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蓮) 바람
조윤수
연꽃 하나하나와 눈 맞춤 한다. 맑은 아침 연꽃을 만나러 연못에 왔다. 따끈한 햇볕이다.
연꽃을 같이 노래할 사람이 오고 있다. 이제 연밭의 연은 왕성하게 자라서 연못을 가득 메우고 있다. 여름의 절정을 연꽃과 함께 넘기게 되는 축복을 연꽃 만나러 온 바람에 보낸다. 홍련밭, 백련밭, 일찍 핀 연은 벌써 씨알이 햇살을 받아 새카맣게 익고 있다. 저렇게 각기 홀로인 채로 서로 어울려 자라고 익어간다.
연의 자태는 초연한 모습이다. 나는 벌써 온몸이 땀에 젖는데, 연잎에는 엊저녁에 받은 이슬이 보석처럼 담겨 있는 것도 있고, 이슬방울이 윤슬처럼 빛나는 잎도 많다. 아침햇살 속에 찬란하게 빛나는 생기, 꽃과 잎이 풍겨내는 생기에 절기를 잊는다. 땡볕을 돌며 연을 살펴보다 새삼 깊은 탄성이 가슴 밑에서 울려 퍼진다. 내 몸에 젖은 땀은 유슬처럼 빛나지도 못하고 아우성이다.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화엄경≫에서는 노사나불의 서원(誓願)과 수행에 의하여 현출된 이상적인 세계가 이 연화장 세계라고 보았다. 즉 세계의 맨 밑에 풍륜(風輪)이 있고 그 위에 향수해(香水海)가 있으며, 이 향수의 바다 속에 한 송이의 큰 연꽃이 있는데, 이 연꽃 속에 함장(含藏)되어 있는 세계라 한다.” 한없는 성덕(性德)을 갖춘 정인(正因)의 꽃이 연꽃이므로 이렇게 함장 되어 있는 것이 연화장세계라고 한다. 어찌하여 모든 부처는 연화대에 앉아 있는지를 알만하다. 불교에서 진리의 상징을 연화생기하는 모습으로 형상화하는 까닭이리라. 연꽃이 지닌 한없는 성덕의 진리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한 것 같다.
연화장세계, “부처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대원(大願)의 바람으로써 대비(大悲)의 바다를 지키고, 한없는 행(行)의 꽃을 나타내어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다 간직할 뿐 아니라, 염정(染淨)이 서로 걸림 없는 상태에 있는 세계라고 하였다.” 참으로 우러러 따를 만 하다.
연꽃이 저렇게 뜨거운 햇볕을 종일 받아내려면 어떤 힘으로 견뎌낼까. 동물도 식물도 그 개체가 살아가는 방법은 저마다의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다. 아름다움만 보고 흘려보냈기에 그 지혜를 잊고 있는 때가 많았다.
연은 물속에 발을 담그고 생명을 키운다. 그렇구나! 뿌리에도 자방 같은 구멍을 정교하게 만든다. 뿌리 전체에 연결하는 근육이 꽃문양으로 이어 있다. 겉 몸 근육 피부 속이 비어서 가볍다. 긴 연뿌리 하나는 마디로 연결하여 또 하나의 뿌리를 이어 뻗어간다. 또한 뿌리에서 발아한 꽃대나 잎대는 외줄기로 곧게 올라온다. 그 속이 또한 연뿌리의 구멍처럼 비어있다니, 진흙탕에서 정화한 생명력을 그 빈 숨구멍으로 끌어올리는 것아 아닌가! 물과 태양의 힘이다. 종일 그늘 한 점 없는 햇볕 아래 서 있으면서 아름다운 생명력을 발휘한다는 깨달음으로 환희심에 젖는다. 연은 뿌리에서부터 줄기, 꽃과 잎 전부를 이 세상에 공양한다. 연화장의 정신까지. 우리가 애용하지 않고 수행하지 않을 뿐.
연꽃을 피워내야 하리라. 내 생애에서도. 비라면 비, 눈이면 눈, 태풍이 와도 진흙탕 같은 현실이 뒤범벅되어 일상이 혼란할 때가 있다. 인간 세상은 복잡한 현상과 관계로 어지러울 때가 많다. 자연에 맞는 순리를 찾아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하리라. 몸의 세포마다 깊은 호흡으로 마음을 열고, 몸속의 구멍의 역할이 윤활하게 돌아가도록 살핀다. 또한, 피돌기가 잘 돌게 가꾸어야 하리라. 어디 사람 몸뿐이랴! 자신의 짐을 등에 짊어지고 가야 할 이 세상이라면, 마음에 연꽃의 지혜를 심을 일이다. 비어 있는 연의 대처럼. 가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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