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누가, 무엇이 그를 벼랑으로 몰았는가

차보살 다림화 2009. 5. 26. 16:01

누가, 무엇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벼랑으로 몰았는가

 

  컴퓨터를 켜니  다음시작페이지 대문자가 모두 검정 글씨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다. 추모의 글 남기기에 나도 짧은 추모글을 남겼다. 오전에 주로 TV를 잘 안 보기 때문에 5월 23일 낮 12시 무렵까지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몰랐다. 서울에서 아이들이 내려와서 시내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내 음식점에서 아이들 삼촌들에게서 소식을 전해들었다. 너무나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 점심을 잠깐 뒤로 미루고 뉴스를 경청했다. 전후 사실을 알고 정말 비통 참담 슬펐다. 통곡하고 싶었다. 많은 국민들이 애도하는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봉하마을까지 내려가는 입장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제까지 권력의 싸움에 희생되는 사람과 불행한 사람들이 있어야 할까.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에 대한 보복 수사가 잇달아 일어나는 일을 언제까지 보아야 할까.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언론도 현 정권에 맞추어 보도하는 것 같은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정치에 대하여 모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말이다. 마치 계획된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 같이 정치권을 둘러싼 게이트 사건들의 뉴스가 그랬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전 시대나 다른 이들을 공격해서 불행한 사태로까지 몰고 가야만 할 것인가. 자유와 평등과 인권은 싸워서 지켜나가야만 그야말로 자유스러운 사회가 되기 마련인가. 그 과정이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희생 위에 이루어지는 것은 인간으로서 비참하다.  정치에 대하여서는 어떤 의견도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주장도 할 수는 없었지만 어찌 바람이야 없겠는가. 굳이 말하고 싶다면 정치는 자신을 잘 정치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철인(哲人)정치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으면 한다. 티벳의 달라이라마나 인도의 간디 같은 철인들이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백성들의 존경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국민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국민들이 본받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종류는 다르지만 우리 사회에서 한 역할을 당당히 담당해온 사람들이 연속적으로 세상을 일찍 떠나는 현실을 보면서 애석하기 그지없다. 작년에는 국민 배우 최진실이 상황에 떠밀리어 자신을 추스리지 못하고 끝내 죽음으로 우리들을 슬프게 했다. 올 3월에는 만나면 금방 친구가 될 것 같았던 화가 김점선이 투병하다 죽었다. 현대 전위예술작품 같았던 그의 일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어서 5월 9일에는 장영희 교수가 국화꽃 한 떨기 같은 희망의 웃음을 남기고 떠났다. 전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도 어떤 면에서 우리의 스타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스타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너무나 극단적인 죽음 앞에서는 국민 누구나가 비통해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같기만 하다. 모든 죽음에는 그럴만한 상황과 이유가 있으며 또한 어떤 죽음도 죽음으로만 할 수 있는 무언의 말이 있는 것 같다. 이름 있는 사람과 이름 없이 지금도 죽어 가는 모든 사람들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다.

  그동안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뉴스는 볼 때마다 불쌍하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끝내는 고향마을 부엉이바위까지 떠밀려갔다 뛰어내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인가. 극단적인 죽음은 정말 남아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정치에 대하여 정치인들에 대하여 무엇이 어떻다고 판단과 비판을 할 견식은 없지만, 그리고 참여할 입장도 아니기에 그가 지난 2002년대선 때부터 재임기간 동안 보여준 행보와 인상을 추억하며 왕생극락을 기원하고 싶다.
  내가 받은 좋은 인상은 대선 때 선전된 캐릭터였다. 내가 좋아하던 영국 팝가수였던 존래논의 'IMAGINE'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노무현 후보의 모습이었다. 이메진 노래는 나의 이상을 그대로 담은 노래였기에 내 첫 수필집 <바람의 커튼>에도 관련된 수필을 세 편 수록한 바 있다. 그만큼 그도 순수한 자유와 평화를 이 땅에 오게되는 것을 강렬하게 희망했다. 서민의 대통령이 당선되기까지 투표 결과를 지켜보면서 가족들과 아슬아슬한 반전을 뛰어넘었을 때 환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한 번 지지했으면 끝까지 해내야 했다. 재임기간 동안 열린우리당이 분열되는 과정과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보면서 정치현실에 눈감았다. 개혁의 깃발을 내걸고 권위의식을 탈피하여 지방발전을 내걸었지만, 역시나 기득권과 권위주의 세력과 싸우는 과정은 눈물겨웠다. 잘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보완하며 함께 잘 해나갈 수 있는 풍토는 어느 조직이든지 마땅히 해내야 할 일인 것을. 사람들의 조직에는 언제나 진보와 보수, 다른 의견이 있기 마련. 예술의 분야에까지 사람들의 조직의 운영에는 운영자들의 편리에 따라서 행해지기가 십상이지 않은가. 어찌 말단의 아무 힘도 없는 서민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재임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좋았다 제발 좋은 고향의 모델을 만들어주기를 바랐다. 나의 살던 고향의 프로젝트에 대한 꿈을 말하던 모습이 참으로 아깝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이쯤은 돼야지 않습니까, 나의 살던 고향은 감나무가 썩어 가는 곳, 하면 되겠습니까?" 퇴임 후 오히려 고향에서의 모습에 국민들의 인기는 올라갔다. 그러니 예의 주시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가. 성웅 이순신의 마지막 죽음의 장면이 겹쳐지기도 하는 대목이다. 이순신 장군도 그 당시 정치적 보복을 받은 것이 아니었던가. 회생하기가 불가능했던 해전에서의 연승으로 그는 국민의 추앙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백의종군하는 입장에서 전쟁이 끝나고 영웅이 되어 국민의 품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없었던 이순신의 마지막 선택. 전장에서 갑옷도 입지도 않은 채 선상의 죽음을 맞이하려던 비장한 입장이었을까. 그 당시의 사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런 상상을 많은 이들은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앞으로 살아갈 일이 너무나 힘들고 비참해질 것을 알았던 것이다. 어차피 죽은목숨이었다. 어찌 시체로 살아남기를 원할 수 있었겠는가. 너무나 힘들어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불면을 날을 보내야 했던 그였다. 벼랑 위에서 경호원에게 했던 한 마디 '저기 사람이 가네!' 경호원의 시선을 따돌리기 위하여 했던 말치고는 너무나 인간적임을 또한 우리에게도 그런 인간임을 생각케 하는 말 같기만 하다.
   아이들이 서울로 올라간 뒤 일요일 하루는 뉴스를 통하여 고인의 일생을 회고하면서 쉬고 월요일 아침 일찍 금산사 분향소로 향했다. 명부전에 마련된 빈소에 국화 한 송이를 올리고 차 한 잔을 헌차 했다. 이 좋은 5월이 우리에게 슬픈 계절이 되게 한 점 천지에 몹시 부끄럽다. 5월의 찻잎을 채취하면서 하루를 조용히 보낼 수 있었다. 이른봄에 꽃핀 나무에는 열매가 익어가고 있었고 5월에 나타나는 뻐꾸기가 다른 새들의 소리에 맞춰 세상을 뜬 사람들에게 애도의 곡을 토하는 듯했다. 삼가 고인과 유족들에게 추모의 정을 보낸다. (5/26/2009)
 

 

 

 

 

 

 

 

 

 꽃양귀비 씨앗이 화분에 떨어진 것을.

 

 

 

 

 

 

 

 

 

 

 금산사 해탈문 앞 조그만 어장에서, 사람들이 물고기를 낚아 가서, 그물을 쳐놓았다고..

 

 

 

 

 

하얀 능금꽃나무 아래서 하늘을 보았다. 

 

 

 둥글레 꽃

 

 

 능금꽃이 떨어져 흐르고

떨어져 흐르는 것이 어찌 꽃잎 뿐이겠는가

 

 

 

 

 벚찌가 맺어서 따먹었습니다.

 

 이 꽃은 산능금꽃인가...

 

 

 애기똥풀꽃이 씨앗을 맺고 있어요.

 

 개엉겅퀴도 예쁜 보랏빛을

 

 새 억새풀이 억세게 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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