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바람의 커튼> 5부 - 수수꽃다리 - 2008/10/17 13:42 | 추천 0 스크랩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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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수 수필집 <바람의 커튼>
5부 1. 수수꽃다리 (오월의 향기) 2. 리라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3. 연꽃이 피고 지듯이 4. 견공들에게 복날은 복날인가 5. 빨래터 6. 영원한 올챙이 7. 소돔과 고모라 8. 빨리빨리즘 9. 별은 빛나건만 10. 마이 웨이 웰빙
1 수수꽃다리 - 오월의 향기 -
5월이 수수꽃다리(라일락) 향기로 오고 있다. 비 온 뒤, 햇잎으로 수놓아진 저 산 빛 석간수로 우려내면 은은한 햇차 향기 감돌아 입안에 단 침이 고이는 것 같다. 나무들이 모두 싹틔우기를 기다리던 감나무도 수수꽃다리 향기 때문에 잎을 피우지 않을 수 없나보다. 녹색 짙어지는 나무들 사이 마른 가지 끝에 달리는 어린 감잎이 유난히 눈부시게 반짝인다.
향긋한 5월의 선물. 수수꽃다리 꽃가지에서 퍼지는 향이 차안을 가득 메운다. 이렇게 향기가 코끝으로 폐부 깊숙이 파고들어 감미로운 즐거움을 준다는 것은 봄날이 무르익어야 알 수 있다. 수수꽃다리 향기의 밀어가 코끝에서 얼굴을 간지럽히고 온 몸에 그윽하게 감겨든다. 오월을 애모하는 정에 복받쳐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톡 터질 것 같이 가슴에 고이는 연보라 빛 물감, 이 물감을 캔버스에 풀어놓을 수 있을까? 자신의 지닌 멋과 맛을 가장 아름답게 나타내는데 나무 꽃을 따를 자가 어디에 있을까. 꽃은 자태로 뽐내기도 하고 훤칠한 키와 무성한 가지나 잎 모양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첫 사랑의 맛, 수수꽃다리는 수수를 따먹듯이 먹고 싶을 만큼 달콤하고 은은하다. 잎이 하트 모양으로 피어나니 꽃향기에 젖은 잎을 따서 사랑하는 사람들 가슴에 오월의 상징으로 꽂아주고 싶다. 수수꽃다리는 아름다운 몸매도 아니고 예쁜 얼굴도 아니다. 앞다투어 피고 지는 봄꽃들이 떠난 자리에 살가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향으로 우리 옆에 가만히 다가온다. 결코 유혹의 낯빛을 내보이지 않고 기품 있는 향기로 다가온다. 가지 끝에 수십 송이 작은 꽃송이들이 옹기종기 뭉치로 모여서 연보랏빛 향을 모은다. 서로 다독이면서 사랑의 향기를 내뿜는다.
손짓하는 여대생들을 승용차 뒤에 태우고 야산 길을 내려온다. 뒤로 고개를 돌려 참새들 마냥 재잘대는 그 처녀애들의 얼굴을 보며,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혼자서 입안으로 우물거리며 "아, 꽃 같은 나이로다."하니, 그 아이들도 "아직도 꽃같으신데요?"라고 화답해주었다. 아름다운 청춘처럼 싱그러운 햇잎들. 무언가 뜨거운 것이 가슴으로 밀려온다. 젖은 눈 빛 안으로 들어오는 오월의 언덕은 화선지에 번져나가는 물기 섞인 봄 빛 수채화 물감 같다. 눈시울이 적셔진 것은 돌아오지 않을 청춘이 그리워서가 아니었다.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과 오월이 오고 있는 언덕길을 대비하면서 신록의 경이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해서인지도 모른다. 사무엘 울만은 그랬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오월은 딸기가 끝나는 달이요, 갖가지 채소 열매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달이다. 이제 풋 열매들은 계절의 감성을 잃었다. 그래도 여전히 모란의 달이요, 라일락 향기 퍼지는 달이다. 나에게는 미망의 청춘을 접고 결혼의 문으로 들어갔던 달이다. 많은 5월을 잃었고 깊은 산 속의 미로를 헤매기도 했다. 길 아닌 험한 가시덤불을 헤치고 지름길로 오른 산 정상에서 만났던 먼지와 다를 바 없는 '나'와 티끌 같은 세상. 마음의 청춘으로 다시 본 실상(實相)의 세상, 귀한 또 다른 '나' 와 '나'들과 그토록 향기로웠던 오월. 잃었던 옛 오월들도 한꺼번에 몰려오는 걸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다. 내 언제 나이를 세고 살았던가. 사무엘의 말처럼 "가슴속에 간직할 수 있는 것이 경이에의 애모심, 하늘의 별들 그리고 빛나는 사물과 사상에 대한 흠앙(欽仰), 앞에 가로놓은 일에 대한 불굴의 도전, 어린아이 같은 끊임없는 탐구심, 인생에 대한 환희와 흥미." 이런 것들을 잃지 않는다면 청춘이라 했다. 세월이 사람을 늙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이상을 잃을 때 늙는다고 했다. 비 온 뒤 산천은 더더욱 싱그럽다. 개울물에 흙 묻은 손을 씻는다. 한 움큼 손바닥에 흐르는 물을 받아서 얼굴도 씻어본다. 짜릿하다. 맑은 개울물에 '방금 세수한 얼굴'이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은 아닐지라도 순간 순간 오시는 님을 맞기에 충분한 맑은 마음이면 족하지 않을까. 빛나는 5월의 밝음 속에서 수많은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님은 오시고 또 오신다. 오시는 님의 말씀을 맞을 수 있도록 수수꽃다리 같은 청춘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으면…. (2003년 5월)
2 리라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외딴 섬에 온 듯, 나는 지금 서울의 광화문 네거리에 섰다. 황사바람이 휘몰아쳐서 자꾸만 옷깃이 벌어졌다. 어디선가 감미로운 향기가 바람결에 묻어와서 옷깃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프레스 센터 옆의 파이낸스 빌딩 앞에는 두 그루의 리라꽃 나무가 빌딩의 양쪽 꽃밭에 서있다. 여름의 잘 생긴 배롱나무처럼 하얀 꽃송이를 가득 담고 꽃동산을 이루어 연보라 빛 향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첫사랑의 아픔이 담겨 있는 마스카니의 오페라에 나오는 노래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라는 합창곡이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듯하여 내 마음도 향기 따라 실려간다. 나무 밑의 로드 스톤에 한 남자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나도 차를 갈아타는 것을 밀어두고 타임머신을 타는 듯 가까운 돌 의자에 앉았다. 리라꽃 향기가 퍼질 때면 나는 첫사랑의 맛에 빠진다. 리라꽃 꽃말이‘젊은 날의 회상’이라는데, 꽃향기에 젖어 있으면 정말 젊은 날의 추억에 빠지기도 하고 삼삼한 그리움에 젖기도 한다. 리라꽃은 단순히 감미롭다기보다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스쳐 온 몸을 휘감는다. 품격이 높은 그윽한 향기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 거리가 어떤 거리였던가. 40년 전, 친구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서로 헤어지는 길목이었다. 친구는 경복궁 오른 쪽 담을 타고 올라가는 삼청동으로, 나는 왼쪽 담을 타고 가는 효자동으로. 가을에 경복궁에서 국전이 열릴 때면 노랑 은행잎을 밟고 다녔던 거리.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시절 그 앞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경복궁을 가운데 두고 서로 갈라져서 다녀야 했다. 화창한 봄, 어느 날 아침, 학교에 가려고 큰길로 나와 보니 경무대 입구에서 총을 멘 군인들이 광화문 네거리까지 길 양쪽에 쭉 도열해 있었다. 난 아무것도 모른 채 놀라서 광화문 큰 네거리, 지금의 교보빌딩 뒤에 사는 또 다른 친구의 집까지 걸어갔다. 버스는 다니지 않고 그 날부터 얼마간 학교에 갈 수 없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것이 5.16 군사쿠데타가 난 날 아침 풍경이었다. 부산으로 옮겼다가 얼마 후 서울에서 다시 직장 생활하게 되었던, 내 청춘이 리라꽃 향기처럼 사라져간 거리. 서울시청 앞에 직장이 있어 근무 중에도 가끔은 창가에 서서 시청 앞의 분수대를 내려다보기도 하고, 비 오는 날이면 비안개에 젖은 덕수궁을 내려다보며 알 수 없는 상념에 젖기도 했고,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덕수궁과 돌담길을 산책하기도 했었다. 특별한 국가의 경사가 있는 날 종종 카퍼레이드가 열려 심심하지 않았던 거리였다. 전통에서부터 현대사의 질곡을 품고 있는 그 거리는 민주화의 물결을 넘어 시청 앞의 광장에 닿아 드디어 월드컵 4강을 이루어 내는 세계화의 거리로 이어졌다. 총부리를 견주던 거리가 언제라도 시민들의 함성을 분출해내는 문화의 거리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무효를 주장하는 선량한 국민들이 촛불시위를 할 수 있는 자유의 거리가 되기까지, 역사의 소용돌이가 리라꽃 향기에 묻혀 바람에 날리고 있는 것 같았다. 새로운 역사의 거리를 산출해낼 총선의 바람은 어떤 쪽으로 불게 될까. 주소는 서울 아들네 집에 두고 전주에서 생활하는 나는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하여 아들네 집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교차로인 서울의 한복판에서 리라꽃 향기에 젖어 있자니 한 순간에 흘러와 버린 것 같은 역사의 물결이 새로운 강줄기와 만나는 합수점(合水點)에 선 것 같았다. 그 시절의 저녁 퇴근길, 특히 종로 거리에서 버스를 타려면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시장바닥처럼 군집을 이루었다. 버스 줄이 어찌나 길었던지 타려고 하는 버스 번호를 눈여겨보며 이리 뛰고 저리 뛰기를 몇 번을 하고서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지금의 거리는 아직 이른 퇴근 시간이었지만 한산하고 빌딩 숲도 산 숲 같아 지나는 사람이 반가울 정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미굴 같은 아파트에서 살며 승용차를 이용하거나 땅굴로 다니는 일므로 사람들의 체취를 느끼려면 지하철을 타야한다. 다리의 품을 조금이라도 덜 팔려고 버스길을 택했다가 잘 못 알고 건너편으로 갔다 왔다 하며 리라꽃 향기에 서성이다 보니 어느덧 날은 저물었다. 서둘러 광화문 지하도로 다시 내려갔다. 옛날에 수없이 걸었던 길바닥을 발자국이라도 찾아낼 듯 문질러보며 지났다. 지하도는 재구성한다고 모습이 흉흉했다. 한적한 도시 변두리나, 거대한 도시 가운데의 빌딩 숲이나 한가롭기는 마찬가지였으나, 이국의 거리를 헤매는 이방인처럼 현대의 바벨탑 사이를 배회하는 재미도 가끔은 즐겨볼 만 했다. 첫사랑의 맛에 견주기도 한다는 리라꽃 향기. 상처일 수 있는 젊은 날의 사랑을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 어떠한 상처보다도 나를 성장시킨 가장 황홀한 상처이기 때문이 아닐까. 첫사랑을 동경하는 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향한 동경이다. 세월이 흘러도 한결같은, 가장 크고 넓은 사랑, 그 하늘같은 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첫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나이가 많든 적든, 남자든 여자든 청춘의 정기를 잃지 않는다면 언제나 그 무엇과도 첫사랑의 느낌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화사한 봄날에 꽃가루를 뿌리는 듯한 혼성 합창곡. 가슴이 부풀어올라 두근거리게 하는 '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를 리라꽃 향기로 대신하고, 그 멜로디를 흥얼거려 본다. 리라꽃 향기에 신록은 무르익고 종달새는 우네. (2004. 4.) ★ 리라는 영어인 라일락의 프랑스 말. 우리 말은 수수꽃다리, 리라꽃이 운율상 어울릴 것 같아 리라라고 말하고 싶었다. 3 연꽃이 피고 지듯이 “꽃이 죽었어요!” 현수교를 지나던 아이가 외마디소리를 지른다.아이의 손끝을 따라 나도 고개를 돌려보았다. 마지막 꽃잎 하나가 떨어질 듯한 연꽃이었다. 연꽃이 죽었다는 아이의 소리가 내 귓전을 자꾸만 맴돈다. 검정 색과 갈색의 둥그런 돌이 연못가에 삥 박혀있다. 연못의 물은 파랗고 연못에는 물고기가 뛰놀고 있다. 돌 틈새에는 큼지막한 분홍색 꽃이 피어 있고 버드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서있다. 그 때 연못 주위엔 버드나무 만 많았다는 것을 나중에 사진을 보고 알았다. 연못 둘레의 빈터에는 푸른 잔디가 군데군데 그려져 있고 주변에는 사람들이 놀고 있다. 새들인지 병아리인지 알 수 없는 날짐승도 그려져 있는 것이 아이의 그림답다고나 할까. 여자아이 셋이서 손짓하며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듯하고 그 앞에는 파마머리를 짧게 한 멋진 젊은 엄마가 카메라를 조준하고 있다. 카메라 다리가 굵고 튼튼하게 그려져 보기에도 선명하다. 간판에 '핫도그 있음'이라 적혀있는 가게 문 앞에 두 손을 들고 서있는 아이의 뒷머리는 까만 색의 동그라미다. 아마도 그림을 그린 여자아이의 오빠였으리라. 우리 집 식탁 옆벽에 걸려 있는 ‘연못'이란 제목의 그림이다. 내 딸이 초등학교 3학 년 때 미술학원에서 열린 전시회에 출품했던 그림이다. 연못에서 놀던 기억을 떠올려 그렸지 싶다. 아이들이 성혼한 후 덕진 연못에 연꽃이 피게 되면 이 그림에서도 그리움이 핀다. 그리움을 찾아 연못으로 가는 도중 방향을 돌려 아이들의 고향인 동네로 들어가 보았다. 덕진 초등학교 후문 주변, 주택단지가 막 들어서던 때였다. 반 양옥집이 유행이던 시절. 아이들이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냈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피아노 교습소의 간판이 붙어 있는 이층 건물이 대신 서있다. 그네가 있는 마당 주변에서 매일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소꿉놀이를 하던 집. 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방과후면 친구들이 책가방을 던져놓고 고샅길을 누비면서 놀던 길은 지금 번화한 도시의 상가 뒷골목으로 바뀌었다. 마당처럼 아이들이 뛰놀던 거리는 자동차들의 주차장 같아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 길을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웬 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덕진 연지에 연꽃이 피면 여름 내내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놀았다. 집에서나 놀러 다닐 때도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담아놓기 위하여 나는 늘 다리를 붙여서 같이 찍을 수 있는 사진기를 들고 다녔다. 올해는 비가 오는 날이 많아서 인지연꽃들이 잎 아래에서 쑥 올라오지 못하는 녀석들이 많다. 나는 오늘 고귀한 꽃 한 송이를 만났다. 활짝 핀 꽃잎이 동그랗게 방패처럼 받쳐진 가운데 노란 꽃술을 달고 여린 연실이 올라온 모습이다. 여인의 성숙이 열매를 맺은 모습이라 할까. 젊고 싱싱한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의 만족스런 표정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스런 모습이다.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한 손으로는 젖을 만지기도 하면서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만족한 표정으로 젖을 먹는 아기의 모습이 연봉오리에 떠오른다.나는 ‘연못'을 그렸던 그 어린 아이의 성숙한 모습을 그 연꽃에서 보았다. 내가 그러했듯이 엄마가 되었을 그들도 지금은 꽃보다 아름다운 자신의 아이를 돌보느라 꽃이 눈 안으로 들어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연못 가운데로 난 나무다리를 산책하는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품고 지나가는 풍경에 겹쳐지는 연못은 사뭇 환상적이다.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이제는 어엿한 성인들이 되어 한 여름 밤을 수놓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선남선녀들, 손자 손녀들이 연꽃바다에 어우러진다. 막막한 어둠을 뚫고 나와 폭염과 비바람에 시달리면서도 꿋꿋이 꽃잎의 자애 속에 자란 연실이거늘…. 꽃잎과 꽃술도 여의고 우뚝 솟은 연실이 아름답지 않다고 누가 말할 것인가. 덕진 연못의 푸른 잎의 물결이 유난히 바람결에 넘실대는 것은 묵은 연근이 건강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연잎이 없는 연꽃을 어찌 상상이라도 할 수 있으랴. 연근이 무성하게 뻗어나서 꽃대가 되는 인연이 생기게 되는 것은 묵은 연근에서 피어나는 잎사귀의 푸근한 품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가 내려도 이슬이 내려도 잎은 결코 물기에 젖지 않고 진주보다 영롱한 옥구슬로 간직했다가 이른 아침 꽃송이들의 영양수로 쓰일까. 잠자리와 벌 나비도 연향 따라 연못을 떠나지 못한다. 까만 잠자리 한 마리가 어린 꽃봉오리 끝에 앉는다. 가만히 쳐다보자니 언제까지 그렇게 붙어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자귀나무 잎도 어둠이 내리면 분홍색 숙고사 꽃 이불 아래 합환하는 시간. 검푸른 연못 위에 조명들이 내려앉는다. 잠자리는 연꽃과 더불어 이 밤을 지새우려나. 연실이 영글어가는 동안 꽃잎은 어디로 가는 걸까. 돌아가리라. 떨어지는 꽃잎에도 영원한 생명의 기원이 있음을 아이도 알 날이 있겠지. 천년 된 연실에서도 싹을 틔워내는 뜻을. 동화 같은 '연못' 그림은 삶의 현장이 진흙 바닥일지라도 연꽃바다의 마음자리를 챙겨준다. (2003년 8월 전주덕진공원에서) 4 견공들에게 伏날은 福날인가 여름은 여름다워야 한다. 장맛비가 내린 다음, 불볕 더위가 계속되고 찜통 더위가 절정이다. 그래야 여름답고 들녘의 곡식이 무럭무럭 자라고 여물 것이다. 밭에 나가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풀잎의 이슬방울에 옷이 다 젖어도, 흐르는 땀이 흙과 범벅이 되어도, 그것이 해 뜨기 전 여름날을 시작하는 맛이다. 한낮 따끈따끈한 햇볕에 축 늘어진 잎사귀를 보는 것도 그 또한 여름을 이겨내는 맛이다. 도시 주변에서도 저녁 노을의 잔영이 남아 있는 해거름 때 어슬렁어슬렁 부채를 살랑거리며 마을을 산책하는 것도 여름밤을 맞는 맛이다. 한여름은 삼복 더위가 차지하고 있다. 하지가 지나고 한 달 가량 지나면 초복이 오게 되고, 열흘 간격으로 중복과 말복이 온다. 말복 전에 희망의 메시지처럼 입추가 손짓하여 더위의 지루함을 달랠 수도 있다. 삼복 더위가 시작되면 수난을 당하는 것은 긴 혀를 빼물고 이번 여름만은 무사히 넘기려고 안간힘을 하던 견공들이었다. 그런데, 서양에서도 삼복 더위 때를 개의 날(dog's day)이라고 부른다. 하늘의 수많은 별 중에서 가장 밝은 별이 겨울철의 남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시리우스다. 커다란 사냥개의 모습인 큰개자리의 별인 시리우스는 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에서 가장 밝은 별이다. 시리우스는 큰개자리의 가장 밝은 별로 지구로부터 8, 6광년 떨어져 있는별이라고 했다. 이 별이 삼복 때가 되면 태양과 같이 떠오른다. 서양사람들은 삼복 때 특히 더운 것은 태양의 열기와 별 중에서 가장 밝은 시리우스의 열기가 합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이 때를 Dog's day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 때가 되면 시리우스는 한낮에 떴다가 지기 때문에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옛날에 별자리 선생이 있었는데, 나를 포함하여 우리 주변의 여러 친구들은, 그의 별자리와 인생에 대한 임상실험의 대상으로, 그의 목록에 들어 있었다. 여름 요가단식 캠핑 때면 모깃불을 피워놓고 밤하늘의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밤 자장가처럼 들었는데, 도저히 그 별자리 형상을 찾기가 힘들었다. 큰개자리에 얽힌 신화 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에게는 애인이 많았다. 그 중 케팔루스가 에오스에게 얻은 사냥개라고도 하는데, 이 개의 발이 얼마나 빨랐던지 그 속도에 감탄한 제우스가 이 개를 하늘에 올려 별자리로 만들었다고 한다. 전설이야 어찌 되었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삼복 더위를 참기 힘들어, 개들과 연관지었던 이야기는 한여름 밤의 더위를 식혀주는 재미도 더해준다.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여러 별자리 중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으로 보아 개들의 운명도 인간의 운명과 같은 것일까, 아니면 먼저 하늘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인간의 운명까지 점치게 된 걸까. 이래저래 개들의 보시의 덕이 하늘에 닿아 더위가 없는 겨울밤을 수놓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복(伏)자는 사람 인(人) 변에 개 견(犬)자로 구성된다. 그래서 그런지 오래 전부터 복날이면 개고기를 먹는다. 원래 복날에 개고기를 먹는 습속은 중국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농경사회에서 소가 노동제공 수단으로 중시된 것처럼, 개가 영양섭취 원이 되었다는 흔적은 신석기시대의 유물에 개 뼈가 있어서 그게 바로 개고기를 식용한 증거라고 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고구려 벽화에서 개 잡는 장면을 내세우기도 한다. 옛날에 먹을 것이 많지 않았던 시절엔 집에서 기른 개는 사람이 먹는 것을 같이 먹고살았다. 가장 사람의 입맛에 맞고 소화가 잘 되는 게 개고기다. 한 울안에서 같이 살다가 한 몸이 되었으니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체감이 아닐까. 거의 사료를 먹이고 키운다는 요즈음의 개고기도 육 고기 중에서는 가장 소화가 잘 되어 이때 찾게되는 것을 보면 몸에 밴 개의 맛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만을 걱정하는 때에 살면서도 보신탕이 삼복의 음식 중 가장 인기 있는 전통적 상품으로 군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현대와 같은 웰빙 시대에 맞는 복달임은 다른 데서 개성적인 균형을 찾아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개들의 보시에 인간들도 화답을 해야하지 않을까. 옛날과 달리 오늘날은 아예 복달임을 위해서 처음부터 특수 사료로 길러지는 견공들이니 그들의 운명으로 돌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앞으로도 인간들에게 맞는 보양식이 될지도 알 수는 없다. 어차피 더운 여름을 견디는 것이 개들에게도 가장 힘든 일일 바에야 애초부터 인간에게 몸을 보시하는 운명으로 태어난 것을 복으로 알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서당개들은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것이 다행이란 깨달음을 동양의 도(道) 정신에서 배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겨울밤의 시리우스는 삼복의 고통으로 시달렸던 개들의 고향일까? 살아 남은 개들은 한여름 밤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릴없이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고 흥얼거리고 있지나 않을지…. (2004. 8월을 열며) 5 빨래터
초여름 경쾌한 날씨였으리라. 산기슭, 흐르는 물가의 바위에는 이미 빨아놓은 빨래가 햇볕에 마르고 있다. 널따란 바위 위에는 두 여인네가 무릎 위까지 치마를 걷어올린 채 쪼그리고 앉아 방망이를 두드리며 빨래를 하고 있다. 한 여인은 치마 자락을 허리춤에 걷어올리고, 속곳을 무릎까지 걷어올린 채 물 속에 서서 흐르는 물에 흔든 빨래를 비틀어 짜면서 건져 올리고 있다. 맞은편 평상 같은 바위 위에서는 또 한 여인이 앞으로 늘어트린 긴 머리채를 땋고 있다. 그녀의 가슴으로 젖을 더듬고 있는 어린아이가 보인다. 그리고 빨래터 뒤편 큰 바위 너머에서 갓을 쓴 남정네가 엉큼하게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여인들을 훔쳐보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 분위기의 빨래터인가. 너무도 유명한 풍속화인 단원 김홍도의 '빨래터'이다. 40여 년 전만 해도 전주천변에서는 그런 빨래터 풍경이 있었다. 그래서 전주 10경 중에 하나가 전주천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이었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임에도 화가의 눈에는 그 풍경이 그림이었던 것이다. 아파트 생활에서는 수돗물과 전기가 끊어지면 모든 생활이 정지되는 것 같다. 벌써 이틀째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동네와 이웃 동네의 수도관 교체 공사를 한다는 것이다. 한 달이나 공사가 진행된다니, 물통이 될만한 그릇에 미리 받아놓은 물로 아쉬운 대로 최소한의 식생활은 해야 한다. 웬 지 몸이 굳어지는 것 같이 느껴져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럴 때는 빨래와 화장실이 제일 문제가 된다. 평소에도 물에 대한 인식은 철저한 편이어서 세탁기의 마지막 헹군 물은 받아서 허드레 물로 한 번 더 쓰고 버리기도 한다. 개수대에서도 생각해서 샤워기를 절제하여 쓰고 있다. 그런데도 받아놓은 물을 바가지로 떠서 조심스럽게 쓰자니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동안 물을 얼마나 헤프게도 써 왔는지 다시 생각된다. 단수가 되니 남편과 아들도 맑은 물을 버리지 않고 있다. 평소의 내 잔소리가 이럴 때 이해되는 것이리라. 오늘 같이 물 소동을 겪어야 하는 날이면 옛 풍속화 그림들이 생각난다. 흐르는 물을 보면 나는 언제나 그렇게 빨래가 하고 싶었다. 옛날 한벽루 밑 전주천의 빨래터가 그립다. 언니를 따라 전주천의 빨래터에 갔었던 적이 있었다. 개울가에는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 빨래를 삶아주는 곳도 있었다. 그림처럼 그 때까지만 해도 가까운 물가에는 늘 빨래터가 있었다. 혜원 신윤복의 '물놀이의 여인들' 또한 우리의 세시풍속을 잘 나타낸 그림이 아닌가. 역시 초여름의 으슥한 계곡에서 트레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여인과 속곳을 보이며 그네를 뛰는 여인을 그린 그림이다. 계곡 위에 있음직한 사찰의 땡초 스님들이 여인네들의 물놀이를 구경하러 내려왔으리라. 멀리서 바위 뒤에 얼굴을 살짝 내밀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쳐다보았을 것 같은 모습이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림이었다. 20년 전만 해도 덕진의 연못 주위 다리 밑에서는 단오절이 되면 창포물에 머리를 감는 여인네들의 물놀이 풍경이 남아 있었다.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살았던 추억이 거의 없는 나는 아이들과 고향의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셈이다. 차(茶) 일을 하게 된 연유로 물에 대한 인식은 각별한 셈이다. 좋은 차 맛을 내기 위해서 물의 질은 매우 중요하다. 옛날 중국의 다경에는 물의 등급을 메겨서 1등급에서 20등급까지 나열하기도 하였다. 생수가 일반화되기 이전에 나는 전주 좁은목 약수터에서 물을 자주 떠왔다. 천주교 성지인 치명자 산을 배경으로 하는 수원지가있어 경치 또한 좋았고 놀이터로서도 훌륭했었다. 그 시절 수원지 근처에도 빨래터가 있었다. 도시락을 챙겨서 아이들과 빨래 소풍을 가끔 갔었다. 이불보 등을 흐르는 물에 흔들어서 빠는 기분은 즐거운 놀이 같아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양지 바른 바위 위에 빨래를 널어놓고 아이들과 물가에서 노는 동안 산뜻하게 말라버리는 것이다. 어느 해 초여름이었다. 내 여동생이 조카 둘을 데리고 전주에 놀러 왔었다. 우리는 또 빨래 감을 챙겨서 송광사 넘어 위봉사까지 소풍을 간 적도 있었다. 물론 집에는 수돗물이 잘 나오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한데로 개울에는 물이 없었다. 폭포수가 내려가는 정상에 갔을 때야 '앗차' 했다. 그 때만 해도 절기와 농사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않았을 때였다. 가뭄이 계속되는 것을 잊고 날씨 좋은 것만 생각했다. 모든 물줄기가 논으로 대고 있었다. 빨래를 하고 말려서 가야 하는데 낭패였다. 새로 불사를 하기 전의 위봉사는 고색이 창연한 옛 정취가 서려 있었다. 천년의 이끼가 낀 정원의 숲에는 나무마다 스님이 직접 지어 쓴 시 한 수씩 걸어두어 산책로의 운취를 더하여 주었다. 아이들은 '마음 다스리는 글' 앞에 서서 기도하며 일요일의 '미사'를 대신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절 뒤편에 낮은 우물을 발견했다. 물을 퍼서 겨우 빨래는 할 수 있었다. 해는 저물어가고 길은 멀어서 내려가야 했다. 우리들은 모두 빨래를 팔에 걸고, 머리에 쓰고, 들고, 말리면서 산을 내려왔다. 집에서 편히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신나는 추억의 소풍을 만들었던 셈이었다. 물 걱정과 환경오염이 심각하지 않았던 때였다. 도시의 유황불에 데여 피해간 명덕리 시절. 고향집에 돌아온 듯 마당 뒤란에 우물이 있고 그 옆에는 넓은 자갈을 깔아놓은 터가 있어 겨울을 빼고는 살림하기가 참 좋았다. 시골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며 텃밭도 가꾸며 살 수 있었다. 샘이 깊지 않아 세탁기가 소용이 없었다. 집 가까이 동네의 빨래터가 있어 옛 그림의 주인공이 되는 연상을 하면서 하늘과 빨래를 함께 함지박에 가득 담고 머리에 이고 다녔었다. 수돗물이 나올 때까지 한시적이기에 기다리는 불편까지 마다 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여름철도 아닌데, 어차피 세탁기 빨래는 모아서 해야 물도 절약된다. 수돗물이 나오기 이전에는 비가 오면 빗물을 받기 위하여 넓은 물통을 처마 밑에 받쳐두던 때가 엊그제 같기만 하다. 아직도 시골 마을 동네에는 빨래터가 있지만, 거의 쓰지 않고 집집마다 편리하게 수돗물을 쓰기도 하고 자연수를 수도시설로 연결하여 쓰고 있는 요즈음이다. 인구가 불어나고 산업화가 되면서 물 씀씀이가 많아졌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가 되기에 이르렀다. 옛 여인들이 맑은 하늘 아래 계곡의 흐르는 물가에서 빨래를 하며 생활정보도 나누고 풍류를 즐겼던 물놀이의 장소가 현대에는 시설이 잘 된 도시 안의 찜질방이나 인조 온천 방이 대치하고 있다. 사시사철 냉온수를 마음대로 조정하여 쓸 수 있는 편리와 여유가 어떤 희생 위에 얻어진 것인지 생각해 볼일이다. (2002년 9월)
6 영원한 올챙이 아니, 웬 국화꽃이 이렇게 많이? 봄꽃들이 차례로 물러간 초여름이다. 꽃집 앞에는 작은 국화꽃 화분들이 키 재기라도 하듯이 거리에서 줄을 서고 있다. 서로 크게 보여 빨리 뽑혀 가기를 기다리고 있는지. 짤막한 키에 얼굴만 큰 노란 국화꽃들은 똑같은 화분 크기만큼이나 같은 색깔 같은 모양들이었다.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미당 시인이 그렇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원래 국화는 가을꽃이다. 봄부터 소쩍새 소리를 들으며,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과 소나기를 견뎌내며, 바람과 맑은 공기, 밤이슬과 별빛을 벗삼아 긴 여름을 끈기 있게 참아낸 후 소슬한 가을 바람에 고개 젖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러기에 국화는 사군자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공장에서 막 복제해온 것 같은 이 꽃들에게는 순간적인 화사함은 있을지언정 아름다운 군자의 기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가을에 국화꽃을 가까이서 보기 위하여 나는 이제 겨우 몇 포기를 화분에 꺾꽂이했는데 말이다. 지난 겨울은 포근한 온실의 바이올렛 꽂밭에서 지냈다. 바이올렛의 번식은 쉽고 재미있다. 성숙한 잎사귀 한 장을 떼어서 물에 담가 두면 얼마 후 줄기 끝에서 실같은 뿌리가 생긴다. 그 때 질석 화분에 옮겨 심으면 한참 후 그 뿌리에서 새 떡잎이 솟아난다. 그렇게 하여 얼마든지 많이 번식시킬 수가 있다. 간접 햇볕이 드는 창가에서 잘 자라는 이 꽃은 그래서 향기가 없다. 그러나 작고 예쁜 얼굴에서 아기 얼굴을 보는 것 같은 즐거움이 있다. 늦은 아침 거실로 나오면 이미 아침햇살이 동쪽 창으로 깊게 들어와 있다. 터질 듯 말 듯 작은 꽂망울들이 간지러운 몸짓을 하며 오밀조밀 모여 있다 꽂송이들은 하나같이 모두 햇빛을 향하여 얼굴을 들고 있다. 꽃은 하루 종일 햇살과 눈맞춤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꽃의 얼굴과 맞대고 싶어 나도 햇볕 따라 자리를 옮겨다닌다. 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은 많은 식물의 새로운 종자를 개발해내고 있다. 계절에 상관없이 비닐 하우스 안에서 인공적으로 자연환경을 조작하여 식물을 복사해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편리함과 문명의 풍성함을 가져다준 과학의 발전은 앞으로 인간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조작을 할 수 있을지 기대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바이올렛이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순간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화분 속의 국화를 떠올리며 나는 또 영원한 올챙이 생각을 하게된다. 오래 전에 나는 불교의 메시지를 담은 작은 책에서 영원한 올챙이 이야기를 읽었다. "멕시코에 서식하는 도룡뇽 가운데 액서러틀이라 불리는 특이한 종류가 있다. 이들은 나름대로 악 조건의 환경에 적응한 결과 대단히 기이하게 되고 말았다 즉 올챙이 상태 그대로 번식하는 특이한 방법을 터득해 버렸기 때문에 결코 어른으로 성장하는 일이 없게된 것이다. 올챙이가 올챙이를 낳고 그 올챙이는 다시 더 많은 올챙이를 낳는다. 그런데 이 '영원한 올챙이''얘기가 도룡농 세계에서 그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인간 세상에도 그와 유사한 현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들이야 대단히 자유로이 번식을 한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실제로 진정한 성숙(成熟)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만다. 올챙이가 올챙이를 낳고, 그 올챙이는 다시 더 많은 올챙이를 낳고…. 그러나 인간에게는 도룡농의 경우처럼, 홀몬이나혹은 다른 어떤 약물을 주사하는, 그런 잔재주가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여기에 깨달은 성숙인을 배출하는 붓다의 희망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집단으로는 되지 않는 '깨달은 인간'을 배출하는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학으로 볼 때, 고대 전통에는 사람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 짓지 않고, 남성. 여성. 아이로 구분 지었다한다. 아이 때는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지 않는다. 남자아이가 자라면 남성이 되고 여자아이가 자라서 여성이 된다. 그리고 인간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내가 결혼하여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내 시부모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있었다. 아이를 갖기도 힘들지만 낳기가 힘들고, 키우기가 더 힘이 들며, 그보다 더욱 힘드는 것은 아이 교육하는 일이라는 글귀를 써 주셨다. 정말 그랬다. 대부분 인간은 진정한 성숙인이 되어 결혼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교육과 더불어 사회적 제반 문제에 부닥치는 것이다. 수세기를 거듭하며 양육되어 훈습(薰習)된 관념, 관습의 굴레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들다. 서로에게 덕이 되지 않는 습성도, 끈질기게 하고 있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아이가 아이를 낳아 자기 닮은 아이로 키운다. 좋다거나 옳다거나 한 일들도 오랜 습성이 되면 그 원래 목적을 잃어버리기 쉽지 않은가. 많은 경우 의식 없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제 자리 걸음을 하는 삶의 형태를 되풀이하고 있지나 않은지. 도룡농처럼 말이다. 이른봄에 산책길에서 발견한 제비꽃과 원추리를 옮겨왔었다. 그런데 실내 화분에 심으니 잎만 무성하게 자란다. 그리고 제비꽃의 본래 모습이 아닌 비슷한 다른 모습이 되었다. 푸른 잎을 보는 나의 즐거움을 위하여 온실의 화분에 갇히는 운명을 만들고 말았다. 국화도 그렇고 제비꽃도 그랬다. 비록 화려한 꽃은 아니나 전체의 생명에 이이진 부분으로써, 드넓은 대지의 기운을 받고 수많은 나무들과 이웃 풀들과 호흡하며 시원한 야생의 바람과 공기가 필요한 것을. (2001년 9월) 7 소돔과 고모라
이게 무슨 냄새지? ?… 앗불싸! 솥이 새카맣게 타버렸다. 인터넷 서재 안에 있다가 방금 프로판까스 끄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때는 넓은 뜰의 한 쪽에 우물이 있던 집이 그리워진다. 차라리 개울가의 밭으로 내려가 솥을 닦으며 가을의 기운을 즐기는 것이 좋겠다. 모래수세미로 한 참 닦아야 할 것 같았다. 바로 머리 위에서 바람이 구름을 쓸어간다. 솥을 닦는 손놀림이 상쾌해진다. 코끝으로 스치는 갈바람은 숯검정 냄새를 시원하게 날린다. 솥 단지를 내버려두고 부들 숲으로 걸음을 옮긴다. 갈색 소시지 같은 부들열매가 솟아있는 숲 사이로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창공을 난다. 꽤 넓은 밭에서는 아랫집 아저씨 내외가 배추벌레를 잡고 있었다.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에 나풀거리는 채소 잎이 예쁘기만 하다. 우리는 같이 상추와 어린 배추를 솎아서 낙엽 진 풀더미에 앉아 채소들의 여름 이야기를 듣는다. 해거름 때면 나는 가끔 이 텃밭에 내려와서 채소밭 고랑을 거닐며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숲의 새소리와 채소들의 속삭임을 듣는다. 막 산을 넘고 있는 석양 속에서 흙을 만지고 풀밭에 앉아 채소 다듬는 일을 할 때면 자연의 넓은 품안에 안겨 있다는 실감이 난다.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둘러싸진 분지에 자리한 우리 마을의 아래쪽, 이 때쯤이면, 거대한 빌딩 촌에서는 불야성을 이루기 시작한다. 이미 조각달이 떠 있는 하늘 끝으로 주홍빛 여운이 흑 빛으로 가라앉는다. 마을로 들어오는 골목길, 저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번화가를 보며 또 상념에 잠기게 된다. 현란한 오색 인조 불빛 속에서 밤의무리들이 광란의 음악과 술과 담배연기 속에 취하고 있을 세상을 생각하면 전설 같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떠올리게 된다. 아주 아주 옛날 소돔과 고모라는 하느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가족이 정착한 땅이었다. 소돔과 고모라는 각종 죄악이 가득하였다. 그 도시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발전되었으며 농사도 잘 되는 땅이었다. 그러나 속은 퇴폐(頹廢)하여 그 도(度)가 넘쳤다. 하느님은 그 도시를 심판하기로 결심하고 유황불로 태워버리기로 하였다. 하느님은 롯의 가족을 구하기 위하여 두 천사를 보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롯에게 재촉하였다. "이 성에 벌이 내릴 때 함께 죽지 않으려거든, 네 아내와 시집가지 않은 두 딸을 데리고 어서 떠나거라." 그래도 롯이 망설이므로 그들은 보다못해 롯과 그의 가족의 손을 잡고 성밖으로 끌어 내렸다. 하느님은 롯을 그토록 불쌍히 여기셨던 것이다. 롯의 가족을 데리고 나온 그들은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그만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다." 현대 사회는 중독사회라고 한다. 연예계 마약 파동 소식은 잊혀질 만 하면 가끔 뉴스보도의 한 귀퉁이를 시끄럽게 장식하곤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외국 관광지인 태국은 거의 마약에 노출되어 있어 단속할 수도 없다고 한다. 누구나 간단히 접근할 수 있다. 한번 빠지면 현실로 쉽게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중독의 특성이 아닌가. 연예계 뿐 아니라 현대인들 자체가 무엇인가에 중독된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마약중독, 알코올중독 도박중독 등의 전통적 종류에 추가하여, 최근에는 쇼핑중독, 인터넷 중독, 일 중독, 핸드폰, 텔레비전, 게임 등. 더욱 안타까운 일은 10대의 인터넷 중독이 거의 50%라 하는 보고이다. 이렇게 드러나는 것 외에도, 우리가 또 잊어선 안될 것이 있다. 안개에 옷이 적셔지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듯이 서서히 젖어 가는 좋은 것들을 향한 끝도 없고 목적도 알 수 없는 추구(追求)들이 그것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관념의 유희에 빠지는 줄도 모른 채, 감정의 즐거움을 좇아 다닐 수가 있다. 마치 강 건너에 닿아야 하는 목적을 잊고 뱃놀이의 즐거움에 취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의 의미를 몰랐던 젊은 시절, 이유도 없는 추상적 아름다움을 얼마나 추구했던가. 디지털 미디어의 시대. 문자 발명이래 인간의 의사소통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이렇게 초고속으로 해결된 적은 없었다.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문학도 새로운 전기를 맞아 어떻게 영상시대에 젖어 있는 N세대에게 다가갈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글자를 치고, 필요한 정보를 찾고, 수정하고, 전달까지 시간과 노동력이 줄어들고 있으나 여전히 할 일은 많다.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한다는 전자제품을 고르는 선전문구처럼, 순간의 선택에 사이버세상나들이의 풍경이 달라질 수 있다. 아직 마음대로 컴퓨터를 주무르지 못하는 나는 마우스의 잘못된 클릭, 선택의 실수연발로 시간을 엉뚱하게 허비하기 일수이다. 인터넷이 새로운 지평의 노후를 준비하는데 일 역을 해주는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자칫 하면 몇 시간씩 순식간에 흘러 가버리니, 목적을 위한 도구인 컴퓨터는 시간도둑이 아닌가.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눈에 띄는 경치에 순간 홀려 샛길로 빠질 수 있듯이 순간의 마우스 선택에 길을 빨리 갈 수도 있고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 내 영혼의 파수꾼도 점점 힘을 잃어 가는가. 어딘가에 잘 사로잡히지 않는 나이가 이럴진데, 아직 자기를 절제하는 힘이 모자란 어린이나 청소년들이라면 잘 생각해야 할 일이다. 도시의 화려함이나 과거의 망념을 버리지 못하여 뒤돌아 보다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처럼 되어 가는 현대인들이 많다. 내 인생에 더 이상 문명의 구속에 꺼당기지 않으리라고 당당한 자유를 선언하였던 때가 엊그제였다. 새삼스럽게 요즘 사람들의 대열 속에 끼일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할지, 올가미가 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발전하는 문명의 현상을 좇아가다,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성채를 만들고 그 속에 빠져들고 있는 현대인의 한 사람이 되어 가지 않는가. 부드러운 정적과 충만 감으로 물들은 가을 숲으로 간다. 새소리를 들을 때, 나는 한 마리의 새가 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만나면 갈대가 되자. 들꽃을 만나면 한 송이 들꽃이 되고 ……. 가을빛에 취한 마음은 텃밭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나의 계절을 걷자. 컴퓨터에 취했던 정신이 자연의 벗들과 노닐며 깊고 맑은 가을 하늘을 헤엄친다. 하얗게 닦인 솥 안으로 하늘이 담긴다. (2002.10) 8 빨리빨리즘
과속운전에 부과되는 과태료 쪽지가 날아왔다. 난생 처음 받아본 범칙금인 셈이다. 논산에서 익산 사이의 도로였음을 기억해냈다. 도저히 용납이 안되었지만, 97Km로 달렸으며 17Km 초과라는 것이다. 지방국도를 일반 고속도로로 착각했던 것 같았다. 그 도로는 교통량이 많을 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시내에서는 빨리 가라며 뒤에서 빵빵거리는 운전자들을 종종 보게된다. 규정 속도와 신호를 정확히 지켜 달리는데도 빠-앙 하는 경적을 울리며 쏜살같이 추월하는 자동차들을 볼 때마다 아찔해진다. 시내를 벗어나 지방도로나 고속도로를 달릴 때도 거의 규정 속도를 지키는 차들은 많지 않다. 운이 나쁘면 도로교통법에 걸린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스피드 위주의 온갖 정책은 우리 일상생활에까지 스며들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무섭게 닫힘 버튼부터 눌러버리는 일도 그렇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가 '빨리빨리'라 한다. 매사에 조급증을 물리치지 못한다. ‘시간이 돈이다’라는 말은 현대에 새로 등장한 진리의 말씀이나 되는 것처럼 ‘빨리빨리즘’이란 신 주의를 탄생시켰다. 그리하여 상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정확하게’ 또는 기본에 충실하게’ 등은 '빨리빨리'에게 밀려 뒷전으로 쫓겨난 지 오래다. ‘빨리빨리’에 충실할 수만 있다면 얼마간의 부정확하거나 기본에서 벗어나도 용납되는 풍토가 조성된 것 같다. 이런 풍조는 70년대 고속도로 건설을 기조로 시작된 근대화의 물결이 만들어온 부산물아 아닌가 싶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러 민원에서는 고속통행료가 별도로 지불해야하는 요금으로 암암리에 적용되는 풍조도 있었다. 정확한 규정과 규격에 맞는 정품을 써서 치밀하게 했어야 하는 건설과 중공업 분야 등이 눈앞의 이익과 실적에 급급하여 편법으로 통과해 왔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로 인해 이미 우리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등 많은 재해로 뼈아픈 교훈을 얻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을 한 것이 엊그제인데 또 대구 지하철 참변을 맞게됐다. ‘빨리빨리’에만 정신이 팔려 지하철을 건설해 놓다 보니 그 안에 잠재돼 있던 작은 불씨들이 대형 인재 사고로 이어지고 만 것은 어쩜 예견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사고의 원인 규명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그 ‘빨리빨리’의 속성은 드러나고 있었다. 죽었다고 인정하고 짐짝같이 취급되어 실려온 시체들 중에는 살아 있었던 사람도 있었다. 인명을 소중히 다루어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하는 일이었다. 집을 나간 아들의 소식이 없어 궁금해하던 중에 지하철 사고 소식을 접한 한 어머니는 곧 바로 병원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아들이 살아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졌다. 흰 보자기 밑으로 빠져 나온 시체의 발 한 쪽을 보고 어머니는 아들임을 알았다. 그렇게 어머니는 발만 보아도 아들임을 안다. 눈물로 호소하며 한 번만 더 봐달라고 애원했다. 사정을 뿌리치지 못하여 마지막으로 심장에 충격을 가했더니 살아났단다. 어머니가 아들을 소생시켰던 것이다. 언제나 대형사고가 있을 때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재난에 대비하는 국가적인 조직이 있어야 한다느니, 각종 대책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조직이나 기구의 설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운영하는 개인의 생각부터 달라져야 할 일이다. 내 안에 부지불식간에 스며들어 있는 안전불감증과 ‘빨리빨리즘’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하라' 는아버지의 평소 가르침을 받아온 한 아이는 그 아수라장에서도 한 어른의 옷자락을 뒤에서 잡고 따라나와 탈출할 수 있었다. 적어도 침착할 수 있는 마음과 바로 볼 수 있는 힘이 지하철 운영자들에게 있었다면 그토록 많은 희생자를 낳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대사회의 구조는 인터넷망만큼이나 복잡해져 간다. 올바른 길을 가르친다는 종교마저도 그 조직의 거대함 때문에 가르침의 핵심이 일반 생활 속에 스며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안타깝다. 그럴수록 가르침의 근본을 찾는 노력을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위급한 상황에서 정신 차릴 여유를 찾을 수 있는 힘을 평소에 기를 수만 있어도…. 선정(禪定)수련과 안전교육을 초등학교 때부터 교과목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해마다 아이들과 같이 해온 낙원촌 수련회를 생각한다. 일 주일 혹은 이 주일의 캠프 기간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마을의 모든 시설을 소개받는 일이다. 생활하는 동안 마을의 제반 기계와 용구들의 사용법을 익힌다. 그리고 모르는 것이 있거나 약간의 의문이라도 일어날 때 임의로 사용하지 말고 반드시 물어 볼 것을 알린다. 모든 사용한 것들은 다음에 사용할 사람들을 생각해서 한다. 그에 앞서 ‘잘 보고 잘 말한다.’ 혹은 ‘잘 듣고 그대로 한다.’에 대하여 연찬(硏鑽)을 한다. 그 말은 너무쉬운 말이어서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진지하게 테마를 연찬해 본 후 나는 평소에 얼마나 내 생각으로 듣고 내 생각대로 말하여 왔던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사실을 그대로 보고, 듣기보다 내 관념대로 혹은 내 습관대로 해버리기가 쉬운 것임을 크게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었다. 그것이 일상 생활의 기본이었다. 혹독한 꽃샘 태풍은 수많은 사람들의 부푼 새봄을 깡그리 앗아갔다. ‘빨리빨리즘’으로 철없는 꽃과 열매를 언제라도 볼 수 있는 것은 저 태풍과는 상관없는 일일까.(2003/ 3)
별은 빛나건만
세 자매가 부산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대진고속도로의 함양 휴게소에서 쉬었다. 화장실 벽화의 가을 숲길이 참 아름다웠다. 옛날부터 유서 깊은 상림 공원. 해는 서산을 막 넘고 동녘의 먼 산에 아직 시들어 가는 햇살이 깔려 있었다. 이 밤을 달려야 할 어떤 이유도 없으니, 저 숲에 가서 저녁산책을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둠이 급히 좇아오는지라 약간은 바쁜 마음으로 그 숲에 닿으니 벌써 야간 전등이 낙엽이 쌓인 오솔길을 비추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함양에는 물 좋고 풍광이 좋은 곳이 많아 정자문화가 발달한 선비의 고장이었다. 예부터 좌(左) 함양, 우(右) 안동으로 영남에서는 서로 제일의 선비 고장임을 다투었다. 함양에서 지리산 쪽으로 산 하나만 넘으면 산동 마을인가 했더니 인월을 지나고 길은 멀었다. 그 길 밖에 없어 그냥 달렸다. 별들이 차 창 안으로 들어올 뿐 헤드라이트에 스치는 가로수의 단풍빛깔로 보아 주위의 산 풍경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었다. 캄캄한 산길 곳곳에 도심을 방불케 하는 위락시설이 가끔 나타났다. 창으로 기어들어 오는 별들의 유혹에 방향을 모른 채 별을 좇고 있었다. 통행료를 지불해야 된다기에 비로소 노고단을 통과하는 길인 줄 알았다. "가다가 불빛 하나도 없는 산자락에 세워주세요. 전조등과 차안의 불빛도 다 끄고 별을 좀 보고 가요." 갑자기 동생이 말했다. 합창이라도 하듯 우리는 그러자 고 했다. 검푸른 하늘 밑 산등성이만 까맣게 윤곽이 드러난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이아몬드 결정체들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밤하늘은 가까운 이웃 마을 같았다. 노고단 정상에서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만 해도 전기불빛에 하늘이 바랬지만 별나라는 아름다웠다. 동녘 하늘가에서 북두칠성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하늘에는 별들의 잔치요, 산 아래의 마을에서는 평화의 불빛이 반짝였다. 얕은 산 어구에 깔려 있는 별꽃 같은 불빛이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 일으켰다. 제낭은 마을의 불빛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복잡한 마을의 이야기들이 거리를 두고 보면 정겨워지는 법이다. 오랜만에 잠겨 보는 은하! 하얀 너울이 살래살래 움직이는 은하수 사이사이 수 없이 크고 작은 별들은 장대를 들고 훌쩍 뛰면 금방이라도 따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별들이 줄을 이어 두 눈 안으로 툭툭 떨어져 들어와 온 몸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별은 빛나고 땅은 향기를 뿜건만, 어디선가 토스카의 연인 카바라도시처럼 '별은 빛나건만'을 흐느끼듯 간절히 부르는 사람이 없을까. 밤길을 달리다보면 가끔 들녘에서 불이 환한 비닐하우스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 속에서는 채소들이 밤의 휴식을 모르고 무성한 잎만 자라고 있다.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들을 얻을 수 있는 요즈음이기에 가을에 말린 채소를 준비하지 않아도 좋다. 차라리 늦가을 들녘의 한가로운 햇살을 주워 담아 놓고 긴긴 겨울날 꺼내 쓰면 좋을 성싶을 뿐이다. 밤 동안 사랑도 못하여 열매도 맺지 못하는 깻잎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고 했던 언니의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두드린다. 태양도 눈부신 날개를 접어버리고 고요한 침묵의 품으로 몸을 숨겼다. 낮의 오만과 갈등의 줄다리기, 온갖 치장의 속박과 허세, 아이에서 어른까지 피할 수 없는 비교와 경쟁의 눈초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영혼의 휴식처는 어디인가. 밤은 낮 동안의 욕망과 가시 돋친 마음을 걸러내는 시간. 졸라매었던 체면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자유롭고 진실할 수 있는 여유. 밤이 있기에 낮의 혼란은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다. 부글거렸던 탁한 열기는 맑은 달빛에 목욕하고 별빛을 가슴에 안을 수 있다면 한낮에도 높이 날아 멀리 볼 수 있는 갈매기처럼 영혼의 날개를 당당하게 펴리라.
고속도로의 달리는 자동차와 같은 우리네의 삶은 교각 밑의 아름다운 쉼터를 스쳐가고 있다. 밤하늘의 속삭임도 꿈결 같은 옛날 이야기에서나 찾을 수 있을까. 밤에도 마을의 거리에는 낮과 같은 불빛이 난무하고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든다. 식당 가 정원수에는 인조 별들이 내려앉아 하늘의 별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전기 불 아래의 딱딱한 금속기구 앞에서 밤을 새고, 낮에는 몽롱한 정신으로 동굴 같은 어둠을 더듬는 현대인들. 순수한 낮과 밤을 잊은 문명인들은 비닐 하우스 안의 깻잎처럼 문명이 이루어낸 거대한 베일 안에서 점점 본연의 모습에서 멀어져 간다. 밤낮 없이 자란 채소를 많이 먹고 특수 사료를 먹인 고기를 먹어야 하는 요즈음인지라 사랑에도 특수한 기술이 발달하는 것일까. 순간 순간의 마주침은 불꽃 튀듯 하지만 진정한 영혼의 진동을 위한 오랜 준비와 기다림에는 하늘의 별을 헤는 만큼 어려운 일이 되고 있나보다. 사랑의 풍속도도 초고속의 물결을 타고, 급히 맺어졌다 급히 헤어지는 사랑이 많아지고 있다. 운명의 날은 별이 유난히 반짝였다. 죽음을 예견하고 카바라도시가 연인 토스카와 같이 했던 아름다운 밤을 생각하며 불렀던 저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그 때의 그 별들은지금도 여전히 밤하늘에 반짝이며 '오묘한 조화'를 속삭이고 있건만 …. 10 마이 웨이 뷀빙
봄은 역시 부풀어오는 땅에서 시작된다. 매화가지는 화사한 꽃구름으로 덮이고 목련도 하얀 꽃망울을 드러내었다. 춘삼월의 폭설은 전설처럼 아련할 뿐 솟아오르는 생명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폭설의 후유증에도 아랑곳없는 정치권은 반란의 정도를 넘어서 대지진을 일으켜 온전히 발을 땅 위에 딛어도 될까 걱정스럽다. 춘삼월에 폭설로 인한 막대한 피해를 입는 등 생태계의 이변이 일어나는 환경문제에 따른 위협은 지구의 반란인지도 모른다. 지구의 표면에 붙어사는 인간들이 전체의 흐름을 모르고 부분적인 것에, 자신 주변에만 갇혀, 소비하고 낭비하고 혹사시키다보니 지구는 털어내고 싶은 몸부림을 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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