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전설의 연꽃

차보살 다림화 2015. 7. 31. 18:24

 

 

전설의 연꽃

 

조윤수

 

 

대하연(大賀蓮, 오오가 하스)

대하연은 연꽃 애호가들 사이에 전설의 연꽃으로 알려진 세계 최고, 가장 오래 된 꽃이다. 일본의 식물학자인 오오가 이치로 박사가 19513월 지바시 도쿄대학 운동장 유적지에서 2000년 전의 연 씨 3개를 발굴하여 그 해 5, 1개를 발아시키는 데 성공, 다음해인 1952718일 분홍색 꽃을 피움으로써 탄생하였다.

이 연꽃은 발굴자의 이름을 따 오오가 하스라 명명되었으며, 연 씨가 지구에서 가장 오랫동안 종자의 생명력을 지닌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당시 세계적인 큰 반향을 일으켰다. 부여 궁남지의 대하연은 이석호 전 부여문화원장이 1973년 우리나라 최초로 일본에서 들여와 재배해오다가 2008520, 부여군에 기증하여 심어진 것이다.“ 궁남지에 붙여진 팻말의 내용이었다.

그 무렵 나도 궁남지에 갔었지만 몇 배미의 논에 연밭이 있어 새벽에 걸어본 적이 있다. 그때 대하연의 팻말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당시에는 둘레에 목책을 두르고 키웠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뒤부터 부여군에서는 궁남지를 대대적으로 넓게 조성하여 지금은 한 번에 둘러보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연밭이 주제별로 구성되었다. 해마다, 연꽃축제가 백제문화제보다 더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 익산 연동리 연꽃 앞에서 우리는 서정주 시인의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를 천천히 읊어보았다.

섭섭하게 /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 한 두 철 전 /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지난 724일 전북일보 <금요수필>에 내 수필이 실렸다.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

좀 난감했다. 원고 길이도 1,600자에 제한된 글이었기 때문이다. 계절 감각을 생각해서 마침 연꽃이 만발한 시기라 그동안의 연꽃 기억을 압축하여 되살려내 보았다.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시의 제목을 빌렸다. 그 글의 마지막 대목이 이렇다. ‘천년 된 연실에서도 싹을 틔워낸다는 연꽃의 꿈을 연화 세상에 와서 다시 읽는다. 진흙 바닥 같은 삶의 터전에서 연심(蓮心)을 챙겨본다.’

글을 잘 보았다는 지인들의 격려를 전화와 문자로 받았는데, 그 중 한 지인, 익산에서 문화해설사로 활동한 분의 전화를 받았다. 바로 그 천년 된 연실에서 피어난 연꽃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보도를 통하여 소식을 알았을 뿐, 그 연꽃를 볼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바로 궁남지의 대하연을 기증했던 전 부여문화원장 이석호 선생님 댁에 가면 그 연꽃이 피는데, 언젠가 여름에 꽃을 본적이 있다고 했다. 이석호 선생님 댁에 연락하여 화요일에 집에 계신다고 해서 약속을 잡았다.

백제의 고도, 부여는 언제나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아닌가. 가지 않으면 오지도 못하는 연인 같이 한곳에 붙박여 있어야 하는 운명의 정림사지 5층 석탑과 궁남지, 부소산성, 백마강 등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7월에 부여의 백제유적지와 익산 미륵사지, 왕궁리 유적 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부여 읍내에는 곳곳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선생님 댁은 부여 외각인 듯, 앞으로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한옥 지붕을 하고 있었다. 저수지 가에도 연꽃이 한창이었다. 넓은 호수에 한두 척의 배가 떠있는, 연꽃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솟을대문보다 직접 만들었다는 나뭇가지로 엮은 쪽문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정원을 꾸미고 있는 각가지 형상의 수석은 마당 안에 우주와 지구를 포함하여 한국의 이미지까지 표현했다고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여름꽃들도 화사하게 피고 있었다. 전설의 대하연의 종자가 이어져 와서 핀 연꽃은 물론이거니와 돌확에 수련, 대백합, 금강초롱, 서양의 사프란과 야래향까지.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백송과 호피송(호랑이 껍질), 특히 덩굴을 타고 오르는 인동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일제 시대 때부터 겪었던 고초들과 일생의 추억들이 집 전체에 담겨 있었다. 선생님의 삶 자체가 인동나무 같았다. 인동초는 백제의 문양이었다. 백제 왕관과 백제대향로에 그 인동문양이 새겨 있다. 인동은 백제문화의 상징이었다.

 

선생님은 평생 백제의 와당을 연구하였다. 백 가지 문양의 와당을 모으기로 하였다. 드디어 백 가지 문양의 와당이 모였을 때, 그것을 탁본하여 꾸민 족자를 이 층 계단 위 벽에 걸었다. 선생님은 자신을 고아원(古瓦院) 원장이라고 불렀단다. 그리고 천 년 전의 와당을 종이에 탁본하여 만든 부채의 바람을 쐐주면서, ‘이게 천 년 전의 바람이야!’ 하셨다. 평생 모은 2천여 점의 와당을 한남대학교에 기증하였고, 한남대학교박물관에 가면 그 와당을 볼 수 있단다.

연꽃 문양의 수막새. 연꽃무늬가 변조된 전돌. 백제미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단다. 백 가지 문양의 와당은 백제미술의 정수를 담았다고나 할까. 실지의 연꽃잎은 얇지만, 와당에 표현한 연꽃은 풍선에 공기를 넣은 것처럼 탱탱하여 여인의 젖가슴 같은 생명력이 느껴진다. 연꽃은 이미 연꽃이 아니었다. 백제 와당이 아름다운 것은 지수(地水)화풍(火風)의 영기(靈氣)를 품은 생명력의 표현이어서이지 싶다.

기억 자로 된 집의 외곽 토방은 모두가 백제 전돌로 꾸몄으며, 쪽대문에 이어진 담장은 버려진 옛 기왓조각을 켜켜이 쌓아서 운치를 더했다. 정원에 우주의 신비가 숨겨진 듯한 돌들로 인하여 나무와 꽃들이 집과 어울려 더욱 아름다웠다. 예술로 승화된 연꽃 문양의 와당이 가득한 집 안팎과 활짝 핀 오오가 하스’. 천 년 전의 백제 고도의 한 마을에 있는 듯했다.

 

선생은 73년도에 도쿄대학에 <백제 와당>에 대한 강의 초청을 받았다. 한 시간 전에 도착하여 대학교의 대 정원을 산책했다. 연못 앞에서 한 팻말을 발견하였다. ‘오오가 하스였다. 한 시간 반의 강의를 마치고 총장실에서 차를 마셨다. 강의료를 주는 것을 거절했다. 의아해 하는 총장에게 선생은 강의료 대신에 오오가 하스를 한 뿌리 분양해주시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총장은 난처해했단다. 그것은 이사회의 결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사정했지만, 아쉽게도 포기했다. 비행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뜻밖에 종이로 포장한 물건을 받게 되었다. “아무 말 마시고 그냥 가져가세요.” 하면서 준 것은 오오가 하스연뿌리 하나였다. 소중히 간직하여 돌아와서 부소산성 아래의 집에 심었단다. 뒤에, 평생 모아온 선생의 문화재로 꾸민 지금의 기와집을 짓고, 해마다 2천 년 전의 꿈에서 깨어난 생명의 찬가를 들으며 백제의 르네상스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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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수분당' 안의 창문으로 내다본 풍경.

이 불꽃 모양의 창문은 백제 무령왕릉 속의 촛불 형상을 본떠서 만들었다.

절묘하게 집의 풍경에 운치를 더하고 있다.

 

 

현관에 앉아서. 내다본 풍경

 

 

 

옆에 '오오가 하스' 후손인 연꽃을 

 

 

 

작은 연못의 직계 자손인 오오가 하스는 빗방울이 맺혀 처연하도록 아련했다. 활짝 피어 한 세상을 열었다. 다음 세상을 이어갈 자방을 드러내었고 꽃잎이 하나 둘 열리다가 접혀서 고아한 자태다. 생명 보존의 끈질긴 일념으로 그 오랜 고독의 세월을 숨죽여 왔던가. 적멸의 세계에서 깨어난 모습,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꽃심을 내 가슴에 새겼다. 꽃잎 가장자리는 분홍색 띠를 두른 듯하지만 안 쪽으로 갈수록 하얀 빛이 되다가 연실의 연노란 색과 조화를 이룬다. 연꽃은 꽃과 동시에 연씨를 맺어 더욱 오묘한 생명의 꽃이다. 단 며칠 피었다 떨어지는 꽃자리 가운데 이미 씨가 자라고 있다.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 이후로 세세대대 화중군자로 사랑받고 있지 않는가.

처렴상정(處染常淨)의 꽃. 진흙 속에서부터 맑게 정화한 기운을 투과하는 숨구멍을 스스로 만든다. 꽃대 하나로 올곧게 올라와서 가지도 치지 않고 홀로 한 세상을 지키는 삶이다. 물론 모든 홍련의 모습은 그 색이 조금씩 달리하지만, 거의 같아서 어느 것이라도 천년의 생명을 이어오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열반(涅槃)적정(寂靜)의 웅축된 기운으로 피워낸 꽃이 아닌가. 선생의 별 정원에서 만난 대하연의 후손은 애틋한 신비감이 더했다. 옆에서 바라보면서도 총총한 그리움으로 밀려드는 감회에 젖는 것이리라

 

 

 

 

 

 

    

 

 

 

 

백제의 연꽃이 그리는 꿈을 오롯이 담은 듯,

정림사지 오층 석탑의 아름다움은 뭐라 말할까.

나무 조각을 다듬어 붙인 듯한 석탑, 사실 이 석탑은

목탑의 형식을 띤 석탑의 원조였던 미륵사지 석탑의 형식을

그대로 요약한 단아한 모습니다.  멀리서 보면 옥개석 밑의

몸돌이 허리 잘룩한 여인의 요염한 모습이랄까. 옥개석 상판의 양끝이

살짝 버선코처럼 치켜든 자태라니!

가까이 갈수록 압도당하는 근접할 수 없는 위엄도 서려있다.

아!  옆에 있어도 그리운 백제탑이여!

 

 

 

 

 

 

 

 

궁남지의 연꽃

 

백제 무왕 35년 왕궁의 남쪽 연못을 파서 20여 리 밖에서 물을 끌어다 채우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선인들이 사는 곳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을 볼 때 백제 무왕 때 만든 왕궁의 정원이어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연못이라고 본다.

궁남지 황연

 

 

인조 흰 장미를 심어놓았는데, 풍겨의 한몫을 하고 있다.

 

 

 

 

연꽃은 새벽에 보아야 그 피어나는 싱싱함을 볼 수 있다.

우리는 그 아침의 연꽃을 만나기 위하여 밤새 자동차에서 밤을 새운 적이 있다.

참, 아련한 그리움이 배어 있는 궁남지다.

 

'오오가 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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