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정밭 갈 듯 정성 담은 첫 작품
5년 만에 처음 낸 조윤수씨의 수필집 '바람의 커튼'
작성 : 2008-07-28 오후 7:38:15 / 수정 :
전북일보 도휘정(hjcastl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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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수 수필집 '바람의 커튼'출간
작성시간 : 2008-07-28 송근영 기자
▲ 조윤수 수필집 ‘바람의 커튼’이 수필과 비평사에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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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커튼>의 변 조 윤 수
첫 수필집의 제목을 <바람의 커튼>으로 정하고 보니 생각할수록 내 자화상의 상징 같다. 순 우리말도 아니고 순 서양말도 아니다. '커튼'이 외래어니까 요즘 유행하는 퓨전이라고나 할까. 내 삶이 그랬다. 6.25때부터, 문화라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우리는 달콤한 초콜릿과 츄잉껌에 현혹 당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주는 색다른 서양의 구호품에 길들여졌다. 미국말을 배우기가 가장 재미있었고 그래서 문학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영문학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하고 밥벌이를 한 적도 있었다. 국어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미국 문화에 익숙해져 정신마저도 색이 덧칠해졌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문자가 차 다(茶)이다. 모양도 좋고 쓰기도 좋고, 무엇보다 그 뜻과 맛이 땅에서부터 영원한 우주성으로 소통하는 일종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생각하던 차(茶)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30여 년의 차 생활을 하다보니, 이제야 그 다도(茶道)라는 것에 겨우 입문하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쉽게 말해버리는 다도가 정말의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전에는 중국 고전이나 한자가 나오는 글을 만나면 한자는 제쳐놓고 해석한 말 뜻만 읽었다. 그런데 차 이야기의 원문을 비교 하다보니 그 한문이 그렇게 까마득하게 보일 수가 없다. 어쩌면 내 성씨의 기원이 중국에 있는 것 같이 차의 기원과도 무관할 수 없는 운명이어서 일까? 내가 전주 이씨 집안에 시집온 이유도 차의 기운이 미쳐서인지도 모른다. 초의선사보다 300년 앞서 다부(茶賦)를 지으신 분이 가문의 중조이신 이목(李穆)선생이기 때문이다. 한국차인연합회에서는 최초의 한국의 다성으로 그분을 받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증정 수필집에 내 낙관을 붉게 찍게 되었다. 친필의 글씨가 잘 안되어서 문득 옛날의 낙관이 떠올랐다. 서예와 문인화를 그리다가 한문이 너무 어려워서 그만 두었었다. 그보다 그 어려운 공부를 계속 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당시에 내 호를 지어주시고 전각을 멋지게 파주셨던 선생님이 생각났다. 자실(自實)이란 작은 전각과 연심불수오(蓮心不水汚). 멋진 글자를 보면서 저 젊은 때, 내가 연꽃을 보지 않고도 관념으로만 그렸을 때부터 나의 먼 미래를 두고 어찌하여 그런 전각을 만들어주셨던가. 참 절묘하기 그지없다. 내가 닮아야 할 표본을 그 때 점지해 주셨던가. 그리고 일하(一霞)라는 이름까지. 사전의 뜻으로는 멀, 혹은 노을인 것 같다. 전연 생소할 것 같은 <바람의 커튼>과도 잘 소통되어 어울리는 것 같다. 언밸런스의 밸런스라 할까.
애석하고 부끄럽게도 이렇게 오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편지로나 전화로, 애정으로 알려주신 분께 너무나 감사하다. 많은 이들이 다 읽고도 그것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뜻으로는 모두 이해 된듯 너그럽게 양해해주신 듯하다. 편집 과정에서 좀더 치밀하게 들여다 봤어야 했었다. 그렇게 많은 퇴고를 거듭했건만... 완성도 높은 작품과 완전한 책 꾸미기. 멀기만 한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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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에 넘치는 꽃다발과 은밀히 건네준 여름 꽃이불을 고이 담은 선물상자, 보석 같은 마음에 너무 감사하다.
꽃사과가 탱글탱글 익어가는 8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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