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영상물 모음

연꽃이 만발한 덕진연못

차보살 다림화 2008. 7. 19. 19:33

잠깐, 쉬어가는...                    

  Giovanni Marradi - With You


 

순간에서 영원으로

 

 

덥고 끈적끈적한 여름을 안을 수 있는 힘은 연꽃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새벽빛에 피어나는 연을 보기가 참 힘들다. 겨우 오전 9시 쯤 지났을까.

연못으로 들어서는 순간 내마음의 강에 깊은 물결이 일렁였다.

그래! 이 순간이야.  해마다 보아 온 연꽃이지만, 그 외의 모든 것들도, 그건 모두

사라진 것들이야. 이 여름은 지금의 꽃이 있을 뿐이야. 화가 '모네'에게도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지 물질적인 사물 그 자체가

아니었다 고 하지 않았던가.

장마비가 올 것이란 예보였다. 아침엔 흐리고 구름의 이동이 심했다.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흐렸지만  빛이 너무 많은 것보다 사진이 좋을 수도 있다.

이내 소낙비가 내렸다. 비가 올 때의 연꽃을 보고 싶기도 해서 우산을 받고

연못을 돌았다. 땀이 얼굴에  비로 흘렀다. 연꽃과 함께 나도 젖었다.

 빗줄기 속의 연 풍경은 잘 잡기가 힘들다. 작은 사진기로는. 순간의 감흥을 마음에

찍을 뿐이다. 그러나 그 순간의 비에 젖은 꽃들은 연의 자태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 같았다.

젖었지만 무겁지 않고, 더욱 고요하고 빗소리가 음악처럼 반주가 되어 위안이 되었다.

물방울이 잎에 고였다가 출렁이며 떨어지는 모양, 진주알이 구르는 소리처럼

'또로록' 여기 저기서 혹은 멀리서 마림바 악기가 울리는 듯 연꽃들의 기도소리 같았다.

 

 

 

 

 

 

  

                                                             蓮心不水汚

 

 

한 바탕 소나기가 나린 후 맑은 하늘이 구름 사이로 나타났다.

돌아서려다 말고 햇살에 비친 연꽃을 다시 보고 싶었다.

최대의 자연광인 해빛을 놓칠 수는 없었다. 그 강열한 대비를...

 

 

이 때 쯤이면 배롱나무꽃과 자귀꽃도 어울려 합주가 대단하다.

 

 

 고고하기 그지없는 한 송이의 연이 막 피어나면서

하늘을 향한다.

 

 3층 전각에서 내려다 본 연못은 연밭이다.

연잎이 다리가 되어 사뿐사뿐 가벼이 걸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착각이 인다.

 

 활짝 핀 두 송이의 연꽃이 서로 기대어...

 다 피어버린 꽃잎. 아쉽지 않다. 연실은 동시에 시작하여 끝 없는 생명을 이을 것이다.

 

 물이 하늘이고 하늘이 물이다. 하얀 수련이나 잎처럼 물 위에서 저리 떠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의 사진 중에 이 수련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컴퓨터 창의 화면으로 올렸다. 컴퓨터를 켤 때마다

흡족하여 기분이 연못에 있는 것 같다.

이날 오전에 날씨가 세 번이나 바뀌어 주위의 분위기가 다른 연못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극적이었다.

이 사진은 '모네'의 수련 연작을 생각나게 했다.

 

작년 여름에 '모네'(1840-1926) 의 전시회를 관람했다. 지금은 사진 기술이 있어 화가들은 사진을 찍어와서 집에서

쉽게 그림을 그린다. 그 당시의 화가, 특히 인상파 화가들은 화실에 들여박혀 있을 수 없었다.

'인상파'라는 화조를 탄생시킨 '모네' 의 '인상-해돋이'는 오늘날 대단한 명성을 지닌다.

어느 항구에 몇 척의 선박이 있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야말로 사물의 실체보다

해돋이의 인상 그 자체다. 가까이서 보면 물감을 비스듬이 그어놓은 것 같은 데 멀리서 보면 수면에

일렁이며 반짝이는 햇살이 절묘하다. 주홍빛 빗금 자체가 물 위의 노을로 표현된다.

모네를 빛의 화가라고 불리는 까닭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또는 수필을 쓰면서 모네가 왜 연작에 몰두

하였는지 어렴풋 짐작되기도 한다. 

 

 모네의 수련 중의 하나다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사랑의 피부에 미끄러지는 사랑의 말들처럼

수련꽃 무더기 사이로

수많은 물고기들의 비늘처럼 요동치는

수없이 미끄러지는 햇빛들

어떤 애절한 심정이

저렇듯 반짝이며 미끄러지기만 할까?

영원히 만나지 않을 듯

물과 빛은 서로를 쉬지 않는데,

푸른 물 위에 수련은 섬광처럼 희다 

 

  - 채호기의 '수면 위에 빛들이 미끄러진다' 전문

 

 

 

 

 물병아리 한 마리가 물방울처럼 미끄러지듯 지나다가 렌즈에 잡혔다.

 

 30여 년 동안 수련의 연작에 몰입하였던 모네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의 기념으로.

 

그는 세느 강변 근처의 물가에서 혹은 네델란드나 테임즈 강변 그리고 지중해와 베니스까지 이젤을

들고 순간의 빛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40세까지 지독한 가난과 투쟁하면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40세 이후 그의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자

그는 파리 근교의 지베르니 정원을 사들이고 정원사도 둘 수가 있었다. 그의 지베르니의 정원은 그림 같았고

그의 그림은 정원 같았다. 후에 여행하기도 힘들어졌으나 지베르니는 우주가 통채로 담겨 있었으므로

 하루 종일 아름다운 꽃들에 둘러싸여 물가에서 '수련' 연작, 200여 점의 그림을 탄생시켰다.

한 순간은 지나가며 그 때의 빛도 달라진다. 빛의 순간에 비치는 사물의 인상을 그는 계속 그렸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어떤 사진사는 비가 주룩주룩나린 연못 가운데 기둥 위에서 한 마리 백로가 무심히 앉아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움직이는 찰나를 잡으려고. 이 사진사의 심정과 모네의 심정은 같은 것일까.

모네는 '나는 자연의 법칙과 조화 속에 그림을 그리고 생활하는 것 이외에 다른 운명는 갈망하지 않았다.'

모네는 단순히 아름다움이나 좋은 그림만은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 점 때문에 나는 모네의 그림을 좋아한다.

모네에게는 '빛'도 사물의 하나로 생각했다. 언제나 그림 속에 빛의 움직임과 주변의 분위기를 나타내려고 했던 것이다.

평생을 시간과 날씨,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과 순간 순간의 빛의 변화를 담으려 했던 모네에게 지베르니의

수련이 있는 연못은 그 자체로 자연이자 우주였다.  

 

 

 사진이나 그림 이외에도 모든 예술은 빛과 그림자의 조화가 아닐까.

빛이 존재 자체라면 존재자들은 모든 사물과 현상들이다. 빛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빛이 내려앉는 사물은 빛에 의해서 그림자를 나타낸다 그 그림자가 있어 빛을 받은

부분이 빛나며 빛나는 부문은 그림자 없이는 아름다울 수가 없다. 빛이 닿는 부분은

시시각각으로 달라진다. 형체도 언젠가는 시간 속에 녹아 사라질 것이다.

빛을 어찌 나타낼 수 있는가! 사물에 닿지 않으면 빛을 어찌 알 수있는가.

모네의 그림들을 보면서 삶의 순간들을 수놓았던 빛과 그림자들로 인한 편린들이

주마등처럼 스처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쓸쓸한 아름다움의 맛.

그것이 모네의 그림을 보는 맛이었다.

 

 

 

 

 덕진 연못에 누군가가 백련을 심었던지

올 해는 백년도 함께 즐길 수가 있다.

 

 흰 구름이 떠다니는 파란 하늘을 뚫고 오를 듯한 연봉오리들

 

  모네의 그림 중에 '원추리'와 '아이리스'가 있다. 그는 연못가에 아이리스와 원추리를 많이 심었다.

특히 아이리스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원추리가 충추듯, 아이리스가 햇살에 흔들리는 분위기를 잘 묘사했다.

햇살이 닿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꽃과 잎을 그렇게 잘 표현했다. 난 그 후로 아침 햇살이 베란다로 들어와서

화분을 비추일 때 그 잎들의 모양에 늘 감탄하고 명상하곤 한다. 잠시의 햇살이기 때문에, 특히 겨울에는

그 햇살에 넋이 나간다. 모네가 어찌 그 햇살을 놓고 그냥 있을 수 있었겠는가.

 

그림에 대해서 몰라도 그의 60여 점의 그림을 그의 생을 이해하는 것과 함께 보는 동안, '인상파'가 무엇이며

추상화가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가 현대추상화의 문을 열게 된 19세기 화가였다는 말도

이해하게 된다.  '수련'이나 다른 풍경화들에는  색체 들 속에 사물의 형체가 녹아나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그것들은 노년기에 들어서 나타난 백내장의 영향이었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도 그는 그로 인해 빛이 흐려져서 인상만을

그리기도 하고 그를 극복하여 새로운 화법이 나타나기도 한 것 같았다. 빛과 시간을 그려내야 하는 그에게는

치명적은 현상이었으나 그를 극복해내면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새로운 작품을 계속 탄생시켰다.

그의 그림의 대표되는 소재는 하늘과 물로 이루어진 풍경이 주된 모티브임을 알 수 있다. 하늘과 물은 언제나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흐름을 본질로 하고 있는 시간의 개념과 가장 부합되는 모티브였다.

물 위의 사물이 물 밑에 똑 같이 반사되어 비추어지는 것은 또 다른 아름다움이며 빛의 변화를 잘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소재이기도 했다. 나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물가에서 꽃과 잎의 주변 정경을 한 참을 바라본다.

 

아! 빛과 시간을 어떻게 잡을 수 있는가. 그것은 허무였다. 그 형체 없는 허무 자체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의 그 감흥이 얼마나 절실했으면, 자신만의 고요하고 절대적인 그림 세계로 승화시키지

않을 수 없었나보다. 

그는 과연 하늘과 물에서 그 해답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까. 시간의 순간성을 포착하려고 평생을 바쳤던 그의 그림 그리는

일은 결국 인간의 삶이 지닌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노력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순간의 반짝임이 그의

그림 속에 영원으로 빛나면서 세계인의 가슴을 그의 빛 속으로 녹아들게 하고 있다.

비가 그치기기를 기다리는 동안 연못 가운데 고요로이 앉아 있는 백로는 미동도 않는 듯했고 나는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오전 중 세 번이나 요동치던 구름의 이동이 갑자기 '모네'가 그리워지게 하여

내 수련의 사진과 그의 수련을 대비하여 본다. 노년기에 피할 수 없는 백내장이 생기기 전에

나도 모네처럼 나의 '차 이야기'를 연작으로 혹은 시리즈로 써갈 용기가 생긴다. 내 마음 속에 존재하는

우주를 품은 정원을 꿈꾸면서 그 속에서 영원을 나타낼 수 있는 글이라도 쓸 수 있기를 또한 그려본다.

언젠가 먼 훗날 그 이야기 속에서 나를 그리워해줄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2008년 한여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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