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수수필집<바람의 커튼>

제 4부 새들의 노래 <바람의 커튼>

차보살 다림화 2009. 9. 7. 19:59

<바람의 커튼> 4부, 새들의 노래   2008/11/11 19:03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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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커튼>

 

 

4부


  - 새들의 노래 -


1. 새들의 노래

2. 명상음악에로의 초대

3. 배경이 되는 즐거움

4. 낙조의 향연

5. 컨택트 (contact)

6.  바람의 커튼

7. 운명은 빗줄기 사이로

8. 잔은 비어 있어야

9. 마음의 장치

10. 새의 가슴을 지니고




 

1

새들의 노래


                                                         조 윤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모차르트로 아침을 열기도 한다. 요즈음 나의 아침은 뒤창으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열린다.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이 없는 날은 오전 한 때를 느긋이 오리지널 사운드에 잠겨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생명이 약동하는 봄철이 시작되면서 봄의 왈츠로 시작하여 비엔나 숲 속의 이야기는 물론 웅장한 심포니까지 들을 수 있다. 이름도 알 수 없고, 모양도 알 수 없는 예쁘고 고운 텃새들의 지저귐에 빠져들게 된다. 밤사이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의 바다에 잠겨 있던 영혼이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새들이 이끄는 대로 하늘로 날기 시작한다. 새들의 재잘거림은 바람소리와 나무 잎 스치는 소리와 교차하면서 내 마음의 심연에 닿아 묘한 마찰음을 낸다. 그들 합주단의 한 악기로 변신하는 것 같다. 앞산과 뒷산의 뻐꾸기 소리는 시냇물 구르는 소리로 들려오다가 숨 가쁘게 기쁜 비명을 울려대기도 한다. 가끔은 묵직한 베이스를 넣는 '꿩, 꿩'하는 소리가 재미있다. 더위를 식혀주는 매미소리도 찌- 잉 울려 퍼진다.

    프랑스의 현대 작곡가인 올리비에 메시앙은 새 소리만 채집하여 많은 음악을 작곡하였다. 메시앙은 어렸을 때부터 새 소리를 좋아하여 숲 속을 돌아다녔다. 그는 "예술적인 서열로 보자면 새들이야말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음악가들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계곡의 언덕에 별장을 가꾸는 J는 음악을 좋아하였다. 그의 큰 음악 홀은 방음 장치가 잘 된 훌륭한 오디오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 음악 기기와 음반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고액의 보험과 도난방지기까지 구비하고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지 그 기계들을 사랑하는지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어느 날 작은 음악회를 위한 모임이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였는데 아무도 실내 음악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그 날의 모임의 목적을 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알프스 산자락 같은 언덕을 배회하는 관광객이 되어 주변 자연 경치에 젖어들어 감탄사를 노래하고 있었다. 숲이 울창한 계곡에는 저녁놀이 드리우기 시작하면 멀리 나들이 떠났던 새들이 둥지를 찾아든다. 특이한 음색을 지닌 새들의 무리가 자아내는 이야기는 밤이 이슥해지도록 끝날 줄 몰랐다. 그 날의 음악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멋진 기억이 될 것이라고 모두 입을 모으며 헤어졌다.

   자연의 소리를 듣게 되면 음악이 필요 없게 된다고 어느 현인이 말했던가. 메시앙도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음악언어가 부질없는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부터 새 소리는 자신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기 시작했다고 했다. 덧없는 세상살이를 뒤로하고 그는 세계의 새소리를 채집하는 조류학자가 되었다. 그의 '하늘나라'에는 멕시코의 새소리, 프랑스의 새소리, 스웨덴의 새소리, 일본의 새소리까지 동원되었다. 그의 음악적 재능과 코드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하여 세계의 새소리까지 상상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천지의 소리가 내 안에서 흐르는 것 같이 느껴진 어느 한 순간부터 메시앙의 음악세계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새에서 별까지, 우주세계에서 신의 소리를 찾았다는 메시앙이 조금은 가까이 느껴진다. 끝없는 성운으로 차 있을 진공(眞空)의 소리까지 표현한 그의 음악언어에서 미지의 하늘 속을 날아 본다. 공중의 새처럼.

   성악을 좋아하지 않던 내가 '88올림픽 때부터 한국의 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의 노래를 들으면서부터 그의 팬이 되었다. 천상의 소리를 낸다는 그의 소리가 꾀꼬리 같은 새의 음색을 가장 많이 닮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내한했던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50대의 원숙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32년 전 아직 20대의 그녀가 혜성과 같이 서울에 나타나서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정열적으로 연주했었다. 그녀의 연주를 더욱 화려하게 빛을 내게 했던 사람은 영국 필하모니의 지휘자인 앙드레 프레빈이었다. 정경화의 바이올린 선율을 실은 그의 지휘봉에 압도된 청중들에게 그는 오랜 동안 전설적인 음악인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 앙상불의 감동을 같이 했던 기억으로 다시 만나는 그녀의 음악은 많은 세월을 넘겨온 인생의 깊이를 더한 세련미가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결혼하여 두 아들을 기르면서 인생의 깊이와 더불어 음악의 세계도 더 풍부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고. 그리하여 20대는20대의 연주가 있으며 삼사십대와 50대의 연주가 다르다 했다. 같은 20대 때 그녀의 관객으로 호응했던 내게, 같은 길이의 인생을 연주해 온 동지로서 느껴지는 공명이 있었다.

   50대를 갈무리하면서 다음에 오고 있는 생을 맞을 준비를 한다. 20대의 독주, 30대의 트리오와 실내악의 불협화음을 넘어, 40대의 뮤지컬, 50대의 합창과 심포니 같은 인생이었을까? 이제야말로 육체의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유유자적한 조화의 화음을 즐기리라. 온 종일 자신의 이름만 불러도 아름답기만 한 새들의 노래솜씨를 왜 진즉 연습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무대와 청중이 따로 없는 자리에서 그동안 듣지 못했던 자연의 연주를 즐겨보리라. 텃새들이 자유로이 노래하고, 철새들이 안전하게 머물다 가고, 함께 우주의 드라마를 꾸며갈 대자연이 길이 보존되기를 기도하면서.

(2002년 여름)


















명상음악에로의 초대



                                                              조  윤수



   대나무 숲 속에 서서 하늘을 올려본다. 검은 하늘 바탕에 겹겹의 잎새들이 하얗게 떠 있다. 오늘밤은 여러 달이 땅바닥에 앉아 있네. 긴 세월 역사의 숨결이 배인 천년 묵은 느티나무가지 사이에 고색창연한 지붕 끝이 뾰족하게 걸려 있구나. 갑자기 모여드는 인파들의 발자국 소리에 매미들과 풀벌레들이 반가운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한 가닥의 피리소리에 여름이 꼬리를 내린다. 곤충들의 연주도 물러간다. 고요한 밤의 적막을 깨고 퍼지는 피리소리에 실려 나는 티벳의 설산 위로 날아가고 있다. 투명하기 그지없는 바다 빛 하늘 위 흰 구름이 되어서 시린 얼음 바람을 타고 흐른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그 피리소리는 이미 전생부터 내 안에 흐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몇 시간 전에야 그 소리가 나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신들린 듯이 그 소리는 나를 경기전 안뜰까지 이끌어냈다. 전주소리축제의 한 마당인 '명상음악에로의 초대'였다.

   Nawang Khechog(나왕 케촉)의 대나무 피리소리. 나왕은 전설의 성자 '밀라레빠'의 나라이며, 영원한 달라이 라마의 나라, 티벳에서 온 세계적인 명상음악가이다. 이름만 들어도 신비한 '달라이 라마'. 그가 열반하면 환생하는 어린 그를 찾아서 새 달라이 라마로 추대한단다. 그렇게 하여 이어지는 달라이 라마는 지금 14대라고 한다. 달라이 라마는 티벳이 무력으로 중국에 귀속된 이후 독립을 위해 인도의 다람살라에 망명 정부를 세웠다. 망명의 상황에서도 끝내 비폭력과 평화를 고수하는 그의 사상을 음악으로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는 나왕 케촉이다.


   한 쪽 어깨와 팔을 드러낸 도포를 껴입고 무대 좌석으로 올라오는 그는 나비 같이 사뿐히 앉는다. 잠시 가부좌로 앉아 입정(入靜)에 들어간다. 나는 눈을 뜨고 그를 주시하면서 그의 입정에 동참한다. 몇 분이 흐른 뒤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 숙여 인사말을 하는 나왕. "달라이 라마가 한국을 방문하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불교, 천주교, 기독교가 화합하면 국력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나의 나라 티벳은 자유를 잃었습니다. 우리 티벳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가슴이 찡해온다.


   입에서부터 왼쪽 옆으로 길게 대나무 피리를 들고 그림 같이 앉아 있는 그의 자태는 평화 그 자체다. 도저히 피리에 숨결을 불어넣어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입도 달싹거리지 않는 것 같다. 스피커에서 울리는 소리가 아니다. 억겁의 시공 저 너머 어디에선가 내려온 소리는 나의 내면을 한 순간에 파도가 쓸어 내리 듯이 헤집어 내린다. 어느 사이 빨간 연꽃 두 송이를 든 비둘기 같은 무희가 하얀 날개옷에 싸여 어스름 달빛을 타고 내려온다. 비둘기는 피리 음률에 맞춰 자비의 날갯짓을 파닥인다.

   기다란 나팔 같은 티벳 악기인 '퉁첸'과 호주 원주민의 악기인 '디저리두'까지, 이름도 생소한, 다양한 목관 악기들에서 자유를 향한 영혼의 울림이 흐르는 강물이 되기도 하고, 깊은 바다 물결이 되기도 한다. 온 세계를 떠도는 티벳 난민들의 향수가, 이름 모를 영령들의 첩첩한 고독이 바람 소리가 되고, 흰 구름이 되어, 빙산을 넘어 하늘 끝으로 사라지고 있다. 자유를 갈구하는 모든 영혼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다. 히말라야 기슭의 한 동굴을 울리는 듯한 음색의 소리는 수많은 영혼들이 한데 모여 불어대는 웅장한 울림이다. 동굴에서의 애달픈 그리움과 고통의 울림은 한 번 빠지면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우주의 블랙홀 속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독한 영혼들은 맑게 깨어 눈빛 아프도록 투명한 빙하가 되어 다시 흐른다. 어느 덧 연주자와 청중은 사라진다. 산뜻한 평화만이 잔잔한 물결이 되어 흐르고 있다.


   나왕은 달라이 라마의 축복 속에서 11년 간 수행자로 지내기도 하였으며 히말라야 기슭의 깊은 동굴에서 4년 간 은둔 생활을 하기도 하였단다. 습기 찬 동굴에서 새로운 세계, 인류의 미래를 위한 자유의 메시지를 불고 있었다. 그의 몸은 나팔 같은 악기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완벽해지기 위하여 일부러 연습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말하였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예술적 감흥과 미학적 견지를 넘어선 곳에서 나오는 것이라 한다. 예술적 논리에 둔한 내가 그의 음악으로 하나 될 수 있는 요인이 바로 그 점인가 하였다. 누구나 원하고 누려야 할 자유와 평화이기에…. 처음 듣는 사람, 누구라도 그의 피리 소리에 매료되는 까닭이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오른 손을 펴서 귀에 대고 육체 자체의 악기로 내면의 소리를 불어내었다. 너무나 인상적인 그 소리는, 깊은 동굴에서 끌어올리는 그 어떤 기도보다 엄숙한 진리의 울림 같았다. "모든 사람에게 평화가 깃들어 서로 사랑하게 되기를…." 합장하는 그의 두 손에서 평화와 안식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2002년 8월)























배경이 되는 즐거움


                                 조 윤수


   요즈음 멋쟁이들은 자신의 머리에 돋보이는 색깔로 브리지(bridge)를 만든다. 한 줄기의 머리카락을 본래의 머리 색깔과 다른 색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똑 같은 다리라는 의미인데 머리의 브리지는 다리라고 말하면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튼 머리의 브리지도 강물 위의 다리처럼 자신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 된다.

우리 동네의 산책로인 삼천을 따라가다 보면 전주천과 만나는 합수점까지 네 개의 큰 다리가 있다. 다리 밑에도 길(언더패스)이 세 개나 있고, 또 하나의 다리가 건설 중이다. 밤이면 강변의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여 냇가의 둔치에서 열심히 걷는 사람들이 많다. 삼 색 등이 켜있는 다리 난간에서 강물에 거꾸로 비치는 아파트촌을 내려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옛날에는 큰물이 지면 내를 건널 수없어 학교에도 갈 수 없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큰 냇물이 막혀서 학교에 못 갈 일은 없었지만, 다리라면 나는 어린 시절 부산의 영도다리를 잊지 못한다. 큰 배가 지나갈 때 다리가 들린다고 해서 그 진풍경을 보려고 영도다리까지 걸어갔었다. 그 광경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다리가 들릴 시각에 몰려들었다. 전쟁으로 음산했던 부산의 거리가 더없이 멋졌던 것은 영도다리의 묘기와 송도해수욕장까지 해안을 따라 걸어갈 수 있었던 때문이었다. 내가 영도다리 난간에서 미친 듯이 춤추는 파도를 보면서 그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망망대해를 헤엄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내 의식의 바다를 헤엄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때 이미 암시 받은 건 아닐까 하고 가끔 생각한다. 육이오 이후 반 백년이 지난 지금의 부산은 전쟁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버금가는 광안대교와 영도대교가 세워져서 세계의 손꼽히는 항구도시와 어깨를 겨눌만하다.


   다리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강의 미라보 다리와 유럽의 도시들이 걸쳐있는 도나우강의 다리를 이야기한다. 다리는 자연과 구조공학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 때문에 우리에게 꿈과 낭만을 갖게 한다. 다리 위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연인들의 모습, 사랑을 주제로 한 유명한 영화와 드라마에는 틀림없이 아름다운 다리가 배경이 된다.

 

   조선시대 정조대왕의 능행도(陵行圖)를 보면 한강을 건너는 풍경이 장관이다. 국왕 행렬이 한강을 건너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큰 배를 수십 척이나 이어서 묶은 뒤,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오늘의 부잔교와 같은 교량을 만들었다. 백성들의 배를 일정기간 징발하여 놓는데 한 달, 푸는데 한 달씩 걸려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더란다. 요즈음 사람들은 옛날에 그 요새 같았던 강산을 얼마나 느긋하게 즐기고 있는가.  강이나 천 변 둔치마다 공원과 산책로를 만들어서 밤낮 가리지 않고 걷거나 산책할 수 있으니 말이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의 이미지인 서울도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한강에는 행정가도 미술가도 색연필과 붓을 들고 나타나서 이상한 초승달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밤에 한강변을 달리다 보면 조명시설을 갖춘 다리들이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을 연출해낸다. 다리의 아치와 아치 사이의 난간 밑에서 크리스탈이 반짝이고 강폭에는 예쁜 너울 띠를 걸어놓은 듯, 그야말로 젊은이들의 머리칼의 브리지를 연상하는 매력적인 다리도 있다. 500년의 역사를 가진 유럽의 돌다리를 부러워하지 않아도 밤에는 한강의 다리들도 아름답다. 앞으로 청계천이 복구되면 거기 없어졌던 옛 돌다리 광교가 세워질 것이고 서울 강북의 한복판에서도 낭만이 흐를 것이다.


   다리가 있어 이쪽 마을과 저쪽 마을이 이어진다. 다리는 언제나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통로이고, 다리를 건너면 새 꿈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리가 걸려 있는 강은 하나의 풍경이 되고 그래서 그 다리를 건너보고 싶어진다.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6.25 당시 피난민들이 헤어지면서 부산의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해서 많은 실향민들이 거기에 모여들었고, 다리엔 온통 찾는 사람 이름을 적어놓았던 적도 있다. 그리고 다리 옆에 점집이 많이 생기고 잃어버린 형제의 운명을 점친다고 또 사람들이 영도다리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때의 영도다리 난간에는 한 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이 함께 걸려 있었던 것이다.


   살아오면서 작은 냇물과 강을 만날 때마다 징검다리가 되어주기도 한 사람들과 다리를 놓아준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으로 나오는 처음의 다리가 되어준 부모를 비롯하여 형제, 친구, 스승 그리고 수많은 이웃과 사회가 있었다. 건너지 못할 것 같은 냇물에 다리를 만들면서 고생했던 날들. 큰 강가에 닿았을 때 그 강을 건너면 행복의 나라가 있다고 같이 뗏목을 만들어 보았던 체험들은 서로에게 삶의 배경이 되어 인생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자신만이 스스로 건너야 하는 종국의 강은 무엇으로 건널까. 탈무드에 자신의 말(言語))은 자기가 건너는 다리라고 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은 지금의 나에게 적절한 말인 듯하다. 한 생각, 맑은 의식이 나를 건너게 하는 다리가 될 터인즉 두드리고 또 두드려 보아야 하리라.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서로 배경이 되어주는 기쁨이라고 어떤 시인이 말했다. "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딘 땅처럼." 누군가 나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주었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과연 징검다리의 돌 하나라도 되었을까. 다리 위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누구라도 걷고 싶은 강물 위의 다리처럼 아름다운 배경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다.  (2005년 1월 30일)

  <산빛은 시간 따라> 수필과비평작가회의동인지 3집 2005년 발표













4

낙조의 향연


                                           조 윤 수


   빛은 황홀한 떨림으로 어둠 속을 파고든다. 물이 빠져있는 해변은 넓은 개펄이 드러나고 있다. 붉게 물든 바다 속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고래 등처럼 거뭇하게 떠 있다.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갓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한용운님의 시귀를 생각한다.

  

   초겨울 노목(老木)들은 잎새를 다 떨구고 사철나무 사이로 아름다운 몸매를 드러내고 있다. 노목들의 나신(裸身)사이로 보이는 석양의 해안은 한 장의 매혹적인 그림이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풍경소리와 그림이 자아내는 화음은 무아지경에 들게 한다. 소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석양이 감나무와 여러 나목들과 정답게 어우러져 겨울연가를 연주한다. 애타는 주홍빛의 노란 자위는 소나무 밑에서도 몇 백 년의 세월을 지닌 은행나무와 느티나무의 앙상한 곡선을 정다운 손길로 어루만진다. "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 붉게 물든 / 가을 저녁노을/ 사랑도 저만큼은 열렬해야 해 / 소리쳐 본다/" 용혜원님의 시 한 구절이었던가. 노을의 열정으로 춥지가 않다. 저토록 아름답게 타오르며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할지니. 인생의 저물녘으로 들어선 네 자매가 말없이 느티나무처럼 바다를 향해 서 있다.

   석모도는 기름진 들녘과 산, 바다와 천연 갯벌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갖가지 전설을 지닌 보문사와 환상적인 낙조의 풍경이 있어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서해가 한 눈에 훤히 내려다보이는 보문사는 석모도의 한가운데에 있는 낙가산의 가파른 중턱에 위치해 있다. 석모도에 가기 위해서는 강화도의 외포리 선착장에서 석모도까지 10여분이 걸리는 카페리를 타야 한다. 카페리는 자가용 40대와 버스까지도 실을 수 있다.    

   자동차를 탄 채 바다 속으로 빠지는  듯 배에 오르는 기분이 짜릿했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갈매기 떼가 뱃전에 서 있는 우리들의 머리 위로 날아와 눈맞춤을 할 수 있었다. 사뿐한 날갯짓이 몹시 부러워 나도 날개를 펴는 시늉을 해보았다.

  갈매기라면 늘 갈매기 조나단을 떠올린다. 높이 날아 멀리 보려는 꿈이 없는 이 갈매기 떼는 관광객들이 손바닥에 새우깡을 올려놓으면 날아와 먹이를 쪼아 먹고는 바다 위에서 물놀이만 즐긴다. 그래서 먹이를 낚는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 갈매기가 되었다. 갈 길을 잃고 놀이에 빠져버린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문사는 경주 석굴암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석굴사원의 하나다. 양양낙산사와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 도량이다. 보문사 아래 매음리의 어부들이 고기를 잡다가 건져 올린 돌덩이를 현몽(現夢)대로 안치하니 부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나 지금의 석불은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내에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상을 비롯한 미륵상과 나한상을 안치하였다. 석굴 안의 나한상 주위를 거닐어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의 기원과 부처님들의 가피를 받는 듯 고요한 힘이 느껴졌다.

   절 뒤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이 타고 인도양을 건너 오셨다는 전설이 있는 배 바위가 있다. 그 아래 눈썹바위 밑의 마애석불좌상이 유명하다. 벼랑에서 석불을 조각했던 석공은 매일 돌을 쪼다 힘겨운 저녁 무렵이면 손을 놓고 주저앉아 저 서해바다를 망연히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문득 석공의 혼도 석불좌상의 일부분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스님들과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려 모여들었는지, 그 당시에 썼다는 맷돌과 절구통이 말해주고 있었다.

   석실 앞에 서 있는 늙은 향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큰 바위틈에서 자라고있는 이 향나무는 입구의 은행나무와 마당에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와 더불어 서로 기막힌 대비를 이룬다. 어마어마한 밑둥치가 땅위에서 용트림을 하고 있어 원줄기는 동, 서쪽으로 갈라져 있다. 비틀어진 밑둥치 속은 오랜 풍상을 겪은 후 기브스를 한 채 의연하다. 6.25동란 중에 죽은 것 같이 보였다가 3년 후에 다시 소생하였다니 얼마나 영험한 기도도량이었는지 헤아려졌다. 천년 전의 영험은 이 시대에는 효험이 없을까. 기도의 방법도 시절 따라 유행을 타는 지도 모르겠다.


   모일 때마다 서로 몰랐던 옛 추억의 타래를 찾아 구멍 나고 바랜 천을 짜깁기하고 있는 우리 네 자매들의 이야기도 나목들의 겨울연가와 어울려 조화로운 쌍곡선을 이루는 듯 하였다. 치렁치렁한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나무들처럼 우리들도 놀 속에 녹아들어 그림 속의 일부분이 되었다. 감히 아름답다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엄숙하고도 처연한 일몰. 품안에 있던 것들과 입맞춤하며 이별해야 할 석양. 여운이 사라질 때까지 넋 놓고 놀빛을 마음껏 마셔댄 눈시울이 화끈거렸다.

   별이 쏟아지는 밤이 돌아가는 차창 안으로 들어왔으나 아무도 아직 낙조의 갯벌 바다에서 나오지 않은 듯하였다. 인생의 황혼기를 줄줄이 엮어 갈 우리들이기에 바스락거리며 떨어질 듯 퇴색한 잎새들을 지닌 채 석양빛을 받던 석모도의 겨울 산 숲이 더욱 정겨웠던 것일까.

   빛과 어둠이 손 맞잡고 부르는 사랑가였던가. 어둠의 반주가 있을 때만이 태양은 그 고혹적인 색채의 극치를 발휘하나 보다. 하루의 태양처럼 우리도 날마다 남김없이 자신의 빛을 발하며 조화로운 일상을 빚어간다면 생은 즐거운 축제였다고 돌아가는 기로에도 환한 미소를 남길 수 있을 텐데. (2002/12)
















컨택트 (CONTACT)

-접신(接神)-

                                                              조 윤 수


   엄청난 공간 낭비라!

   오래 전에 보았던, 외계인과의 아름다운 조우를 그린 조디 포스터(엘리 분) 주연의 영화 '컨택트'에 나온 말이다. 황산비만 내리는, 유독 가스만 있는 은하계 4천억 개의 별. 우주에는 백만 개에 하나 꼴로 지적인 존재와 수백만 개의 문명이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천문과학자들은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엄청난 공간 낭비라고 했다. 안 그럴까?

   그 영화에 나오는 베가성이 바로 거문고자리의 알파별이다. 서양 사람들은 이 별자리를 보고 신화에 나오는 하프를 떠올린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직녀성이다.

   어린 엘리는 햄 무선통신을 좋아했으며, 아무리 큰 무전기라 해도 돌아가신 어머니를 호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후원자인 사랑하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후, 그녀는 자신이 찾고자 하는 절대적인 진리의 해답은 과학에 있다고 믿게 된다.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인 그녀는 결국 천문학자로서 외계문명으로부터의 신호를 포착하는 프로젝트의 중심적 인물이 된다. 그녀 역시 '이 거대한 우주에 우리만 존재한다는 것은 공간의 낭비다.' 라는 신념으로, 진리 탐구의 영역을 우주로 넓혀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찾아내는 것을 궁극적 삶의 목표로 삼게 된다. 엘리는 일주일에 몇 시간씩 위성을 통해 외계 지능 생물의 존재를 계속 탐색하던 중 드디어 베가성으로부터 정체 모를 메시지를 수신 받게 된다.

   엘리 박사의 메시지 확인에 대하여 공상과학 같다고 황당해 하는 후원자들에게 엘리는 말한다. "사람을 태우고 새처럼 나는 일은 황당한가? 화성으로 가는 것은? 음속을 나는 것은 어떤가? 달나라 여행과 원자력은? 공상과학인가? 조금만 넓게 보아 달라, 한 발짝 물러서서. 역사에 역사를 통틀어서 인류에 중요한 영향력을 줄 것이다." 마침내 디지털 신호의 암호가 해독되고, 그 결과 그 신호는 은하계를 왕래할 수 있는 운송 수단을 만드는데 필요한 설계도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종교철학자이자 행정부 고위 참모가 된 파머 존스가 엘리 곁에 나타나는데, 그는 한 때 엘리와 연인 사이기도 했다. 당시의 인연을 잇지 못했다가 외계 생명체에 대한 공통된 열정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옛 정열이 남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파머는 엘리가 베가성에 가는 것을 말린다. 베가성에 가서 돌아온다 해도 4년이겠지만 엘리가 아는 모든 사람은 없다는 것. 여긴 50년이 지난다는 것. 베가성에 가는 이유가 뭔가. 왜 위험한 일에 목숨을 바치려는가 하고 설득한다.

   "난 여렸을 때부터 뭔가 찾아 헤맸다. 왜 우리가 여기 있으며 난 누구인가. 그 해답의 일부라도 얻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용감한 여자요?, 아니면 미친 여자요?." 하는 파머에게서 사랑을 느끼면서도 혼란스러워 하는 엘리. 파머는 계속 말한다. 과학기술 덕분에 궁극적으로 더 좋아졌느냐. 인터넷으로 쇼핑도 하지만 동시에 뭔가 공허하다. 사람은 외로워지고 빠른 속도로 서로 통합되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서로 동떨어져 있다. 우리가 찾고자 하는 것은 의미이다. 베가성에 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정신 없이 일하고 미친 듯이 휴가를 가고 과잉소비를 통해서 삶의 공허를 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딘가 방향 감각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밤하늘은 아름답고 멋지다. 인간이 갈망하는 것의 의미를 과학이 제공해 주지 못한다는 친구의 말에 엘리는 말한다. "과학이 마치 신을 죽였다는 말처럼 들린다. 애초에 신이 없다는 것을 과학이 증명하면 어쩔 건가?

   마침내 엘리는 이 외계의 우주수송기를 타고 엄청난 진동 속에 수 개의 웜홀(worm hole)을 통과한다. 그녀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베가성에 도착하여, '아! 너무나 아름답다. 시인이 왔어야 했다.'고 첫 탄성을 질렀다. 아버지의 형상을 한 자와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그러나 발사된 지 단 몇 초 만에 수송기는 바다에 낙하된 상태로 아무도 그녀가 경험한 18시간의 외계 여행을 믿지 않는다. '증명되지 않는 존재를 믿어야 하는가' 라는 오랜 종교적 질문 속에, 엘리의 경험은 증명되지 않는 그녀만의 경험이 되고 만다. 하지만 파머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그녀의 경험을 지지하였다.


   이 영화의 작품성에 대한 비평을 할만한 안목은 없으나 내게 감명을 주었던 것은 엘리가 진리 탐구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 전 생애를 두고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공감되는 엘리의 말은 나의 말이기도 했다. "전 경험했습니다. 증명하거나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인간에게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제 인생에 변화를 가져 올 중요한 경험을 했습니다. 비록 우리 자신이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이지만 아주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우주는 내게 보여줬어요. 우리는 우주에 속해있는 귀중한 존재이며 또한 결코 혼자가 아니란 걸 깨닫게 해줬어요. 전 그 경험을 나누고 싶어요. 모든 분들이 잠시라도 제가 겪은 그 놀라운 사실을 함께 공유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제 희망입니다."

   그때, 나도 똑 같이 엘리와 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 비록 과학자나 종교철학자는 아니지만 명상프로그램을 통하여 실감나도록 감각적인 우주여행은 가능하였다. 어느 해 나는 거의 일년 내내, 최소한의 의식주 생활에 필요한 일 외에는, 내 영혼의 촉수에 온 전력을 집중하고서 자나깨나 그 명상에 빠져 있었다. 나의 철저한 육체의 죽음 후, 영혼만이 저 광대한 우주 공간의 한 별에 걸터앉아 까마득한 한 점에 불과한 초록별을 내려다보고 지구에서의 삶을 되돌아보았었다. 살아서의 죽음만이 부활의 삶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드디어 그 영혼마저 소멸하고 내 흔적은 찾아볼 수 없어지고 우주차체에 흡수되어 버렸을 때를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어떤 통로를 거치든, 누구나, 얼마나 지극하게 물었느냐에 따라서 거듭남의 비밀을 깨달을 수는 있다. 수 개의 웜홀을 통과한 후 베가성을 체험한 엘리처럼.

   혹자는 과대망상 같다고 믿지 않겠지만 지지자들은 있었다. 같은 진리를 추구하는 입장인 사람들. 나와 같이 마음의 우주선을 탔던 수많은 동지들과 영화 속의 엘리, 그리고 컨택트의 모체가 된 공상과학 소설인 '코스모스' 의 저자인 우주천문학자 칼 세이건. 이 모든 이들과 걸림  없는 하나의 위대한 의식으로 만나는 듯한 기쁨은 이미 말글의 세계는 아니었다.

   그 경험 이후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파머는 신앙인으로써 엘리와 입장은 다르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바는 같다는 데서 그녀를 믿게 되었다.

   "우주 밖에는 외계인들이 있나요?" 란 후배 꼬마 과학자들의 질문에 엘리는 이렇게 답한다. "각자의 질문에 각자가 대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막막한 사막 같은 초원에 앉아 전보다 더 많은 우주 안테나를 세우고 먼 하늘을 바라보는 엘리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영원 이전부터 영원영원 이후까지 모든 것이 소멸해도, 창조주 본래의 자리인 무한대 순수 허공인 우주는 절대로 공간 낭비를 하지 않는다고 나도 믿는다. (2004)



 

 

 

 

 

 

6

바람의 커튼


                                                             조  윤 수



   뒷동네 한옥은 마침내 숲 속의 집이 되었다. 푸른 산 숲이 배경이 된 용마루 끝으로는 그 뒷집 담장의 빨간 넝쿨장미가 걸려있어 보기 좋다. 가을에 감나무 잎이 떨어지면 그 집 마루는 막이 올려진 무대 같았다. 햇살 좋은 날엔 마루 안까지 보이고 아이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추운 겨울은 마루가 휑하니 써늘하게 보였다. 봄이 되어 감나무 잎이 커튼이 되고 그 집의 마루는 막이 내린 무대 같아 보인다.

 

  “얼굴을 쳐들면 보이겠지요. / 바람의 커튼. / 지구가 무대가 되지요. / 뭔가가 나선다. / 당신이 있으니까. / 뭔가가 변한다. / 내가 있으니까.”

  

   나물을 뜯으려고 언덕 위 미나리 밭으로 간다. 마른 풀 덤이 위에 앉아서 무심히 미나리를 캔다. 봄 들녘은 야생 약초밭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야생초들. 하느님과의 직거래가 이루어지는 이 들판. 무조건적인 사랑의 맛. 잠시 하늘을 우러러본다. 메아리쳐 오는 노래 '바람의 커튼'이 들리는 것 같다. 어렸을 적, 마음의 작은 창문을 열고 지구를 무대 삼아 뛰었던 그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지구의 무대에서 폴카를 추고 있을까?


   한 줄기의 바람이 이마의 땀을 시원히 닦아주고 휙 스친다. 하느님의 무대는 바람이 커튼이다. 커튼이 한 번 내려질 때마다 한 무대가 흔들린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 우주는 흔들린다고 했다. 늙은 갈대는 젊은 갈대가 싱싱히 키가 커질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싱싱하게 뻗어 오르는 새 갈대 잎에 지난해의 갈대는 한숨쉬며 바람의 커튼 뒤로 맥없이 하나둘 스러진다. 바람의 커튼이 젖혀진 서녘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걸려있다. 등 뒤로는 하얀 갓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흰나비와 벌들이 웅웅 웅성거리며 사랑의 몸짓에 취한다. 또 한 번 바람의 커튼이 휙 옆으로 제켜진다. 새들도 내 머리 위로 짝을 지어 나르고 까치들의 소리가 한낮의 정적을 깬다. 지난봄에 보던 새들은 아니다. 넝쿨장미가 마지막 불꽃을 날리면서 오월의 향연도 커튼 뒤로 사라진다.


   봄이 되면 우중충한 겨울을 걷어내고 산뜻한 봄차림으로, 가을이면 들녘의 낭만으로 집안을 꾸며보라는 광고와 새 정보들이 뜨지만, 이제는 그럴 시간도 없이 사계절을 집안에 늘어놓고 지내야할 판이다. 앞으로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을 것이 틀림없다. 무한의 시간 속에 한정된 이 세상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가. 붙어 있던 장식품들마저 다 떼어내야 할 때이다. 마음의 인테리어만 필요할 뿐이다.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그 무엇. 비운다고 비워도 비울 것만 있고 채우려하지 않아도 채워지는 것이 있다. 우주의 공한(空閑)인지도 모르는 바람으로 가득 찰 날이 있을 건가.

   님의 무대에서는 그 누구라도 귀한 주인공이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좋은 퇴역 배우라도 좋겠지. 순간, 순간 영혼을 다 바친다면 바람의 커튼이 제켜질 때마다 내 마음의 인테리어는 아름다워질 지도 모른다.


   빗줄기가 주렴을 걸어놓은 듯 하늘의 무대는 오늘 빗줄기가 커튼이 되어 아늑한 분위기의 무대가 꾸며진다. 여름을 재촉타 못해 태양도 지치는가. 하늘은 내려앉고 대지는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 바람의 애무를 기다리는 듯. 구름이 커튼을 제키니 비가 되어 내린다. 마음이 젖을 때 여자들은 미용실에 가기도 한다. 산뜻한 모습으로 하느님의 무대로 나선다. 아직 해질녘에 ‘길을   묻는다’ 는 테마의 음악이 끝나지 않았다.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는 누군가의 간절한 외침으로 들리기도 하고 절벽인 가슴을 두드리는 것 같기도 하다. 후드득거리는 빗줄기 사이로 달린다. 가로수가 녹음의 터널을 이룬 산길로 들어선다. 넉넉한 님의 품안으로 안겨드는 산봉우리들. 가슴이 설렌다. 열어 놓은 창문에 하늘거리는 커튼처럼 하얀 비안개가 천의(天衣)처럼 산과 계곡을 휘감고 내려온다.

   한 번 젖은 몸은 두 번 다시는 젖지 않는다.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다. 성의(聖衣)가 드리워진 호수는 더 이상 비에 젖지 않고 편안하다. 산 그림자도 오늘은 안개 속에서 편히 쉰다. 하얀 비안개의 커튼 속에 가려진 먼 산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안개 속에서 꿈을 꾸고 있겠지.


   어떤 젊은 재미교포 작가가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 집에 왔다. “애야, 너의 집은 너무 더럽다.” 주섬주섬 치우며 어머니가 말했다는 것이다. “어머니, 저는 더럽게 하고 살아도 글 쓰는 것은 멈출 수가 없어요.” 하고 딸인 작가가 말했단다. 나야말로 그만한 작가도 아니면서 그 정반대이니 부끄러운 일이다. 오히려 딸이 우리 집에 오면 그렇게 말하고 산뜻하게 치워준다.

초록이 짙게 흐르는 숲 사이로 선홍빛으로 선명히 타오르던 넝쿨장미들도 잠시 비안개의 커튼에 얼굴을 묻고 촉촉이 젖어 기도하듯 적요하다. 여름을 부르는 비 소리는 추억의 노래처럼 들린다. 빗물이 유리창 커튼을 적실 때 솔질이라도 해주고 사람들이 밟고 오르는 층계를 빗물로 씻어 내리면 우리 집에도 바람의 커튼이 맑게 휘날릴 텐데 ….

“얼굴을 쳐들면 보이겠지요  / 바람의 커튼 / 지구가 무대가 되지요."  (2004. 6월 )

  <한국동인지문학> 2004년 3월호 발표











7

운명은 빗줄기 사이로

                                             

                                                             조 윤 수



   천둥번개가 번쩍번쩍 하늘을 쪼갠다. 갑작스런 소낙비가 쏴쏴! 전깃줄에 떨어진 빗방울이 쪼르르 쪼르르 줄타기를 하듯 매달려 어디론가 달려간다. 빗물은 유리창을 때리고 빗방울은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퍼져 내린다. 이렇게 소낙비가 내리면 추억은 빗물 따라 흐르고……. 따다다다 - 따다다다, 쭈르룩 쭈루룩. 베에토벤이‘운명이여 오너라’라고 소리치는 듯 힘찬 빗소리. 운명 교향곡의 1악장이 시원하게 울린다. 다시 잔잔한 2악장이 계속되려나? 길다란 빗줄기가 산 숲 위로 빗살무늬를 그린다. 여름의 이야기가 한 토막 한 토막 빗줄기 사이로 사라진다.


   사랑의 열기를 품고 달려갔던 연지. 내 얼굴의 홍조가 연꽃들로 더더욱 붉어져 가슴이 두근거렸던 그 새벽 녘. 이른 아침 안개 속에 시퍼렇게 넘실대는 연잎 사이사이로 올라와 있는 연꽃들이 그윽한 향기를 하늘 가득 내뿜고 있었다. 연못가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의 옷깃 사이로 연향이 날리며 한 풍경 속으로 어우러졌었지. 연꽃이 뜨거운 여름날에 피어나는 까닭을 어찌 알 수 있으랴만. 한꺼번에 다 타버리고 만다 해도 결코 태양을 저버릴 수 있으랴. 잠시도 멈추지 않는 천지의 운행 가운데 내 어찌 그 흐름을 막고 이 뜨거운 열정을 거역하랴! 원치 않아도 가고 있는 이 순간을 다 태우고 가야 할 뿐.


   봄 내내 푸르름을 뽐내며 산과 들은 여름의 절정을 오르느라 한 시도 한가할 틈이 없었다. 초록 카펫을 깔아놓은 듯, 한 끝을 말아 쥐고 둘둘 굴리면 한없이 감아질 것 같은 들녘. 말았다 폈다 할 수만 있다면 비어 있어 싸늘할 겨울 들녘을 위해 마련해 두고 싶었다.

   마침내 배롱나무에 빨간 꽃잎이 달리기 시작하니 초록의 바다는 긴 숨을 들여 마시고 생동감 넘치는 춤사위를 준비하는 듯 숨결이 바빠졌다. 홍백일홍, 아련한 백(白)백일홍, 백일 동안 피고 지는 사이 벼꽃들은 영글어 고개를 내밀고, 새 세상으로 뻗쳐 많은 생명들을 살릴 꿈에 부풀 것이다. 후끈하게 땀이 배여 끈끈한 여름날의 사랑도 한여름의 소낙비에 젖으면 다시 생기를 얻고, 밤바람 속에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뜨거운 열기를 날렸지.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생명들이 숨쉬는 숲 속의 밀어들, 아침 새벽부터 부지런한 새들의 요란한 지저귐. 여름이 아니면 언제 들을 수 있을 건가. 오랫동안 갇혀 품어 왔던 생의 분출을 위한 애절한 외침인가. 처절한 절규인 듯 온 생명이 다하도록 외쳐대는 매미들의 독주도 여름의 백미가 아닌가.

   흐르는 땀을 감당할 기력이 없어 쩔쩔매면서도 이 생명의 절정을 구가하는 여름이 빨리 가기를 원치 않았다. 여름 날 저녁 하루의 피곤을 느슨히 풀어내는 태양의 한숨인 듯, 노을 지는 서녘 하늘이 어찌나 고마운지. 결코 변하지 않는 위대한 유산, 사랑만은 멈출 수 없는 것. 빨리 가버리기를 원하지 않아도 원하기 전에 이미 가고 있는 이 여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벌써 풀벌레들은 매미들의 바톤을 넘겨받았는지 밤이면 가을의 서곡을 연주한다.

이 생명 다하도록 외쳐대는 매미의 노래처럼, 생명이 단 백일뿐이라면 백일홍처럼 그 뜨거운 여름을 식혀줄 수 있는 사랑을 피워낼 수 있을까. 단 하루가 일생인 하루살이의 운명 같은, 하루를 일생처럼 열렬히 살아야 할 생. 세상에서의 삶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기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쉬지도 않고 내리는 비. 유난히 뜨거웠다는 여름을 한꺼번에 씻어내려는 듯. 여름의 운명은 언제나 그렇다. 그냥 물러가지 않나 보다. 한가롭게 뜨거웠던 열정을 낭만적으로 식혀주지는 않는다. 처음에 미약하게 시작한 작은 ‘메기’는 갑자기 제트기를 타고 질주하여 세력을 확대하였다. 집중 폭우로 남쪽 곳곳이 침수되기에 이르렀다. 하늘 길도, 땅 길도, 철길도 끊어내고 우리의 운명을 시험하는 듯하다. 자연 앞에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여! 태풍 메기는 이 여름 또 한 번 인간의 뇌를 깨우는 것이리라.  (2004년 8월 18일)

  <한국미래문학> 2005년 제 16집








잔은 비어 있어야

                                               

                                    조 윤 수


   샛노란 옷을 입은 은행나무들이 활개 치며 반겨했던 길이었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던 시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 전주에서 남원 가는 길 춘향로를 달린다. 대빗자루 자국 난 빈 마당이 있는 절 집이 좋아 친정나들이처럼 다니고 있다. 온전한 차(茶) 한잔을 만나기 위하여 멀다면 먼 길을 즐겨 나선다. 나뭇잎들이 마지막 꽃물로 산을 채색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알몸의 가로수들을 지나치자니 얼마 전에 보았던 나체족들이 행진하는 사진이 떠오른다.


세계에는 많은 나체족들이 있고 허용된 누드 비치(Nude beach)도 많다고 들었다. 러시아에서는 최근 수년 동안 흑해 주변 크림반도와 모스크바 강 상류 지역을 중심으로 나체촌이 형성되고 있는 것도 유행이란다. 흑해 연안 체르니고크 시는 인터넷을 통한 나체 해수욕장과 나체 족 사진을 공개하며, 관광객 모집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인하여 난생 처음으로 가까이 본 사진이었지만 단체적으로 이벤트를 하는 장면이어서 인지 전혀 선정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나체족들의 행진모습을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에 운집하여 쳐다보고 있는 광경이 대조적이었다. 가지각색으로 보디페인팅을 하여 새로운 팻션를 보여주는 진풍경도 있었다. 열대지방 오지에서 옛날부터 나체로 살아온 민족들에게는 전혀 낯설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명에 대한 반기로써 일어난 문명 족의 나체 운동이라면 자연주의와 인간회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듯했다.

 

   중국에는 흔히 3대 화로(火爐) 도시가 있다고 하는데, 중경, 무한, 남경이란다. 40도를 넘는 여름날은 실내에서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땀띠가 온몸에 난다. 한여름 중국 남자들은 보통 웃옷을 벗고 다닌다. 거리에서 웃옷을 벗은 채 의자에 삼삼오오 앉아 잡담을 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또 휴일 날 남경 시내의 백화점은 이런 '반(半)나체 족'들로 가득하다. 시내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 백화점이기 때문에 웃통은 벗어버리고 반바지에 구두를 신은 '중국식 패션'이 이런 때 등장한다. 여자들은 더우면 치마를 허벅지 위로 걷어 올린다. 이런 자세로 길가에 앉아 있으면 다리 속이 훤히 보이지만, 중국 여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전거를 탈 때도 한 손으로 치마를 들어올려 페달을 밟는다. 한국 남자들은 이 아슬아슬한 장면에 눈을 흘깃거리지만, 정작 중국 여자들은 태연하고, 중국 남자들도 쳐다볼 생각을 안 한다. 남녀 불문하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옷차림은, 중국인의 실용주의를 나타낸다고 봐야할지, 아니면 공산혁명과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유교적 예의문화가 무너진 것으로 봐야할지…….

우리나라도 여름이면 배꼽 티나 속옷차림의 패션이 거리를 활개 치는 거의 반나체 족이 등장하며 누드 클럽도 등장했다고 한다. 여름에 수영장에 갈라치면 나도 그때만은 나체족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물에 들어가 있을 때는 좋지만, 후끈거리는 열기에 수영복을 벗고 옷을 입는 동안의 끈끈함이라니, 그럴 때는 누드비치가 부러울 때도 없지는 않다.

나체족들을 지켜보는 두터운 옷 족은 어떤 생각으로 그 모습을 볼까? 나체족의 이벤트는 인류의 오리지널 팻션의 복고풍 운동이기도 한 것 같다. 자본주의의 또 하나의 상품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정 자연회복이나 인간회복을 위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인지, 문화의 한 형태로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 의문스럽다.


   육체의 옷을 벗었다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하루하루 낡아 가는 육 옷의 한계를 어찌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더 절실하다. 벗은 육체로도 보이지 않는 영혼의 껍질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어느 날 부끄러움을 알게 되면서부터 껴입기 시작한 층층의 겹옷들을 어떻게 쉽게 벗어 던질 수가 있겠는가. 아니, 옷보다도 등허리가 휘어질 정도로 짊어진 금붙이와 무거운 이름표는 또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무수한 지식과 관념의 옷 보따리들을 머리에 이고서는 어찌 자유로울 수가 있을 것인가.

   나목의 잔가지만큼 세밀한 곳까지 끼여 있을지 모르는 떼를 들여다 볼 시간이라도 낼 수 있다면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본래의 자유로운 영혼을 다시 찾는 일이란 옷을 입었다 벗었 다 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을…….

   벗은 몸으로 한 자리에 서서 새로운 봄을 위해 기도하는 나목들의 모습은 차라리 나체로 수행한다는 자이나교의 수도승 같다. 이른 봄에 꽃이 먼저 피는 나무들은 겨울 동안 빈 가지마다 속속들이 눈바람을 마시고 짧은 낮 동안의 햇빛을 은혜처럼 받아야 하리라. 오직 겨울 동안만이라도 세밀한 부분까지 다 내놓고 뼈 속까지 단단해지도록 칼바람 맞으며 연단을 한다. 사랑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면 부끄러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으리라. 이 겨울의 고독이 나무들에게는 행복일지도 모른다.

 

   멀리서 복숭아나무들을 보면 그 가지 끝에서 붉은 물이 풍겨 나오는 것 같다. 가까이 가보면 언제 나왔는지 가지 끝에서 여린 새 가지들이 뻗어 나와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다. 벌거벗은 나무들의 가지 끝에서 오히려 뜨거운 열정이 전해진다.

   빈 마당의 배롱나무는 지금 막 머리를 깍은 스님 같다. 겨울 나목들처럼 그냥 그 자리에서 흔들림 없는 수행자들처럼 있어도 좋을 때가 아닌가. 또 한 해를 보내고 다가오는 날들을 맞으며 나의 현재를 묻는다. 과거는 지금에만 기억할 수 있는 것, 미래도 다가오면 지금에 있을 뿐. 정갈한 차를 마시고 말갛게 찻잔을 닦듯이 심혼을 맑힐 수 있다면 좋겠다. 잔은 비어 있어야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 않던가. (2004년 12월 21일)

  <행촌수필> 2007년 제12호 발표







9

마음의 장치


                                                             조 윤 수


    한 순간의 실수로 발을 다친 겨울 어느 날, 봄이 와야 걸을 수 있겠구나 했다.  목발을 짚고 춘설을 맞은 매화꽃을 가슴 시리게 바라보았던 때가 어젠가 그젠가. 벌써 가지마다 알알이 여물어 가는 열매들이 한가로운 봄날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안간힘을 다 하여 3층까지 기어서 올라갔었다. 가뜩이나 장애가 있는 다리인데 낭패하였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여졌다. 다음 날 일단 진찰을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그 날로 반 깁스를 하고 왔다. 발목의 복사뼈와 뒤꿈치의 뼈에 금이 갔다는 것이다.

  외부의 상처가 없으니 갑갑하면 깁스를 풀고 씻었다. 물론 발을 디디거나 잘못 움직이면 몹시 아팠다. 다음에 원장님께 진찰을 받으니 통깁스를 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 10주정도 걸리겠다고 했는데, 8주는 절대 깁스를 풀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풀지 못하도록 장치를 하니까 웬만하게 발을 놓아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절대 안정 기간은 세월이 약이었기에, 아픈 발에 매달려 있을 수 없었다. 조용히 있고 싶었던 생활을 오히려 만끽할 수도 있었다. 잔  손질이 필요한 아이들도 없으니. 마음 놓고 아플 수 있는 행복도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깁스란 장치는 또한 보호받을 수 있는 핑계가 되어 편했다. 최소한의 활동 외에는 누워서 그동안 못 본 책도 읽었고 그간 바빴던 마음을 정리하기도 했다. 심한 동작 아닌 요가도 할 수 있었고, 앉아서 명상에 빠질 수도 있었다. 어쨌든 더위라면 더위로, 비가 오면 비로 잘도 지냈는데, 눈보라 치니 맞으면 될 일이었다.


   어느 쪽을 잃으면 다른 쪽이 발달하기 마련이어서 언제나 균형을 이루게 되는 것이 인체의 신비가 아닌가. 발을 다친 대신 다른 쪽의 활동이 왕성해지는 것이다. '차라리 잘 되었어. 아픈 것이 마음까지 파고 든 것은 아니니까!' '이건 내가 원했던 일이잖아.' 하고 위안이 되었다.

   살아가면서 언제나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마음의 평화에 대한 문제였다. 우리는 곧잘 삶의 고통에 대해 외부의 것들에 그 원인을 돌리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어떤 힘든 일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 터득되었다. 모든 행위의 시작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우연과 필연은 손바닥의 앞뒷면 같은 지도 모른다. 이럴 땐 하느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가. 결국 하느님의 뜻은 깊은 내 속마음의 뜻, 행동의 근원이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생각하면 인생의 한 장막마다, 누구나 그러하듯, 흐르는 물이 큰 바위를 만나 여울지는 것처럼 여러 고비를 넘기게 된다. 산다는 것은 여름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것 같은 아찔한 스릴이 있기도 했다. 그런 시기를 지나는 동안의 아픔과 괴로움을 겪어내는 세월의 격랑은 생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한 장의 천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어디까지 인생의 천이 짜여갈 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인생은 영원한 미완성인 채로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어서 어느 지점에서 갈무리를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와 내 이웃 주변에서 앞으로도 일어날지도 모르는 크고 작은 일들이 내 삶에 어떤 무늬를 만들어갈지 의문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카페트가 잘 마무리되어 그 위를 누군가 걸을 수 있으면 얼마나 다행할까.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집고 철새 탐조대에 올라 날아다니는 갈매기와 물새들을 볼 때의 기분은 잠시 나를 잊게 했다. 백조들이 우아한 몸짓으로 긴 목을 빼고 날갯짓하는 모습을 목발로 서서 보는 것은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엑스레이에 찍힌 다리 사진은 꼭 두루미 다리 같이 미끈하기만 했는데 걸을 수도 없고 새들은 그런 가는 다리로 헤엄도 치고 날개가 있어 날아다니기도 한다. 언제라도 날을 수 있는 새들의 부력이 부럽기만 했다. 살얼음 진 호수 위를 춤추는 백조는 아름다웠다. 사람은 새처럼 날을 수는 없지만 영혼의 날개가 있으니 마음이 닿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로도 비상 할 수 있지 않을까.

   깁스라는 장치는 마음의 장치를 시험하는 일이었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마음 가는 데로 몸이 가며 몸이 가면 마음도 간다. 꺼내볼 수 없는 그런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몸이 그렇게 사는 동안 중요한 것이다.

   마음을 닦는 사람들에게는 방편이 필요하다. 심우도(尋牛圖)에서도 날뛰는 소를 잘 다루기 위하여 말뚝에 고삐를 메어두지 않던가. 마침내 깁스를 푸는 날 의사는 내게 다짐을 했다. 발목이 굳어질 우려가 있으니 좀 일찍 깁스를 풀자고 했다. 드디어 날뛰려는 마음을 묶어두었던 방편은 풀고 마음의 장치가 스스로 활동해야 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힘든 고비를 넘길 때마다 마음의 장치가 튼튼해졌는지도 모른다. 힘든 상황이나 아프게 되면 그 일과 내 마음을 분리하는 것이다. 힘든 일은 힘들 뿐, 아픈 것은 아플 뿐, 아프다는 것과 괴롭다는 것은 별개의 것이었다. 다만 불편할 뿐이다. 아프기 때문에 짜증이 나기 쉽지만 절대로 아픈 것과 괴로운 것과는 별개의 것으로 마음의 장치는 작동되는 것 같았다.


   글을 쓴다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장르이든 그 장르에 필요한 문학적인 장치를 터득해야 하는가 싶다. 좀 더 일찍 문학을 이해하고 문학적 장치와 문장 수련에 대한 훈련을 해왔다면 지금 마음의 장치를 쓰듯 물이 흐르는 듯하게 잘 짜여진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2004. 5월)







10

새의 가슴을 지니고

                       

                                                            조 윤 수           



   눈발은 그쳤다 흩날렸다 하드니 힘없이 사라지고 한 쪽 하늘이 맑은 얼굴을 내민다. 하늘을 두루 살펴본다. 하얀 태양 위를 먹구름이 스치고 있다. 여러 모양의 흰 구름 떼가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품새가 사람들의 움직이는 마음의 표상인 냥 사라져간다. 호수 건너 먼 산은 흰 눈이 희끗희끗 서려있고 가까운 산은 검푸르고 칙칙한 푸른색을 띈 채 바람결에 무심하다. 호수를 가득 메운 청둥오리 떼들이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에서 유쾌하게 놀고 있다.


   한 발을 다쳐서 걸을 수 없게 되자, 두 발로 걷을 수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발뒤꿈치 뼈에 금이 가고 각도가 쳐져 있다고 했다. 쇠 심지를 박아서 고정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순간 나의 마음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상처를 내면 빨리 낫지 않는 발이었다. 그러나 본래 그렇게 생겼을 수도 있으니 오른 쪽 발 사진과 비교해보자고 의사가 말했다.

   사진을 찍고 기다리는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쇠 심지는 박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고 싶은 일이야 끝이 없는 것. 내 일생의 의무는 마친 셈이니까. 이제 반드시 내가 가야 할 곳이라고는 없을지도 모른다. 많은 곳을 떠돌아다닌다고 세상을 다 아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한 길을 제대로 안다면 모든 길은 통할진대, 앉아서도 천 리를 내다보는 기술을 터득하리라. 지구 끝에나 있을 것 같은 행복실험장에도 다녀왔는데, 내 흥미를 끌 어떤 일이 또 남아 있단 말인가. 사는 동안 발품을 너무 많이 팔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제 좀 쉬도록 해달라고 진즉 내 발이 아우성을 쳤는지도 모른다. 조용히 마음의 고요 속에 머물러 있고 싶은 원을 이룬 셈이라고 자위하기로 했다.


   내 옆에 있는 화려한 양란의 꽃송이를 물끄러미 보고 또 보았다.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일지언정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고 보는 사람만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림에 지쳐 시들고 말 것이 아닌가. 차라리 움직이지 못하는 꽃이 될 바에야 마음대로 날아다닐 수 있는 새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다시 꽃을 들여다보았다. 탐스러운 꽃은 내가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도, 그냥 그대로 피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꽃나무는 화분이나 땅이 구속이 아니고 그 자체가 자유요 평화였다. 내가 나무처럼 무심히 그 자리에 있을 수만 있어도 얼마나 행복한가. 내가 더 이상 마음대로 걸을 수 없더라도 그리운 사람들을 볼 수도 있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으며, 메일도 보낼 수 있다. 최소한의 단순한 삶을 영위하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이 많은 축복을 누리기에도 금싸라기 같은 시간은 소리 없이 흘러가고 있건만. 그 아무것도 나에게는 구속이 될 수 없다 나무가 그러하듯이.


   먹구름이 순간 태양을 가로막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마음의 태양도 다시 떠올랐다. 하늘은 사흘 굶은 시어머니 얼굴같이 찌푸리고 있지만, 그 하늘 위 더 높은 곳에 언제나 밝은 태양은 있다. 사진이 나오고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의 말에 마치 다 낳은 것처럼 한 마리 새가 되는 기분이었다. 8주 동안 씻지도 못하도록 발목에 깁스를 해버려도 즐겁기만 하였다. 티벳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씻지 않아도 행복지수는 최고라 하지 않던가.

   매일 숨쉬고 있으며,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도 있는 이 세상은 너무 아름답다. 매일 매일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이 세상이다. 어차피 셈치고 사는 삶, 덤으로 살고 있다면서 갈등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설사 죽음이 온다고 해도 이 아름다운 세상의 기억을 가지고 갈 것이다.


   언젠가 송광사 후원에서였다. 장독간 주위에 피어 있는 달맞이꽃이 피어나는 기막힌 순간을 볼 수 있었다. 노을의 잔영이 사라지는 시각, 꽃 잎 한 장이 탁 터지면서 열리던 찰라, 꽃대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꽃이 저절로 피어나는 것 같았지만 그 저절로 의 속내는 전력투구의 생명운동을 담고 있었다. 꽁꽁 언 땅 속에서도 식물들의 뿌리는 치열한 활동을 하리라. 치열할수록 깊고 고요한 호흡이 힘이 될 수 있기에.

 

   한 마리의 새가 날기 위하여 바람결에 부대끼며 뿌려야 할 많은 열량은 가슴에 늘 충전되어 있어야 하리라. 물오리들이 물 위에서 유유히 놀이를 즐기며 평화를 구가하는 것 같지만 언제라도 날 수 있기 위하여 그 작은 가슴은 모터처럼 계속 움직이면서 순간의 비상을 대비하고 있을진대, 어찌 나 아닌 꽃이기를 바랄까, 한 마리의 새가 되기를 바랄까. 꽃의 미소와 노래부를 수 있는 새의 가슴을 지닐 수만 있어도 좋은 것을. (2005년 겨울)

  수필과비평작가회의동인지 2집 <숲으로 가는 계단) 2004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