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성을 넘고 신라의 달밤을 거닐다가 고려관에서
하루를 묵고 조선의 정자에서 노닐기도 하는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
대한민국 동쪽 땅끝, 울진군 후포리의 해안에서
2008년 8월 9일 아침 5시 30분 쯤이든가. 바알간 얼굴을 붉히며 빛을 안으로 꼭 켜안고서...
저 먼 바다 끝 물 속인가 하늘 어디쯤에선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저 태양의 인상.
<인상-해돋이>를 탄생시켰던 모네는 캔버스에 빨간 유화 물감으로 빗금을 그었을 뿐이었는데도
이런 인상이었지...
신라의 하늘은 동해 바다 같은가. 같은 하늘과 산이었는데 오랫만에
들어서는 옛 신라 땅이련가. 눈에 익은 듯, 낯선 듯.
동해는 해안마다 맑고 깨끗한 모래톱이다.
출렁출렁,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너무나 몸집이 거대한 바다는 저 혼자 바람 타고 뒤척뒤척
철썩철썩 , 길건너 광도사 큰법당 앞에까지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더위를 잊는다.
해안의 밑 바닥이 완만하여 해수욕하기 딱 알맞다.
이른 저녁을 먹은 후, 해질녘에 하루의 끈끈함을 이 바다물과
함께 놀면서 파도와 한 몸이 되어보면 ...... 나, 개체가 없다.
저 헤아릴 수 없는 모래알들, 헤아릴 수 없는 물방울들의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들어보라!
물과 놀려면, 물이 함축하고 있는 다양한 물결들의 흐름, 그 각각의 차이 나는 흐름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마음을 비우고 물에 뛰어들었다고 해서, 우리가 저절로 수영을 능숙하게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팔을 날개 펴듯 50번 쯤 저어 깊은 바다로 나아갔다. 더 이상 발�이 모래 바닥에 닿지도 않았다.
내 힘의 한계를 알아야 했다. 바닷물을 받아들여 그 물결에 나를 맡기고 그냥 떠 있을 수만은 없다.
잠시도 몸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바닷물의 흐름대로 움직여야 한다.
방향을 돌려 바닷가 쪽으로 다시 헤엄쳐 나왔다. 물이란 타자와의 조화를 잘 맺을 수 있을 동안
행운처럼 함께 떠 있을 수 있었다. 그건 정말 행운이었다.
어떤 청년이 그런 나를 보고, "수영 잘 하시네요!" 하는 것이다. 그건 수영하는 방법을 교본에서 익혀서
된 것은 아니었다. 물과 조화롭게 노는 것은 갑자기 된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의식 운동도 어떤 방법이 써 있는 교본이나 경전을 가지고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비움'이나'망각'의 수양론이 필요하다. 어떤 방법으로든 몸으로 익히는 수양론,
바닷물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조화로운 연결을 위해서..
등소평은 평소에 바다 수영을 즐겼다 한다. 그것이 그에게는 망각의 수양이었을까.
우리의 박태환 선수가 쓰나미처럼 메달을 획득하게 된 과정을 보라! 목적이야 다르겠지만.
모래에 박힌 발자국을 파도는 끝네 지우고 만다.
파도와 바람을 맞아야 우리는 흔적을 없앨 수 있다.
새로운 발자국을 찍기 위해서...
하늘의 구름처럼 바닷물이 출렁인다.
저녘 노을이 바닷물을 �셔 하늘빛도 바다빛도 붉으레 긴 휴식의 밤을 맞아들이고 있다.
여행은 낯설기 작업이다. 낯 선 곳에 들어서면 복잡하고 힘들었던 우리의 일상은
그 낯섬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파도의 포말처럼. 그 낯섬에 하루하루 익숙해지다보면
다시 낯섬이 또 하나의 일상의 두터운 옷이 된다. 돌아와야할 자신의 현재에 설때
자기를 에워싸던 일상이 낯설어 참으로 자신의 일상을 깊히 관조하게 되어서야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낸다.
그것이 여행의 목적이다. 우리의 내면의 의식에서도 그와 같은 비우고 버리는 망각을 통하여
존재의 본질과 마주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의식의 여행말이다. 망각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망각 상태로 있는 시간의 달콤한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다시 새로운 관계로 연결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만 하는 일 말이다.
문학에서도 '낯설기'의 장치가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그 낯설기의 묘를 창출해내는가,
참 애매모호한 작업. 어렵기만 하다. 글로써 하는 일은.
'망각의 수양론'이 필요한 이유는 다시 연결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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