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세한도

차보살 다림화 2007. 3. 15. 00:08
세 한 도(歲寒圖)




윤 모 촌

 


  소한(小寒) 추위로는 이른 셈인데,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추위가 여러날 째 계속된다. 북창(北窓)으로 반사해 들어오는 눈(雪)빛에 벽이 밝고, 까치짖는 소리가 지붕 위에 차다. 걸어놓은 새해 수선(水仙) 그림 달력이, 찌들은 벽면에 오히려 어울리질 않는다. 매일생한 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대나무 필통에 새겨진 귀절이 적막하고, 전화벨도 조용하다.

  묵은 그림 - 한림귀아도(寒林歸鴉圖) 속, 갈가마귀의 그 날개가 벽면 공간을 날고 있을뿐, 강변에 서 있는 서너 그루의 나목(裸木)이 더 적막을 일깨운다. 공간을 저며내고 있는 것은 시계추소리일 뿐이고, 그 허(虛)때문에 빈 방은 빈 방이 되지 아니한다.

  관재 이도영(貫齋 李道榮 · 1887~1923 · 서화가)의 그림 한림귀아도가 오늘 따라 가난과 예술에 살다 간 그의 면모를 말하고 있다. 한림(寒林)으로 돌아가는 갈가마귀의 모습이 한결 정겹다.

  방 안에서도 손이 시리다. 예년 같으면 매화분(梅花盆)에 봄 소식이 전해졌을 때이나, 날씨가 사나우니 춘심(春心)이 주춤할 밖에 없다. 인정(人情)의 기미를 잘 나타낸 완당(阮堂)의 세한도(歲寒圖)가 그 때문에 오히려 따뜻하다. 세한(설 전후한 추위)뒤라야, 송백(松柏)이 나중에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고 한 세한도 -정정한 노송(老松)옆에, 울타리도 없이 헐벗은 초가 한 채가외롭게 서 있는 그림이다. 인적이 끊긴지 오랜 것 같아, 아무리 보아도 을씨년스러운데, 완당은 이 그림을 중국을 왕래한 이상적(李商迪)에게 그려줬다.

  중국에서 귀중한 책을 구해 선물하자, 권세와 이익을 쫓아 시류(時流)를 타기에 급급한 때에, 그대는 무슨 일로, 귀양사는 몸을 돌보는가 고마울 뿐이라며 그림폭에 심회(心懷)를 곁들였다. 그림 볼 줄 모르는 이에게는 물론 볼 재미가 없는 그림이다. 그러나 마주 설수록 차디찬 그림폭에서 온기(溫氣)를 느끼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뜨락 귓등이에 쌓인 눈이 좀체로 녹질 않는다. 회오리 바람이 스치면 조그마한 눈보라가 일고, 바람이 지나고 나면, 세한의 뜰엔 다시 적막이 내린다. 무악(毋岳)의 묏부리가 한천(寒天)에 의연(毅然)하고 눈 녹은 양지에 참새 두어 마리가 몸을 비비고 있다. (83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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