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전주 사람의 김치 인심

차보살 다림화 2015. 9. 20. 14:50

 

 

 

 

 

 

전주 사람들의 김치 인심

 

조윤수

 

 

 

   비닐로 싼 네모난 그릇 위에 곱게 갠 하얀 손수건이 있다. 그릇을 꺼내 열고 보니 새로 담은 김치가 가득 들었다. 배추김치, 알타리무김치, 그리고 고들빼기김치까지다. 언니네 김치는 내 입맛에 딱 맞다. 너무 짜지도 맵지도 않고 서울김치 같은 약간 달면서도 삼삼한 감칠맛이 난다. 마침 밥을 하고 있던 중이라서 밥상을 차렸다. 자꾸만 김치가 먹고 싶어서 밥을 더 먹게 되었다.

   언니는 아파트의 건너편에 언니의 텃밭을 마련했다. 나는 밤늦게 공부하고 아침엔 늦잠 자기 일수 인데, 언니는 새벽기도 삼아 텃밭을 가꾸면서 생명의 원동력을 챙기는 것 같다. 며칠 전 언니의 텃밭에 가니까,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가 텃밭에 다 숨어서 열매를 익히고 있었다. 고추와 가지 상치 등이 한가득했다. 땅에 엎드려 누워있는 고들빼기도 있었다. 난 그것을 거두어 김치 담을 엄두는 낼 수 없었다. 언니는 심고 나는 한번 따먹는 일도 힘들어서야, 이거 말이 아니다. 밭에서 먹거리를 채취해서 음식으로 만들기까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가을이 쓸쓸할 새가 있을까. 가을 하늘과 날씨 때문이리라. 문밖에 나오면 확 달려드는 여름열기가 사라졌으나. 그 여름을 먹을 일이다.

   2015912일 부산 송도해수욕장 해변에서 <영호남수필문협> 총회가 있었다. 그립던 송도해수욕장의 바다 모래와 언니가 준비한 선물이다. 비치호텔에서 하룻밤을 샌 다음 날 새벽 동행했던 언니가 해수욕장 해변에 먼저 나가서 전화로 불렀다. 언니는 매일 새벽 교회에 갔다가 텃밭에서 아침 기도를 하는 분이다. 그날은 교회에 못 가는 대신 해변 교회에서 맨발로 걸어 다니면서 자연을 몸껏, 마음껏 즐긴 셈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을 맨발로 걸었다. 걷다가 신발을 신으려고 발을 털 때, 마침 내 바지 호주머니 속의 손수건을 꺼내 주었다. 손수건에 대한 고마움을 전화로 전해주었는데, 그뿐이면 되었지. 어제 오후 언니는 피곤한 몸일 텐데도, 우리 집을 방문해서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잊어버리고 없어도 될 손수건을 곱게 빨아서 다림질까지도 한 것 같았다.

   고들빼기김치는 전주에 와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고들빼기김치는 담기가 어렵다.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든다. 전주사람들의 김치 솜씨는 특별하고 인심도 좋다. 내가 처음 교동에서 신접살이 할 때 동네사람 한 집이 김치를 담으면 잔칫날 같았다. 난 그때 고구마순 김치도 알았는데 묘한 맛이었다. 그때부터 고구마순 나물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는 확독에 고추를 갈아서 그 그릇에서 바로 버물었다. 김치 담은 것을 이웃집에 한 그릇씩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 주인 몫은 얼마 안 되었을 텐데, 그때의 김치 선물을 잊지 못한다. 그런데 전주사람 김치 나누어 먹는 일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내가 김장김치 안 담게 된지는 십여 년도 넘는다. 그러나 이웃에서 들어오는 김치가 내가 담은 것보다 많게 되어서 다음 철까지 먹게 된다. 김장때마다 한통을 주는 친구가 있어서 지금도 익은 김치를 맛나게 먹고 있다.

   오늘 언니의 고들빼기김치를 먹고 고들빼기김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고하 선생님의 글이 생각나서 여기 옮겨본다. “고들빼기김치는 전라도, 특히 전주의 음식이다. 다른 지방의 밥상에서 그리 흔하게 대할 수 없는 김치이기 때문이다.”

   옛날, 한 전라도 친구가 서울 친구를 찾아 길을 뜨면서, 자그마한 옹기단지에 고들빼기김치를 맛갈지게 담아 선물로 가져갔다. 그러나 서울 친구는 이사를 하여 몇 날을 그 집을 찾았으나 허사였다. 가지고 간 노자는 떨어지고, 자고 먹은 값을 치르기에도 돈이 모자랐다.

낭패한 이 친구, 숙식을 하여 준 주인에게 자기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자기가 가진 것이란 이 김치단지 밖에 없으니, 이로써 숙식비 대신 받아달라고 친구에의 선물용 고들빼기 김치단지를 내어밀었다.

주인은 단지의 뚜껑을 열어 김치 맛을 보고는 , 인삼 김치 아니요.” 하더라는 것이다. 어리둥절한 전라도 친구는 그게 아니라 고들빼기김치요하고 설명했지만, 서울의 그 집 주인은 인삼 맛의 인삼 김치라며, 이 귀물을 얼마 안 되는 숙식비만으로 받을 수 없으니 돌아가는 노자에 보태 쓰라고 넉넉한 돈까지 주더라는 이야기다.

이리하여 이 고들빼기김치는 인삼김치로도 불리어지고 있다. 의식동원(醫食同源) 말마따나, 사실 고들빼기김치에는 인삼의 효력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밥 먹다 말고 스캔했다. 진수성찬 부럽지 않아요. 밭에서 직접 캐온 호박나물, 가지볶음 생선 한 토막 상치, 그리고  생김치 등...)

 

  오랜만에 전주의 특미를 맛보고 새삼 나도 전주의 맛에 길들여진 전주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리하여 영호남의 교류가 확실히 이어진 게 아닌가.

그런데 요즈음에는 고들빼기김치를 잘 담지 않는 것 같다. 손이 많이 가니까, 점점 멀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옛날에는 자생 고들빼기가 많았단다. 그것은 자색을 띄어서 쌉싸름한 맛이 사람의 위가 좋아하는 것만은 사실이었단다. 사람의 위가 싫어하는 맛이 단맛이라는데 요즈음은 단맛이 흔해서 위장병을 앓는 사람이 많아지는 지도 모르겠다. 전주의 옛 맛이 사라지지 않으면 좋겠다. 전주가 음식도시인 만큼 옛 맛을 이어가는 언니의 고들빼기김치에 감사하며 대를 이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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