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바람의 커튼

차보살 다림화 2008. 8. 1. 22:08

 

 

묵정밭 갈 듯 정성 담은 첫 작품

5년 만에 처음 낸 조윤수씨의 수필집 '바람의 커튼'

작성 : 2008-07-28 오후 7:38:15 / 수정 :

전북일보 도휘정(hjcastle@jjan.kr)

작가란 초보딱지를 지닌 지 5년. 초보운전 딱지는 면했지만 그는 더욱 조심할 때라고 했다.
"수필을 공부할 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만 알게됩니다. 용기를 내 첫 작품집을 내려니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바람의 커튼」(수필과비평사)을 펴낸 조윤수씨(65). 그는 "문학이란 글자가 늘 옆에 있었지만 하지는 못했다"며 "글 쓰는 일은 묵정밭을 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지적 관심이 폭넓은 그는 어떤 소재를 만나더라도 맛깔스런 수필로 빚어낼 줄 안다. 게다가 문장은 간결하고 소박하며 평이해 독자들에게 잘 읽힌다. 그러나 조씨는 여전히 "수필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며 "어렵기에 세상에 있는 동안 천착해가야 할 길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조씨는 경남 진주 출생이지만, 전주여중과 전주여고를 졸업했으며 서울 생활을 하다 결혼과 함께 다시 전주에서 살고 있다. 전북대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을 수료했으며, 전북문인협회·행촌수필문학·한국미래문학 회원이다. 전통 차문화 연구에도 관심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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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수 수필집 '바람의 커튼'출간
작성시간 : 2008-07-28 송근영 기자 
 
▲ 조윤수 수필집 ‘바람의 커튼’이 수필과 비평사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등단 5년만에 처녀 수필집으로써 그의 작품에서 전주사랑이 필적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을 담아냈다.
조문인은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대학과 직장생활을 하다 전주로 시집 온 철저한 전주사람이다.
김학 국제팬클럽 한국본부 부 이사장은 “소재를 찾으면 전문수필요리가 답게 적당한 양념을 버물려 맛깔스럽게 수필상에 차려 놓는다”고 평하며 타고난 수필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바람의 커튼>의 변

                                                           조 윤 수

  

  첫 수필집의 제목을 <바람의 커튼>으로 정하고 보니 생각할수록 내 자화상의 상징 같다. 순 우리말도 아니고 순 서양말도 아니다. '커튼'이 외래어니까 요즘 유행하는 퓨전이라고나 할까. 내 삶이 그랬다. 6.25때부터, 문화라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우리는 달콤한 초콜릿과 츄잉껌에 현혹 당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주는 색다른 서양의 구호품에 길들여졌다. 미국말을 배우기가 가장 재미있었고 그래서 문학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영문학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하고 밥벌이를 한 적도 있었다.  국어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미국 문화에 익숙해져 정신마저도 색이 덧칠해졌었다.
  나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한글공부였고, 그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을 되찾는 일이었다. 언어 그 자체는 그 나라의 정신이요 문화의 집결이라는 것도…. 차(茶)로 인하여 중국의 문화에 더 주의가 높아졌다. 한자 또한 삼천여 년 이상 조상들이 사용했던 글자이니 우리말과 글과 뗄래 야 뗄 수 없는 것인데도 한자를 배우지 않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중국을 이해하는 것도 우리나라의 근간과 고유성을 이해하는 길이었다. 그렇듯 글쓰기는 구체적인 역사 속의 나의 정체성 찾는 것이기도 했다. 자기 나라의 말과 글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은 다른 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부끄럽게도 <바람의 커튼>은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바람의 커튼>은 그래서 더 보람 있다고 자위해야겠다. '바람'은 바람대로 그 말의 뜻이 무궁하며 '커튼'은 커튼대로 고유한 글자이나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바람과 커튼은 잘 소통한 것 같다. 사람들은 '교류'의 뜻으로 '컴뮤니케이션'이란 말을 잘 쓴다. 이 또한 외래어가 아닌가? 그러나 원어가 주는 뉴앙스(이것 또한 퓨전이다)가 있으며 우리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맛이 있는 것 같다. 교류하고 있는 것을 소통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교류는 자기 바탕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소통'은 자기를 비우고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바람'과 '커튼'은 잘 소통하였다고 하고 싶다. 지구라는 무대에서 '바람의 커튼'이  펄럭일 때마다 지구인의 삶이 즐거운 폴카를 추듯 하게 되면 좋겠다. 나아가 지구가 하나로 튼실해짐에 따라 모든 생명은 소통의 길로 나아갈 것이며 우주와도 잘 소통하리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문자가 차 다(茶)이다. 모양도 좋고 쓰기도 좋고, 무엇보다 그 뜻과 맛이 땅에서부터 영원한 우주성으로 소통하는 일종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차(茶)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30여 년의 차 생활을 하다보니, 이제야 그 다도(茶道)라는 것에 겨우 입문하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쉽게 말해버리는 다도가 정말의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전에는 중국 고전이나 한자가 나오는 글을 만나면 한자는 제쳐놓고 해석한 말 뜻만 읽었다. 그런데 차 이야기의 원문을 비교 하다보니 그 한문이 그렇게 까마득하게 보일 수가 없다. 어쩌면 내 성씨의 기원이 중국에 있는 것 같이 차의 기원과도 무관할 수 없는 운명이어서 일까? 내가 전주 이씨 집안에 시집온 이유도 차의 기운이 미쳐서인지도 모른다.  초의선사보다 300년 앞서 다부(茶賦)를 지으신 분이 가문의 중조이신 이목(李穆)선생이기 때문이다.  한국차인연합회에서는 최초의 한국의 다성으로 그분을 받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말과 글자를 배운다고 얼마나 알겠는가. 그래도 애정을 가지고 보니 마음으로 그 시대의 사람들과도 소통하는 것 같아 즐겁다. 외국인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직장에서 중국사람을 만났을 때, 중국에서는 조(趙)씨가 으뜸이라고 나를 향하여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뜻을 요즈음에야 알게 되었다.
  당나라 이후 오대십국을 통일한 사람이 조(趙)광윤으로 북송나라를 건국했으며 북송은 조씨 나라였으며, 남송으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고대 국가 중에 조(趙)나라가 있기도 했다. 송나라는 성당(盛唐)의 기반 위에 대단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송의 휘종인 조길은 정치에는 무능했지만 모든 예술에 능했다고 한다. 그가 쓴 대관다론(大觀茶論)은 나도 가끔 참고하는 글이다. 고려가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차문화가 성행하였고 그로 인해 영원한 비취빛 청자를 우리에게 남기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이 잎차가 아닌 말차가 유행하였다. 찻가루를 다완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차선(찻솔)으로 거품을 내면 청자 잔에 설록이 핀다. 이를 두고 이규보의 차시(茶詩)에 설록차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증정 수필집에 내 낙관을 붉게 찍게 되었다. 친필의 글씨가 잘 안되어서 문득 옛날의 낙관이 떠올랐다. 서예와 문인화를 그리다가 한문이 너무 어려워서 그만 두었었다. 그보다 그 어려운 공부를 계속 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에 내 호를 지어주시고 전각을 멋지게 파주셨던 선생님이 생각났다.  자실(自實)이란 작은 전각과 연심불수오(蓮心不水汚). 멋진 글자를 보면서 저 젊은 때, 내가 연꽃을 보지 않고도 관념으로만 그렸을 때부터 나의 먼 미래를 두고 어찌하여 그런 전각을 만들어주셨던가. 참 절묘하기 그지없다. 내가 닮아야 할 표본을 그 때 점지해 주셨던가. 그리고 일하(一霞)라는 이름까지. 사전의 뜻으로는 멀, 혹은 노을인 것 같다.  전연 생소할 것 같은 <바람의 커튼>과도 잘 소통되어 어울리는 것 같다. 언밸런스의 밸런스라 할까.
  삼십 수년을 지나고야 다시 만나는 그 글자들, 오랜 세월 숨어서 나를 지켜주었을까. 너무나 부끄럽고도 애석하기도 한 세월이었다. 어쨌든 수필집도 일종의 서화(書畵) 아닌가. 참으로 배움의 길은 멀고 험난하며 배울수록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 알뿐이다. 원래 도(道)를 하려면 할 일이 없어지고, 학문을 하려면 할 일이 많아진다 했다. 지금이야말로 많은 지식을 머리에 채우기보다 그로 인한 마음의 평안을 놓치고 싶지 않다. 서로 소통하였으면 바로바로 바람의 커튼 뒤로 돌려보내리라. (2008년 8월 1일)
 


  <바람의 커튼>의  오자(誤字) 정정(訂正)   

                 
60쪽 - 줄탁동시( ㅁ卒 啄 同 時), 61쪽 - 선가귀감(禪家龜鑑), 공안 (公案)        
138 쪽 셋째 줄- 포기하기에는
245 쪽 첫째 줄 끝 - 20여 년,끝 줄 - 보내지 안 해도
246 쪽 둘째 단락 첫 줄 - 말해보자면
247 쪽 둘째 단락 끝에서 둘째 줄 끝 - 안으로
274 쪽 아홉 번째 줄 - 4킬로미터까지                      

애석하고 부끄럽게도 이렇게 오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편지로나 전화로, 애정으로 알려주신 

분께 너무나 감사하다.  많은 이들이 다 읽고도 그것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뜻으로는 모두 이해 된듯 너그럽게

양해해주신 듯하다. 편집 과정에서 좀더 치밀하게 들여다 봤어야 했었다.  그렇게 많은 퇴고를 거듭했건만...

완성도 높은 작품과 완전한 책 꾸미기. 멀기만 한 길이다.   



 

 

 

 

 

 

 분에 넘치는 꽃다발과 은밀히 건네준 여름 꽃이불을 고이 담은 선물상자, 보석 같은 마음에 너무 감사하다.

 꽃사과가 탱글탱글 익어가는 8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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