀들이 싱싱하고 아름답게 자랐고 복숭아 꽃잎이 펄펄 바람에 날려 떨어지고 있었다.
漁人甚異之 復前行 欲窮其林. 林盡水源便得一山. 山有小口 방불若有光. 便舍船從口入. (어인심이지 부전행 욕궁기림. 임진수원편득일산. 산유소구 방불약유광. 편사선종구입.) 어부는 이상하게 여기고 계속 앞으로 나가 복숭아 숲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자 했다.
初極狹 재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良. (초극협 재통인 부행수십보 활연개량.) 동굴은 처음에는 몹시 좁아 간신히 사람이 통과할 수 있었으나 수십 보를 더 나가자 갑자기 탁 트이고 넓어졌다.
土地平曠 屋舍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 鷄犬相聞. (토지평광 옥사엄연 유량전미지상죽지속. 천맥교통 계견상문.) 其中往來種作男女衣著 悉如外人 黃髮垂초 竝怡然自樂. (기중왕래종작남여의저 실여외인 황발수초 병이연자락.) 토지가 평평하니 넓고 집들이 정연하게 섰으며 기름진 논밭과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와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 노인이나 어린아이나 다들 즐거운 듯 안락하게 보였다.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鷄作食. (견어인 내대경 문소종래 구답지 편요환가 설주살계작식.) 사람들은 어부를 보자 크게 놀라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自云: 先世避秦大亂 率妻子邑人來此絶境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자운: 선세피진대란 솔처자읍인래차절경불부출언 수여외인간격.) 問今世何世乃不知有漢 無論魏晉. 此人一爲具言 所聞皆歎완. (문금세하세내부지유한 무론위진. 차인일위구언 소문개탄완.) 집 주인이 이르길 "우리 선조가 진(秦)나라 때 난을 피해 처자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 停數日 辭去.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道也. (여인각부연지기가 개출주식. 정수일 사거. 차중인어운: 부족위외인도야.)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어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술과 밥을 대접했다. (기출 득기선 편부향로 처처지지. 급군하 예태수 설여차.) 어부는 마을을 벗어나와 배를 얻어타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군데 표식을 했다. 읍에 이르자 태수를 찾아가 그대로 보고를 했다.
太守卽遣人隨其往 尋向所誌 遂迷不復得路. (태수즉견인수기왕 심향소지 수미불부득로.) 태수는 즉시 사람을 보내 어부가 표식한 곳을 찾아가게 했으나 결국 길을 잃고 도화원으로 통하는 길을 찾지 못하였다.
ㅡ 서문 끝 ㅡ
桃花源記 本詩 (도화원기 본시)
賢者避其世(현자피기세): 현자들이 세상에서 몸을 숨겼다 黃綺之商山(황기지상산): 은둔자들도 상산으로 갔지만 伊人亦云逝(이인역운서): 그들 역시 이곳으로 피해 왔더라
往迹浸復湮(왕적침복인): 은신해 갔던 발자욱은 묻혀 지워졌고 來逕遂蕪廢(내경수무폐): 도화원으로 오던 길도 황폐해 버렸다 相命肆農耕(상명사농경): 그들은 서로 도와 농사에 힘을 쏟고 日入從所憩(일입종소게): 해가 지면 편하게 쉬더라
桑竹垂餘蔭(상죽수여음): 뽕과 대나무가 무성하여 그늘이 짙고 菽稷隨時藝(숙직수시예): 콩과 기장을 때를 따라 심더라 春蠶收長絲(춘잠수장사): 봄 누에 쳐서 비단실 거두고 秋熟靡王稅(추숙미왕세): 가을 추수에 세금 안 바치더라
荒路曖交通(황로애교통): 황폐한 길이 희미하게 틔였고 鷄犬互鳴吠(계견호명폐): 닭과 새가 서로 우짖는다 俎豆猶古法(조두유고법): 제사도 여전히 옛법 그대로이고 衣裳無新製(의상무신제): 옷도 새로운 형식을 따르지 않더라
童孺縱行歌(동유종행가): 어린아이들은 멋대로 길에서 노래하고 斑白歡游詣(반백환유예): 백발 노인들은 즐겁게 서로 찾는다 草榮識節和(초영식절화): 풀 자라니 온화한 봄철임을 알고 木衰知風?(목쇠지풍려): 나무 시들자 바람이 찬 겨울임을 아노라
雖無紀歷志(수무기력지): 비록 달력 같은 기록은 없어도 四時自成歲(사시자성세): 사계절 변천으로 일년을 알 수 있노라 怡然有餘樂(이연유여락): 기쁜 낯으로 마냥 즐겁게 살고 于何勞智慧(우하노지혜): 애를 써서 꾀나 재간을 피우지도 않는다
奇?隱五百(기종은오백): 흔적 없이 가리워진지 오백년 만에 一朝敞神界(일조창신계): 홀연히 신비의 세계가 나타났으나 淳薄旣異源(순박기이원): 순박한 도원경과 야박한 속세가 맞지 않아 旋復還幽蔽(선부환유폐): 이내 다시 신비 속으로 깊이 숨었노라
借問游方士(차문유방사): 잠시 속세에 노는 사람에게 묻노니 焉測塵?外(언측진효외): 먼지와 소음 없는 신비경을 아는가? 願言?輕風(원언섭경풍): 바라건대 사뿐히 바람을 타고 高擧尋吾契(고거심오계): 높이 올라 나의 이상향을 찾으려 하노라
- 끝 - * 진시황은 성씨(性氏)가 ?(영)이고 이름이 政(정)이다. 따라서 본시 윗 부분 첫머리에 영씨(?氏)란 진(秦)나라 왕들의 성씨를 일컷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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