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오잠병서(愛惡箴幷書) 고려 공민왕 때 문신 이달충(李達衷)의 자는 지중(止中)이고, 호는 제정(霽亭)이다. 동문선에 수십 편의 글이 전해오며 문집으로 “霽亭集”이 있다. 이 글은 그의 호 止中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가지만 그의 성품의 일단이 잘 드러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자기에 대한 평가가 “사람답지 못하다고”해도 개의치 않고 다만 평가한 사람이 사람다운가 그렇지 못한가만 문제로 삼는다고 한다. 사람의 사람에 대한 평가는 평가받는 사람이 어떠한가에 기준을 두는 것이 아니고, 평가하는 사람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다운 사람이 사람답다고 평가할 때 좋아할 것이지,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사람답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좋아할 일이 못 된다는 것이다. 일찍이 인물평가의 방법에서 한 탁견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그 의미가 자못 크다고 하겠다. ‘箴’이란 형식의 글의 묘미를 한껏 맛보게 해주는 좋은 글이다. 한문으로 쓰인 원문은 생략한다.
유비자(有非子)가 무시옹(無是翁)에게 일러 말하기를 날마다 사람들이 모여 인물됨을 의논하는데 어떤 사람은 옹을 사람답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사람답지 못하다고 한다. 옹을 어찌하여 사람들이 사람답다고 하고 혹은 사람답지 못하다고 하는가? 옹이 이를 듣고 풀이해 말하기를 “남이 나를 사람답다 해도 나는 기쁘지 않고, 남이 나를 사람답지 못하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하는 것은 그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못하다고 하는 것과 같지 않다. 나 또한 모르겠다. 나를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사람답지 못하다고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사람다운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고 하면 기쁜 일이요,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나를 사람답지 못하다고 해도 역시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다운이가 나를 사람답지 못하다고 하면 두려운 일일 것이요,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나를 사람답다고 하면 이 또한 두려운 일일 것이로다. 기뻐하거나 두려워하는 것, 그것은 마땅히 나를 사람답다하거나 혹은 나를 사람답지 못하다고 하는 그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잘 살펴서 가려야 할 것이다. 고로 어진 사람만이 능히 사람을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다고 했다. 나를 사람답다고 하는 사람이 인자한 사람인가? 나를 사람답지 못하다고 하는 사람이 인자한 사람인가? 有非子가 웃으며 물러나고 無是翁옹은 箴을 지음으로써 스스로 경계했는데 箴에 이르기를 “子都의 아름다움에 누가 아름답다 하지 않겠으며, 易牙의 고른 음식맛에 누가 맛있다 하지 않겠는가. 호오(好惡)는 일정하지 않거늘 어찌 자기 자신에서 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 子都: 고사에서 미남자로 유명한 사람 이름. 易牙: 제나라 환공의 유명한 요리사 이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