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곽 - 사적 제 10호
1392년 개성 수창궁에서 조선왕조를 개국한 태조는 즉위한 지 한 달도 못 되어 한양으로 천도할 것을 명하였다.
1393년 정월에 권중화가 풍수지리학상 계룡산이 가장 좋은 곳이라 하여 공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하륜이 송나라
호순신의 지리서를 이용하여 계룡산 신도의 부당함을 상소하자, 다시 검토하였다. 1394년 8월, 태조는 직접
무학대사를 대동하고 현장을 시찰한 다음 지금의 서울 지역으로 천도할 것을 결정하였다. 9월에 신도조성도감
(신도읍 조성 임시 본부)를 설치하고 정도전은 권중화 등과 협력하여 종묘, 사직, 궁궐, 도로, 시장 등 도시계획을
작성하였고 그해 12월에 종묘의 터 닦기를 시작으로 공사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약 10개월 후인 태조 4년 (1395)
9월에 이 엄청난 신도읍 공사를 완료하였다. 태조가 경복궁에 입주한 것은 12월 28일이었다. 이 공사에 필요한
인력은 전국의 승려들을 동원하여 충당하였고, 한양과 가까운 경기도, 충청도의 민간 장정들은 농한기인 1,2월과
8,9월 가을에만 동원되었다.
<조선불교통사>에 인왕산 선바위를 성곽 안에 넣을 것인가에 대한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엇갈리는 의견을 놓고
태조가 어려운 결정을 단행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큰 눈이 내렸다. 이튿날 아침 한양의 안쪽은 눈이 녹은 반면에
바깥쪽은 여전히 녹지 않고 하얗게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그 눈 녹은 선을 따라 성곽의 선을 그었다고 한다. 그때
인왕산 선바위는 눈이 그대로 남아 있어 서울 성곽 바깥쪽으로 남게 되었다.
경복궁 흥례문 앞 뜰에서 바라본 북악산,
2007년 가을은 600년 전의 광화문 모습을 제대로 제현하고자 전의 문을 헐고
판막으로 담장을 둘러 어수선한 분위기다. 경복궁 안의 마당도 저렇게 조각나 있다.
저 산마루을 넘어 내려왔다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창의문에서 올라가면 너무 가파르다.
동쪽에서 긴 산 능선의 성곽을 따라 2시간 남짓 걸었다. 혼자였더라면 도저히 갈 수 없는 코스,
보통인들은 등산 코스로 하루 운동량으로 충분하겠지만, 나중에 북악산마루를 넘을 땐
119을 부르고 싶을 만큼 계단을 딛기 힘들었다.
성곽 위의 여장(담장)
성곽을 오르다가 처음 만난 단풍나무이다.
단풍과에 속하는데 이름은 복자기란다. 다른 단풍과 달리 너무나 곱고 투명하게 물들었다.
산성 너머의 마을이 보인다. 그 옛날에도 마을이 있었을까. 지금 동네 이름은 무엇일까.
김신조 소나무도 만났다. 1968년 북한에서 청화대 침투하여 총격전을
벌였을 때 총탄을 맞은 소나무였다.
강마른 바위에서도/드센 바람에도/주어진 터전에 붙어/ 해맑게 붉은 웃음 피어내어/
힘든 나그네의 마음 북돋우고 있네/
드디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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