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수수필집<바람의 커튼>

<바람의 커튼> 2부, 깨달음의 꽃

차보살 다림화 2009. 9. 7. 18:44

<바람의 커튼> 2부, 깨달음의 꽃   2008/11/11 19:34 추천 0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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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깨달음의 꽃
순수
화석
가을 하늘 가을 물소리 

벌레
이사하던 날
손에 걸려서
베이스 캠프

 

 

 

 

1
깨달음의 꽃 
                                            

 

  청정무구한 연꽃향기를 마신다. 진흙의 정기가 빚어낸 초록 잎에 밤새 고인 이슬로 순백의 연향蓮香)을 우려낸다. 감로차 한 잔에 몸과 마음이 순간 환해진다.
  이름 모를 삼세(三世)의 부처들이 삼복 더위에 연화대에 앉은 듯. 심청의 혼백이 푸른 치마 받쳐입고 흰 구름 타고 연 방죽에 내려앉은 듯. 방죽을 뒤덮은 연잎은 부드러운 파도가 넘실대듯이 바람에 일렁인다.

  모든 생명은 종족 번식기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활짝 피기 시작하면서 짝을 부르는 몸짓을 한다. 꽃은 성숙의 절정을 이루어낸 뒤, 그의 결실로 열매를 맺는다. 그러기에 태어나면서부터 꽃을 피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필요한가.
  연잎은 가지를 치지도 않고 줄기도 뻗지 않으며, 다른 잎을 감는 덩굴도 뻗지 않는다. 오로지 곧은 외줄기로 올라온다. 물 속에서는 손가락을 말아 쥔 주먹 같이, 단호한 의지를 품은 입 같이 다문 채 올라온다. 짙푸르게 성숙해진 잎은 결코 연화(蓮花)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햇 연근(蓮根)의 신선한 생기는 꽃에게 양보하고 오래 묵혀 둔 지혜를 살려 꽃을 더 꽃답게 빛내는 즐거움을 연엽(蓮葉)은 알고 있다. 커다란 치마 자락을 벌려 이슬을 받아 두었다가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을 꽃잎에게 적셔주려는지…….

  연꽃은 잎에 기대지도 않고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물 속에서 외롭게 긴 시간 투혼을 불사르며 떠오른다. 어두운 미망을 걷어 헤치고 밝은 빛을 보기만 하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는 희망을 안고 일심(一心)으로 정진한다. 탄생부터 연꽃은 꽃과 종자가 운명적으로 인과(因果)가 된다. 삶의 시작은 죽음을 동반하고, 또 다른 생명의 태동은 기다림을 위한 은혜의 강물에 고요히 잠겨든다. 삶과 죽음사이의 거리가 본래 있었던 것일까. 스스로 고통과 번뇌를 짓고 부수고 부대꼈다. 아침부터 밤까지 백팔 번뇌의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진흙탕에 떨어졌다. 시궁창 흙탕물을 서로 튀기면서 허우적거렸다. 문득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빛을 향하여 나르는 연습을 해야 했다. 수영을 배울 때 수영장 물 속에 뛰어 들어 바닥을 차면 반사적으로 튀어 올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려가야 했다. 밑바닥까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연못가를 산책하는 젊은 엄마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알 수 없는 미소가 절로 번지는 나의 얼굴을 향하여 꽃들은 고개 짓을 한다. 옛날 그 때, 나의 모습을 기억이나 하듯이.
  연지(蓮池)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살았던 나는 동네 아이들과 더불어 덕진 공원을 자주 드나들었었다. 연꽃이 필 때면 우리는 덕진 연못에서 자주 만났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잠 못 들어 할 때면, 그 연꽃은 나를 불렀다. 그는 결코 말로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우리는 같이 찻잎을 따고 정갈하게 빚은 햇차를 부처님 전에 공양 올렸었다. 그리고 초파일 전야를 연등으로 밝혔다. 초파일 절에서 만난 스님께 친구처럼 스승처럼 끌렸던 매력이 수행의 향기였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스님이 참 부러워요." "암, 부러워해야지." 당당하고 낭랑한 목소리는 연잎에 내린 진주 이슬 구르는 소리 같았다. 한 떨기 아리따운 연꽃으로 내 안에 아로새겨져 다시 살아나는 향기가 초록의 가교를 밟고 시공(時空)을 초월한 피안(彼岸)으로 나를 이끌었다.

  야무지게 다문 입가에 미소를 띈 채 열릴 것 같지 않던 봉오리가 배시시 열리는 것을 볼 때, 숨 죽여야 했다. 반쯤 열려 가운데는 텅 비고 꽃술과 여린 열매는 긴 목으로 흙탕에서부터 그윽한 향내와 순백의 빛을 뽑아 올리고 있었다. 활짝 열려 화려한 꽃잎에 담았던 화엄의 세계는 하늘로 터지고 한 잎 두 잎 연화 정토의 찬가가 수면으로 잦아들었다. 마침내 여린 연자(蓮子)는 노란 꽃술을 달고 깊은 속내를 속삭이며 꽃잎을 여의었다. 몇 천년을 넘나든다는 연실은 그로부터 천일기도에 들어갔나 보다. 회향을 향하는 기원은 천년의 고독을 담아야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바람결에 실려오는 향기는 더욱 그윽하고 은은했다. 솔 산도 대나무 숲도 향기에 젖어 깊은 선정(禪定)에 잠겼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연꽃은 진흙에 뿌리를 두고서도 물들지 않고 다른 종을 섞지 않는 영원한 순종이다. 고귀한 깨달음의 꽃을 피운 부처들은 그래서 모두 연화대 위에 앉아 법음(法音)을 설하는가 보다. 연꽃은 부귀도 탐하지 않고 요염하기를 거부하며, 서로 엉겨 비벼대는 거추장스러움도 없다. 저만치 떨어져서, 누구도 근접할 수 없다. 붙어 있지 않아 끈적이지 않고 무겁지도 않다. 서로 마주 보기도 하며 나란히 하늘을 우러러 시방세계를 자비의 향으로 넘나든다. 철저히 홀로 이면서 함께 한 세계를 이룬다.

  수많은 사람들의 입 빠른 칭송이 청정한 연심(蓮心)에 누가 될까 저어된다. 연꽃을 따라 이쪽 저쪽에서 긴 안테나까지 세우고, 멀리서 가까이서 찍어대는 사진사들은 꽃 마음엔 아랑곳없다. 진초록 잎에 드리운 꽃 그림자에 앵글을 맞추고 빛과 그림자의 예술을 네모난 쪽지 위에 재창조한다.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는 여린 씨앗에 붙은 꽃잎 하나와 다 말라버린 꽃대를 대비시켜 또 한 장의 예술이 창조되고 있다. 아침에는 반짝이는 햇살 속의 이슬 젖은 꽃잎을 연출하고, 노을지는 황혼녘에는 타 들어가는 빛 속의 꽃잎을 담아낸다. 아무리 애써 보아도 연화장(蓮花藏) 깨달음의 향기는 담을 수가 없다.
  결코 잡을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연꽃의 숭고함을 내 문학의 앵글로 담아낼 수 있을까. 차라리 두 눈 딱 감고 조용히 내 마음 속에다 연향(蓮香)이라도 고이 담아둘 걸 그랬나보다.
 (2003년 여름) 격월간 <수필과 비평> 2003년 l/1월호, 신인상 당선작

 

 

 

 

 

 

2
순수(純粹)

                                          

 

  창 밖이 새하얗다. 흙 한줌도 안 보인다. 백설이 쌓여 상처 나고 찢긴 맨살을 덮었다. 바람결 따라 공중에서 춤추던 눈발이 유리창에 사뿐사뿐 내려앉는다.
  설국(雪國)에 첫 발자국을 내딛는 기분. 적설 위에 발자국이 찍히는 소리 '뽀드득 뽀드득'.자동차들은 솜이불을 덮은 듯 고이 잠을 자고 있다. 주택 뒤를 돌아 언덕길을 오른다. 봄이면 찔레꽃 담장이 아름답던 집 앞을 지난다. 왕죽과 청죽들 사이로 제법 울창한 숲길이 열린다. 푸른 잎새 하나 하나마다 눈이 내려 쌓인 대나무들이 청신한 신부를 연상케 한다. 눈 덮인 대나무 숲 터널을 바라보며 조금 오르면 오른 쪽으로 전주 유씨 무덤 하나가 있다. 여기까지 오면 한 숨을 돌리고 후끈한 발을 쉬어야 한다. 목화 솜을 송이송이 머리에 얹어 놓은 듯 소나무 밑이 안온하다.
  정강이까지 푹 푹 빠지면서 비탈진 언덕을 올라 구릉 끝에 선다. 눈발은 강풍과 함께 몰아친다. 바로 눈앞의 나무들만 보일 뿐 온통 눈구름에 덮여 하얗고, 그 뒤는 회색구름이 가득 내려앉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맑은 날은 이 언덕에 서면 전주의 서부 시가지가 한 눈에 시원하게 보이는 곳이다. 왼쪽 멀리 박물관 지붕이 보이고, 버스길 위로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광경도 보인다. 정면으로 멀리는 전주공대 건물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마전으로 넘어가는 천 변에 새 아파트 건물들이 선명하게 줄지어 서 있다. 눈보라 속을 헤치며 거북이 걸음으로 자동차들이 걷고 있을 텐데, 그 모든 광경이 눈구름에 갇혀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것인가?
  눈 방석에 주저앉아 노송에 기댄 채 숨을 고르자니 마을의 전설이 솔잎에서 새어나오는 듯하다. 소나무 사이로 작은 새 한 마리가 후드득 날아와서 눈 덮인 땅을 헤집어보다 이내 멀리 날아가 버린다. 이렇게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 먹이를 낚아야만 하는 뭇 생명들에게는 힘들고 추운 겨울이리라. 살기 어려웠던 옛날에 어른들은 없는 사람은 여름 살기가 차라리 쉽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눈보라가 휘날리던 바람 찬 흥남 부두에…" 노래 말이 떠오르면서 52년 전 1.4후퇴 (오늘이 마침 1월 4일이다.) 때 생각이 난다. 그 때 그렇게 추웠다는 기억은 왜 나지 않는지 알 수 없다. 전쟁의 후유증을 잊기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건만, 여전히 전의(戰意)가 사라지지 않는 남과 북의 관계이며 이 지구촌이다. 몇 년만에 눈다운 눈이 펑펑 내린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었다. 눈이 많이 내렸던 그 겨울도 고요하고 적막한 날들이 이어졌었다. 오로지 강아지 한 마리가 내 뒤를 쫄랑거리면서 눈 덮인 마을길을 즐겁게 뛰놀며 따랐었다. 식구도 몇 안 되는 가족이 뿔뿔이 자기 일로 흩어져 있어 먼 하늘만 보던 때가 새삼스럽다. 각자의 터널 속에 갇혀 있어 같이 가야할 길이 보이지 않던 그 때가 지금처럼 눈구름에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던 때 같았나보다. 분명히 눈보라가 그치고 뿌연 구름이 비가 되든 눈이 되든 쏟아져 내리면 거기 길이 훤히 드러나기 마련이었던 것을……. 시간이 필요했었다. 눈구름이 하얀 꿈이 되어 부서지고 미로를 헤매다 만든 상처를 덮어 아물게 했던 시간들이었다.
  오던 길을 다시 내려가는 것은 재미가 없다. 좁다란 오솔길, 인기척 소리 하나 나지 않는 고요한 숲길이 이렇게 아늑할 수가 없다. 포근한 백설의 양탄자 위를 사뿐 사뿐 걷는다. 키가 몇 척이나 될 것 같은 노송들이 하얀 털모자를 쓰고 여기 저기 우뚝 서서 마을을 호위하고 있다. 집들이 송림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구들을 데우려는 나무 타는 소리가 사라진지는 오래 전,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 간혹 들려오고 있다.
  샛길로 내려오니 마을 분지 가운데 편안한 모습으로 서 있는 우리 주택의 전경이 보인다. 눈은 여전히 강풍과 함께 휘몰아친다. 봄가을 찾아보던 감나무 밭과 배나무 밭까지 올라본다. 앙상한 가지마다 자신의 분수만큼 알맞게 디자인한 흰 드레스를 보기 좋게 맞추어 입은 듯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했다. 감나무 가지 밑에 살며시 누워본다. 하얀 침대 위에 흰 드레스 입은 하늘의 신부가 꿈을 꾸듯이. 마지막 잎새까지 다 벗어 던지고 정갈한 맨 몸으로 기다렸던 나목들의 기다림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삭막하기만 한 것 같은 이 겨울이 축복의 시간이 되는 이유를 순백의 너울로 치장한 나목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무 잎들의 흘러간 생은 따뜻한 눈 밑에서 땅 속으로 녹아든다. 눈발이 내리듯 그들의 꿈도 나래를 펴고 있을 것이다. 솔숲과 대숲에서 부는 바람이 눈꽃을 흩날린다.
  여름내 싱싱한 맛을 자랑했던 채소밭도 하얀 이불 밑에서 조용하다. 갈색으로 말라버린 부들은 가녀린 몸매로 마른 머리채를 흔들거린다. 새 싹을 움트게 하기 위하여 눈보라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뿌리를 지키고 있다.
  적막한 마을에 아이들 소리가 명랑하게 울린다. 눈을 맞으러 나오는 사람은 없고 오직 아이들뿐이다. 아이들을 보니 몇 십 년 전의 겨울이 춥지 않았던 이유를 알겠다. 내 생애 이런 순백의 향연을 얼마나 더 즐길 수 있을 것인가. 눈바람이 잦아드는가 했더니 이내 함박눈이 되어 펑펑 쏟아져 하늘을 메우고 땅으로 쌓인다.
  동녘으로 솟아오른 일출이 아스라이 보이는 먼 시가지를 건너와 이 마을까지 비추기 시작했다. 만물이 제 모습대로 백설을 쓰고 있는 정경이 눈부시게 빛나고 가슴 가득 양광(陽光)으로 채워진다. 그랬다. 눈구름 위에는 찬란한 태양이 그 자리에 늘 있는 것이다. 태양은 먹구름이 신비한 결정체를 빚어 땅을 덮을 때까지 기다렸다. 세상은 단순 명쾌한 순수의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쌓인 눈은 오래지 않아 햇볕에 힘없이 녹아버리고 땅은 다시 지저분한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다. 한겨울에 받는 하얀 눈 세례는 여전히 우리 안의 순수성을 일깨워준다.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순수를 잃지 말라고…."
(2003. l. 4) 월간 (새마을 금고) 2003년 2월호 발표

 

 

 

 


3
화석 
                                        
                                     

 

  가을꽃도 다 사라지고 노란 은행잎만 바람결에 날린다. 같은 나무의 낙엽들도 모두가 조금씩 다른 모양에 지녀온 무늬와 색깔이 다르다. 사람의 경우도 낙엽처럼 온전한 최후를 장식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인간처럼 복잡한 생물이 어디 있던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생물학적인 종(種)으로서 인간은 아마도 유일하게 죽은 후의 세계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생명체일 것이기에.
 
  늦가을 어느 날, 자연사박물관에서 보았던 미라가 떠오른다. 자연사박물관에는 사람의 화석인 미라가 있다. 2004년 5월에 동학사 부근에서 한 문중이 조상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600여 년 된 미라이다. 에집트의 것은 미라를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이것은 자연 그대로 된 것이다. 관을 두 겹으로 싸고 관 바깥의 사방에 회를 집어넣어서 생긴 진공 상태로 인하여 미라가 된 것이다. 두 겹의 관은 소나무로 된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악취가 굉장했다는 설명이다. 삶은 후 말리는 과정을 몇 번 거친 후 전시하고 있다. 가까이 가면 지금도 약간의 냄새가 난다. 두 구의 미라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데 각각 유리관에 보존되어 있다. 각종 의학적인 검진을 해본 결과 어떤 질병으로 죽었으며 무엇을 주로 먹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자연적으로 된 천연의 인간미라는 처음 보았다. 나무 화석이나 공룡표본을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이 잘 말려져서 진공 포장된 마른 명태 같이 거무튀튀하고 빳빳하게 보였다. 그 정도면 훌륭한 미라가 된 셈인데 결코 아름답지는 않았다. 겨우 40여 년 살고 600년 동안 미라가 될 수 있었다는 의미를 무어라고 해야 할까. 죽은 후 자신의 시체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연구 자료가 될 운명임을 알았을까. 미라를 연구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방도라도 숨어 있긴 한 것일까. 미라에 성령을 불어 넣어줄 하느님은 어디에 있을까. 자세히 살피고 있자니 사람들이 다 나가고 미라와 나만 남았다. 왠지 뒷골이 당기는 것 같고 으스스 해서 열람실을 얼른 나왔다.
  1억4천만 년 전 살았던 각종 공룡이 실물 크기의 거대한 화석 표본으로 부활한 모습은 신기하고 재미있다. 공룡은 파충류로 도마뱀의 조상이기 때문에 '사우루스'라는 이름이 붙는다. 손보다 뒷발이 발달한 할아버지 공룡인 알로사우르스, 하늘을 나는 공룡, 바다에 살았던 공룡, 육식공룡, 초식공룡 등의 이름이 모두 사우루스 항렬로 정해졌다.
  지구에 이변이 생겼을 때 그 거대한 공룡들, 코끼리의 조상이라는 맘모스, 흰긴수염고래들이 사라졌다니 인간이란 종(種)도 언젠가 사라질 날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지구상에 주인처럼 살다가 사라진 동물들은 모두 거대한 몸집에 비해 뇌가 작다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가 너무나 멍청한 동물이어서 살아남을 재간이 없었을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지능이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여러 생물의 진화과정을 지켜본 후 가장 잘 난 종으로 나타나려고 늦게 출현한 것일까? 과학이 인간 수명을 얼마나 늘릴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인류의 무한한 발전의 가능성은 그 두뇌를 어느 쪽으로 쓰느냐에 달려 있지 않겠는가.
 
  지난 2005년 너무나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군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싼 '황우석 신드롬'이 그랬다. 인류의 생명에 대한 연구를 놓고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감성적으로 대응하는 우리국민의 우상 세우기와 극단적으로 돌변하여 사기꾼 취급하는 태도는 우리 사회의 미성숙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매체에 나타나는 태도도 과학자답지 않으며 언론은 더욱 출렁대는 태도였다. 다분히 이성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은 사안인 것을. "오리알인줄 알고 품고 있었는데 어느 날 뻐꾸기 알이었다." 과연 누가 그 알을 바꿔치기 한 것일까. 연구 기술을 다루는 과학자들이 생명의 엄연한 질서를 왜곡할 수 있는 것인가. 모든 생명의 향상과 행복을 위하여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태도여야 하는 것을…….
  황우석 팀과 미즈메디 팀과 또 미국의 새튼의 입장이 얽혀 있는 가운데 개인과 국가 간의 이권과 명예의 함수관계가 빚어내는 시나리오의 진실. 과연 수사도 진실하게 진행될 것인가. 연구와 기술을 둘러싸고 있는 분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진실이 바탕이 되어야 했다. 그 가운데 거대한 돈이라는 이권이 거래되어야 한다면 순수한 생명은 언제라도 위험하다. 연구해온 모든 기술의 업적을 제대로 부려 쓸 수 있는 인간의 올바른 정신과 투명한 자세가 절실하다. 과학자들이 마음놓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화석이 된 나무들. 갈색으로 된 규화목은 보석과 같다. 1억만 년 전의 나무가 화석이 된 규화목. 규화목(珪化木)이란 나무가 오랜 시대 전에 퇴적물 속에 묻혀 있다가 광물질로 바뀐 것이다. 규화목을 절단하여 연마하면 나이테가 나타나기도 한단다. 꽃무늬가 화려하게 장식된 돌 화석도 신비스럽다. 그것들은 인간 생활에 좋은 쓰임새로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화석은 인류 발전에 얼마나 쓰임새가 있을 것인지…….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고대인은 미라에 담았다. 그러나 그 위대했던 누구도 다시 오지는 않았다.
  인물백년빈(人物百年賓)이라 했던가. 한 번 간 사람이 그 모습대로 다시 오지 않을지라도 사람은 오고 또 올 것이다. 잎이 다시 피듯이. 햇볕은 한낮에도 힘이 없다. 날카로운 바람 한 줄기가 볼을 때린다. 아! 춥다. (2006년 1) 종합문예지 <한국미래문학> 2006년 제 17집

 

 

 

 

 

 

 

 

4
가을 하늘 가을 물소리
     
                                                
  해가 짧아진다. 사월이 두근거림으로 온다면 시월은 서성거림으로 온다. 가을은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이 되어 오는 계절. 가을 숲의 단풍에서는 찬 서리 앉은 앙상한 나뭇가지도 얼비친다. 가을 햇살에 여물어 가는 곡식이나 열매들은 바라보기만 하여도 뿌듯하다 못해 차라리 허기가 진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풀꽃 언덕을 거닐 때 더욱 소슬해지는 까닭은, 핏줄을 타는 가을 향기가 어스름에 불어오는 까슬한 바람이 되어 그리움 한 줄기를 불러내기 때문이다. 그래도 황금빛 들판에서 한들대는 살살이 꽃과 억새풀 사각거리는 소리는 본래 비어 가는 들녘의 풍요로운 찬가이기도 하다.

   가을은 어딘가에서 숨결을 고르다 사라져간 모든 이들이 그리운 계절. 철없던 시절의 잊혀졌던 짝사랑들까지도 새록새록 그리움의 색깔을 피워낸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만나야 할 생명들의 얼굴들이 마음을 파고든다. 어째도 시월은 괜스레 마음이 바빠진다. 하루해가 짧아서 만날 수 없으면 뜰에 내려가 풀꽃 한 송이에서 보고싶은 얼굴들을 찾아보리라. 달 밝은 밤엔 동산에 올라 달빛을 타고 흐르는 가을을 새기고, 맑은 별밤에는 나뭇가지의 익은 열매를 따듯이 하늘의 보석을 점찍을 것이다.

  장구목 계곡은 신이 빚어놓은 조각공원이다. 얼마나 긴 세월 동안 흐르는 물살에 씻긴 바위들이었을까. 낯익은 여러 형상들로 빚어져 신성한 조각품으로 부활하였다. 조각품 하나하나를 쓰다듬고 매끄럽게 흐르는 빗살 무늬 물살이 바위 밑으로 떨어지면 소용돌이를 치면서 세차게 뒤집힌다. 크고 작은 거품을 내뿜으면서 바닥 면의 생김새대로 다양한 물소리를 낸다. 소나무에 비 내리는 소리 같기도 하다가 이윽고는 주전자의 찻물이 끓는 소리같이 운치 있게 들리기도 한다. 아! 저 맑은 가을 하늘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어디서부터 내려와 내 눈앞에 저리 흘러내리고 있는가. 내 핏물이 다 응고될 때까지 저렇게 흘러내리다가 자자손손 대를 이어 막히는 일 없이 흘러내렸으면 좋겠다.
 
  물소리는 수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들에 부딪치는 대로 소리를 낸다. 큰돌과 자갈 위에서 내는 소리 등 그 바닥의 모양에 따라 만 가지 형태로 만 가지의 소리를 낼 것이다. 널따란 바위 위로 미끄러지는 물소리는 투명한 하늘빛을 그린다. 강가에서 들으면 어울리는 구라모토의 피아노와 첼로소리의 화음이라 할까. 나의 밑바탕에는 어떤 것들이 깔려 있어 어떤 소리를 내고 있을까. 잠시도 멈춤 없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그 생명의 소리가 혈관을 타고 흐르며 한없는 하늘을 날게 한다.

  그 조각공원에는 특이한 바위가 하나 있다. 이름하여 요강바위라 하는데, 나는 그 바위를 우물바위라고 부르고 싶다. 큰바위가 우물처럼 파여져서 물이 고여 있다. 한 사람이 들어갔다 나올만한 크기다. 나는 그 우물바위 옆에 앉아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다. 거기, 또 하나의 우주 속에서 아름다운 요정이 나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산천과 바위를 타고 흐르는 저 물소리에서 들려오는 생명의 울림이 휘돈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는 나르시스들. 호수에 내려 비치는 산 그림자가 아름답듯이 물 속에 비치는 모습은 달빛을 받은 나무처럼 은은하다. 물 속에 뜬 달을 주우려다 물에 빠진 옛 시인이 떠오르기도 하고, 문득 수선화를 떠올리기도 한다.
  어느 숲 속에 은처럼 빛나는 맑은 샘이 있었다. 나뭇잎이나 가지가 떨어져 수면이 더럽혀지는 일도 없었고, 신선한 풀만이 자라고, 바위는 햇빛을 가려 주었다. 어느 날 나르시스는 사냥을 하느라 더위와 갈증에 지쳐 이 샘에 왔다. 그는 몸을 굽혀 물을 마시려 했을 때 물 속에 비친 자기 그림자를 보았다.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물의 요정으로 착각하고 사랑에 빠졌다. 입맞춤을 하려고 입술을 가져갔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하듯 팔을 물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 그림자는 달아났고, 잠시 후 그림자는 다시 나타났다. 나르시스는 그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그는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고 언제까지나 샘 가를 서성거리며 다른 요정이라 생각하는 자신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나르시스가 말라죽은 자리에 청초한 수선화가 피어났다.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를 생각했다. 자기 흉중에 품고 있는 뜻대로 귀에 들리는 물소리는 올바른 소리가 아니라 했지. 자기 관념에 따라 변하는 모습, 들리는 소리는 사물이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보고 듣는 것이 아니리라. 인생의 강을 건너는 동안 우리는 외부의 모든 빛과 소리, 현상들에 얼마나 흔들려 왔던가.
  사람에게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나'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남을 알려면 또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는가. 결국 자기를 아는 만큼 세상을 아는 것이 아닐까. 테니슨이 노래하였듯이, 풀 한 포기라도 뿌리 끝에서 잎사귀 끝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인생이 무엇인지도 가을 물소리의 뜻도 알 수 있으리라.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은 냇가에서 오면 가야하는 사연들을 들으며 물 속의 나를 본다. 우물물 속에 비친 것이 내 모습인가. 물 밖의 내가 나인가. 그 어디에도 나의 진정한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2003. 10) <행촌수필> 2003년 제 4호

 

 

 

 

 


5
벌레
                                     
                                         
  가을을 재촉하는 빗줄기가 내리고 있다.  한가위 달빛과 9월의 끝물더위가 미련 없이 흘러내린다.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찌르르, 찌르르 신음하는 듯하다.
  여름은 모든 생명들에게 열렬한 활동 기였다. 벌레 따위를 겁낼 나이는 이미 옛날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주방에서 바퀴가 들랑날랑 거리는 것만은 참을 수가 없다. 이들 바퀴들에게도 나에게도 서로 쫓고 쫓기며 늦더위가 극성부리던 날까지 치열한 줄달음질을 했다. 정말 두려운 것은 내 정신에 벌레가 끼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경우가 생길 때까지 손 닫기 어려운 깊숙한 곳을 청소하는 일을 미루게 된다. 처음으로 집안에 바퀴가 나타나게 된 일이 내게 그 특별한 일이 되었다. 씽크대 안팎이며 찬장 서랍 속을 다 끄집어내어 매일 닦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청소는 입체적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쓰지 않는 물건들을 모아서 치우는 일도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거리였다. 불필요한 것을 지니고 살지 않는 것이 무소유 생활이란 간단한 진리도 여태 실천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한심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글공부한다고 평생교육원에 다녔다. 새롭게 공부할 제목이 많아지고 문학동네 구경이니 답사니 외출이 잦았다. 아들이 결혼하여 분가한 후 텅 빈 집안을 방치하고 그 허전함을 그렇게 바람난 사람 같이 보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살림은 뒷전이었으니 구석구석 청결은커녕 책만 늘어지고 바퀴들에게 서식처만 제공한 꼴이 되었던가 싶다. 내 글들이 모두 벌레 같기만 해서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선비가 그랬던가. 인간이 인간답게 행동하고 나머지 시간이 있다면 글공부를 하라고. 요즈음 유능한 여자들은 살림도 잘 하고 다닌다는데 정녕 부럽기만 하다. 문학도 인간을 탐구하고 인간의 이야기며 인간답게 살기 위함이라면 내가 주제 파악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알고 있는 것을 잘 실행할 시간도 힘도 모자라는 판에 가리 늦게 무슨……. 작가가 된다는 것은 사실 나의 진정한 꿈도 아니었지만 글을 쓰려다 보니 문학의 형태를 이해해야 했다. 괜스레 작가라는 짐만 지게 된 꼴이다. 어떤 작가는 집안을 더럽게 해도 글 쓰는 일은 그만 둘 수 없다고도 한다.
  혼불문학관에 가면 최명희 작가의 서재를 꾸며놓았다. "저렇게 말끔한 서재에서 글을 쓰지는 않았을 텐데……." 했더니 해설사 말이 그랬다. "실제로 혼불을 집필하는 동안 작가의 방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자료 등으로 너저분했다고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랬겠지. 당연한 일이었지. 요절한 예술가들에게는 어쩌면 마음 속에 자기만의 관념의 벌레들도 함께 키우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글 벌레들의 극성에 생명이 갉아 먹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퀴에 대하여 조사해 봤더니 바퀴가 지구상의 모든 곤충들의 조상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의 멸종을 바라는 일은 지구의 생태를 모르는 인간의 좀스런 희망일 것이다. 바퀴의 별명은 물벌레 혹은 돈 벌레다. 그것은 옛날 어느 나라에 난방이 잘 된 부잣집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해서 유래 되었다나.
  사람도 사람답지 못하면 짐승이나 벌레에 비유된다. 실로 어떤 사람들은 동물의 유형을 닮아 있다. 짐승만도 못하며 벌레만도 못하다는 소리를 흔히 듣지 않는가.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꼴의 관념의 벌레를 지니고 사는 지도 모른다. 학생 때, 공부만 하는 아이들에게는 공부벌레, 책벌레라는 말을 많이 했다. 돈만 밝히는 사람은 돈 벌레라고 부르고, 일 중독에 걸려 일만 하는 사람은 일 벌레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 속의 관념의 벌레들을 몰아내면 정말 사람다울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일을 찾아 하는 일이 사는 동안 우리의 임무이지 싶었다.
  마음수련을 하는 사람들은 관념의 벌레를 청소하는 시간을 가진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에서 벌레가 기어 나오는 것을 체험한다. 어떤 이는 자기 목에서 커다란 구렁이가 기어 나가는 이야기를 실감 있게 말했다. 자기 안의 벌레를 잡기 위해서 각자 기상천외(奇想天外)한 방법을 고안해서 철저히 잡는 수련을 한다. 그런 명상은 지극히 한다고 해도 사람에 따라 수일에서 수 십일이 걸린다. 언제 다시 무슨 벌레가 마음에 끼일지 모르니까 매일 해야 한다. 명상으로 관념의 벌레를 없애게 되면 실제로 부가 효과는 대단했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잔병이나 지병이 말끔히 낫기도 했다. 물론 나도 그 명상의 효험을 보았다.

  관념이 아닌 현상으로 나타난 일은 구체적인 도구와 몸으로 행동해야 한다. 바퀴를 퇴치해주는 기구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벌레들은 사람이 지구상에 출현하기 훨씬 앞서 존재해 왔던 자기들만의 역사가 있었다. 잡초가 땅의 본래 주인이었듯이 곤충의 원조가 바퀴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면 바퀴 탓을 할 일은 아니다. 그들은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한 매개체로써의 역할로 존재 이유가 충분한 지도 모르겠다. 온몸을 움직이는 일은 마음을 맑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바퀴도 나의 스승이었다.
  가을 찬비에 풀벌레들은 춥다고 했을까 아프다고 했을까. 빗줄기에 까무러치며 한 생을 채 구가하지 못하고 만 것들도 있을 테지. 자기들의 때를 알아 소리를 내어 사랑을 맺고 왕성한 생명 활동의 화음을 이루어내는 이 가을철은 그들에게 귀중하고도 유일한 일생이리라.
(2005. 10. 12) <행촌수필> 동인지 2005년 제 8호

 

 

 

 

6
이사하던 날

                                  

                                                   

 

  장마 중에도 이사를 감행했다. 2006년 7월 19일 아침.  '하늘에 전화를 해놨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라고 007아저씨가 말했다.
  지난 한 달 가량 짐 꾸리기 작업을 했다. 얼마나 필요 없이 쌓여진 물건들이 많았던지. 35년 전 서울에서부터 끌고 내려와서 전주에서 또 몇 번이나 끌고 다녔던 티크 장롱이 드디어 폐기되는 순간이었다. 시어머님께 물려받은 뒤주와 오동나무장도 이제는 더 이상 가지고 다닐 수 없다. 아들 딸 다 여위고 둘만 남았으니 다시 둘만 있을 때처럼 그만큼의 짐으로 줄여야 한다. 버리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 어디에도 버릴 곳은 없다. 모든 것이 내 삶의 흔적들. 제 몫을 다했으니 잘 돌려보내야 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그것들도 폐기물이 되어 본래의 에너지 자리로 돌아가는 고달픈 여행을 해야 하고 내 몸도 폐기물이 될 때까지 내 영혼의 그릇 역할을 다 할 것이다. 이제는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닌, 더 잘 돌아가기 위하여 털어 내고 비우는 여정이 남았을 뿐. 장롱 하나를 다 해체해서 버리고 나니 몸의 세포에 구멍이 숭숭 열리는 것 같았다. 마치 검정 숯의 기포처럼 새로운 정화력이 생길 것 같았다.
  정체된 찌꺼기가 숙변처럼 빠지는 시원함에 손가락이 아플 정도가 되어도 개운했다. 하늘나라에 가려면 등짐이 가벼워야 한다지. 마음에서 버렸다면 실제로도 비워야 순환이 잘 될 것이다. 그래도 40년 전에 애써 구입했던 원서들, 그 한 권 한 권을 어렵사리 구입했던 추억을 생각하면,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이 뻔한데도 그것은 담았다. 그 외 35년 전에 습작으로 그렸던 문인화 작품들, 이것도 표구를 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리고 내 청춘 때부터의 사진들을 차마 버리지 못했다. 그것은 내 분신으로 끝까지 따라다닐 것 같다.

  2006년 7월 17일, 제헌절 연휴는 전국의 집중호우 뉴스특보가 왼 종일 TV 화면을 도배했다. 전쟁 같은 위급한 뉴스속보들이었다. 어김없이 올 여름도 태풍 위니아가 몰고 온 비 폭탄이 쏟아져 수많은 목숨과 재산을 잃고 울부짖고 있는 중. 솔직히 내 이사짐이 폭우를 맞고 떠내려가도 좋았다. 차라리 그렇게 되면 생존에 꼭 필요한 것만 건져서 쓰면 되었을 게다. 욕망의 불이 꺼진 식은 언덕에서 여여(如如)할 수 있으며 의무와 권리에서 자유로우니 아까울 것이 무에 있겠는가. 지금 곳곳에서 홍수에 삶의 터전을 잃고 실의에 찬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안전하다는 전제 하에 너스레떠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왜 해마다 계속되는 집중호우라는 재난에 꼼짝 못하는가.
  90년대 이후 세계적인 기상재해는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태풍 루사, 매미를 비롯해서 최신기록을 갱신한다. 주범은 지구의 이산화탄소 증가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지구열이 높아지면 빠르게 순환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 여름의 심한 가뭄과 태풍, 봄철의 황사가 겨울에도 일어날 수가 있으며, 기습 눈사태 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지구는 바야흐로 고혈압 상태. 20세기에 와서 지구온도는 그전보다 0.6도 상승했다. 우리나라 경우에는 100년 동안 0.6도 상승했다는 기록 통계이다. 이대로 산업화가 지속되면 70년마다 두 배씩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누구나 다 지금 이산화탄소 발생 때문에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얼마나 우리 개개인이 그것을 인식하고 노력하고 있는가는 별개인 것 같다. 정말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고혈압에 걸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에 맞는 치료도 하면서 몸을 산화하지 않는 각종 음식요법과 운동요법을 할 것이다. 우리의 발 밑이 그 지경이 될 것을 진즉 자각하긴 했지만 나로써 최선을 다 했는지 물어진다. 이사짐을 정리하면서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정체되어 내 환경을 흐리게 했으며 좀 더 편리하게 살고자 또 누리고자 얼마나 에너지를 낭비했던가를 다시 생각한다. 누구도 그 주범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데는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산화탄소 배출 국 세계 9위이며 증가율 2위라고 한다. 유럽은 경제성장이 완성기에 접어들어 배출 증가율이 낮다. 그러나 유럽의 지붕인 알프스의 만년설이 녹아내려 라인강이 범람하는 등 환경재난을 겪고 있다.
  1992년 브라질에서 가진 세계환경회담에서 기후변화협약이란 것이 체결되었다. 우리는 2003년에 가입했다. 이산화탄소 배출 권을 거래해야 하는 판국이다. 희한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증가율이 높으니 그에 따른 비용까지 많이 지불해야 한다는데, 그런 실정이라면 우리의 세금 부담도 비례하여 늘어날 것이다. 결국 21세기에서는 생활체제를 전면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젊은 세대는 지금부터 저 에너지로 가는 실천을 하면서 그에 적응하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이사짐을 풀 때도 여전히 부슬비가 내렸다. 마치 스프레이를 뿌려주는 듯 먼지를 닦을 수 있어 더 좋았다. 007아저씨의 전화가 이쪽 하늘에만 통했나? 그러나 또 하나의 걱정 뭉치인 태풍이 긴 장마 꼬리를 물고 있다. 이번엔 '개미'가 떼지어 지나갈 모양이다. (2006/7/27)

 

 

 

 

 

 

 

 

 

 

 

7
손에 걸려서

                                        

 

                 

  카프리 섬의 어부의 노래가 정겹게 들린다. 카프리 섬의 절벽 못지 않은 부산의 태종대가 문득 떠오르면서, 해운대 바다에서 일출을 맞으려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수영비행장과 광안리해변을 지나다녔던 때가 생각난다.
  내가 아주 새파랬을 때 부산의 광안리해수욕장은 조용한 어촌이었다. 그때는 모래사장에서 조개껍질을 주어서 목걸이도 만들었던 소박함이 있었다면 지금은 화려하고 깔끔한 도시적 아름다움이 있다. 최근에는 그 해수욕장 위에 샌프란시코의 금문교보다 잘난 광안대교가 걸려서 환상적인 밤 풍경을 자아내고 낮에도 시원한 바다를 볼 수 있는 드라이브코스가 되기도 한다. 영도에 사는 친구가 있어 영도에 갈 때면 작은 영도다리, 큰배가 지날 때 다리가 서는 것을 구경하러 가기도 했던 다리를 건너서 태종대의 아찔한 절벽까지 걸어갔었다. 지금은 교통량이 너무 많아져 작은 영도다리 옆에 영도대교가 위용을 자랑한다.

  6.25 후 부산은 전국민의 피난처였으므로 영주동 비탈에 하꼬방(상자로된 집)들이나 판자 집들이 꽉 찼었다.  하꼬방에 불이 들어오면 밤 풍경만은 그때도 아름다웠다. 밤 풍경만 본 외국인들이 부산의 야경이 참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그 후 반세기에 걸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그 산비탈은 첨단의 도시가 되었다. 그 하꼬방 자리에 하늘을 뚫고 즐비하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의 불빛은 밤하늘의 별들이 쏟아진 것 같이 보인다.
  지구의 인구는 지금 60억. 부산이 그렇게 변했고 또한 전주시가 달라졌으며 세계 각 곳이 그렇게 발전(?) 변화해 왔다. 장마와 태풍에 시달렸던 뜨거운 도시는 지금 열대야에 시달린다.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쾌적한 인구가 2억이라고 했던가. 그러니 생각해 보라! 얼마나 지구가 미칠 지경인가.

  2억쯤의 인구가 있을 때는 조용한 바다의 어촌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에게는 저 노래와 같은 평화가 있었을까. 그때만 해도 그들은 그 자연의 변화에 순응할 줄 알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거저 주어지는 은혜로운 선물이었을 지도 모른다. 물고기도 본래는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정겹게 들리는 노래 가락에 어부들의 고달픈 애환이 서려 있다. 사람의 생활은 물고기만 잡아서는 물고기 같이 유유자적 살아갈 수가 없었으리라.
  언제부터인가 사람 수가 많아지자 삶의 현장은 경쟁과 투쟁의 장이 되고 말았다. 인간의 손에 닿기만 하면 돈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물고기가 물고기 본래의 모습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마치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학생 한 명마다 얼마짜리로 보인다는 것과 같다. 인간의 손에 닿자마자 그것들이 무엇이 되었든 돈의 가치로 환산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에서 멀어졌고 본래의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쓰나미와 열대야를 겪어야 한다.

  인구가 늘어남으로 조용한 어촌은 고기잡이보다 관광객들에게서 벌어들이는 돈의 위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금세기에 최고의 쓰나미가 인도네시아 관광지를 덮쳤다. 올 여름 우리나라 강원도도 쓰나미 같은 재난을 당해야 했다. 화려하고 편리하게 꾸며진 관광지는 자연의 재난에 조각나고 말았다.  아무리 지능이 높은 인간이라 해도 자연은 당할 수가 없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면 현인들이 나타나서 경고를 하고 각성을 요구했다. 인류 최초의 홍수는 노아의 홍수를 말할까? 하나님의 진노를 산 인간들에게 경종을 내리기 위함이었던가. 노아에게 계시하여 방주를 만들게 하시고 모든 생명의 종자를 그 배에 싣도록 했다.

  '오리가 말한다.' 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2005년 위대한 성자들이 한 여름밤에 같은 보름달을 보고 있었다. 예수는 보름달이 무척 아름답다고 했다. 석가는 보름달이 무척 영롱하다고 했다. 마호메트는 그 보름달을 보며 탐스러운 달이라고 했다. 추종자들은 성자들이 한 말을 모두 받아 적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인터넷에서는 전쟁이 벌어졌다. 추종자들끼리 자신의 스승의 말이 더 멋지다고 싸움이 붙은 것이다. 추종자들끼리의 덧글에서의 비방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리 가라사대! 손을 보지말고 저 달을 보라!"

  달의 신비가 벗겨진 현대는 낭만을 말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현대의 신인(新人)이신 우명선생의 말씀은 이렇다. 인류는 시원부터 생성기를 거쳐 성장기를 맞아 지금은 그 결실기를 맞았다. 지구는 동으로 25.5도 지축이 기울어졌다. 그런데 그 지축이 섬과 동시에 이변이 생기고 마음이 달라지고 있단다. 하늘이 서고 사람이 서고 지구가 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미독립년에 인구가 남북 2천만이었다. 현재는 남북 전쟁으로 사람이 많이 죽어도 7천만이다. 인류는 자기중심적 욕심 때문에 번식이 많이 되었다. 요사이는 아이를 안 낳는 이가 많다. 곡식이 많이 자라 추수를 할 때가 되어 가라지는 뽑혀 없애지고 알곡만 수확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인간 종자로 살아남을 것일까. 내 안에 상(相)이 없을 때 대반열반 구경열반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내 안에 구름을 걷어내야 하늘이 잘 보인다는 것이다. 퇴계선생은 인성은 본시 이기(理氣)일원(一元)이니 이기(理氣)이원(二元)이니 했고, 중국에서는 근본을 알려고 하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근본은 하나이나 음양으로 보면 둘이다. 구시대는 듣는 시대이고, 집어넣는 때였으나 지금은 끄집어내는 시대라는 것이다. 싹 들어내어 없애는 공부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본래로 돌아가야 하는 시기. 곧 인류는 결실기를 맞았으므로 본래의 모습을 찾아 영원한 인간 종자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말을 실행하는 시대라는 것.
 
  아직도 우리는 싸움의 시대에서 벗어나기가 먼 것 같다. 말놀음만 일삼으며 살고 있으니 땅 밑이 껴져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다. 전쟁의 수단도 시대에 따라 발전해 왔다. 이 순간도 우리의 반대편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위험은 우리의 남북과 동북아를 비롯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고대서부터 성자들의 추종자들끼리의 싸움은 인터넷에까지 번지고 있나보다. 언제 다시 평화스러운 어부의 노래를 들을 수 있을까.
(2006년 8월)

 

 

 

8
베이스 캠프  
      
                                                                                    

  만년설로 뒤덮인 신들의 땅, 히말라야는 1953년 세계 첫 등반 이후로부터 점점 그 신비로움을 잃고 황폐화되고 있단다. '지구환경대탐사대'의 목표는 히말라야의 해발 5400미터의 첫 캠프에서 8000미터 캠프 4까지의 청소였다. 날씨가 너무 험난하여 캠프 l에서 캠프 2 사이의 쓰레기만을 수거했다. 눈 더미에 묻혀 있는 쓰레기들은 얼어붙어서 수거하기도 힘들었다. 햇살에 말려서 그 무게를 줄여야 했다. 끔찍할 만큼 어마어마하고 힘들게 보였다. 그들은 20일 동안 50여 톤이나 묻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쓰레기 중에서 2톤 정도를 수거했다. 그들의 배낭은 쓰레기통이 되었다.
 "2003년, 8천 미터 급 14좌를 완주한 한왕용 대장. 하지만, 산을 등정하면서 그가 본 것은 충격적인 쓰레기더미였다. 한글이 선명하게 써진 라면봉지와 소주 팩은 산악인으로서 그에게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이제 그가 산에 오르는 것은 산을 정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산이 숨쉴 수 있도록 선물을 주기 위해서다."
  한 대장은 말했다. 많은 쓰레기는 다 수거하지는 못하지만, 자기가 가져온 쓰레기는 가지고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라고. 정복을 위한 인간의 욕심이 숨쉬기도 어려운 고지까지 먹지도 못하는 것을 가져와서 그냥 버리고 간다. 목숨을 지키기 위하여 가지고 온 산소통과 음식을 정복 후 그냥 두고, 텐트도 설치한 상태로 놓고 가버리는 것이다. 2003년부터 시작한 청소 등반의 의미를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산들을 다니면서 잘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 그에 대한 조금의 책임이라도 졌습니다."

내 나이 벌써 60이 훌쩍 넘었다. 안주하고 싶은 나이임에 틀림없다. '지도 밖을 행군하라!'는 한비야의 말처럼 나도 항상 내 의식이 끝없는 내면의 우주로 행군하고자 했다. 의식이 정체되면 고인 물이 되기 쉽다. 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꼭 의식이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좋은 풍경을 많이 본다고 의식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마음 속에 사진만 꽉 채울 뿐이다. 세계의 여러 나라를 많이도 돌아다녔던 한 작가는 말했다. 그렇게 많이 돌아다녀도 나에게 근원적인 깨달음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고. 그렇다. 여행 자체가 인생의 목적은 아니다. 어느 곳에서나 배우고 익혀서 그 깨달음을 실천해 가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때때로 여행에서 돌아올 때 상쾌한 피곤이 엄습해 오면 나는 왜 이렇게 돌아다녀야 하지? 하는 의문을 떠올린다. 늘 내 여행가방은 정리될 때가 없다. 여행의 뒤처리가 정리되면 다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일상을 보내는 것도 삶의 여행이니까.
  친정 식구들이 없는 이 고장은 늘 나를 떠나게 했다. 어떤 이는 한 집에서 20년이 넘도록 살고 평생을 사는 이도 있다. 한 고장에서 늙도록 지내면서 초등학교 동창회도 하고 고향을 옆에 두고 고향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한숨짓기도 하며 추억에 젖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는 부산 시절, 초등학교 친구의 얼굴이 딱 두 사람뿐인 내게는 전설 같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베이스캠프. 여행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수업의 전진기지로서의 내 집이 베이스 캠프였다면, 산악인들처럼 나도 수많은 인생의 산을 넘은 셈이다. 세상이라는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 온 것이 아닐까. 물론 단 한 번의 삶으로 그것들을 다 배울 수는 없지만. 단 한 번의 삶의 기회이기에 꼭 배우고 체득할 과목이 있는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숙제와 자신의 몫이 있는 것이다. 귀중한 삶의 기회에 누구나 꼭 해내야 할 근원적인 깨달음은 반드시 있다. 산악인들이 지구의 지붕이라는 저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듯이 인생에서 올라야 할 참 마음의 에베레스트가 있다고나 할까.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집이 내 베이스캠프였다. 초등학교 2학년, 한국전쟁 때 이유도 모르고 부산에서 개성까지 극적으로 올라갔다 갑자기 내려왔던 피난이 내 여행의 시발이었다. 그리고 나는 늘 유학 중이었다. 방학 때마다 전주에서 부산으로 다녔으며, 서울 시절엔 부산으로 다녔던 것이다. 그렇게 보낸 내 청춘 시절은 본격적인 인생의 산을 정복하기 위한 탐색과 준비과정이 된 연습이었을 것이다.
  돌아가야 할 고향이 없어진 세상. 내가 사는 곳이 곧 고향이 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여행 중이다. 진정한 인생의 첫 관문은 자란 과정이 다른 남녀가 서로를 알아가고 같이 해내야 하는 결혼 여행이었던 것 같다. 신혼의 캠프 이후 많이도 옮겨다녔던 캠프에서 마다 내 배움의 새로운 과목이 그때마다 주어졌다. 아이들을 키우는 기쁨과 힘겨움. 아이들에게 낙원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이상(理想)한 꿈의 산을 찾기 위한 노력. 야마기시(산기슭)란 진리의 산기슭에 모여서 동지들과 함께 오르던 여정. 가파른 건강의 산을 넘다 넘어졌던 일. 험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체험은 내 영혼을 개발하는 행운의 기회가 되었었다. 모든 넘어야 할 산들은 내 마음 속에 다 있었다. 그럼으로써 내가 체득해야 할 중요한 과목에서 익혀야 될 것들은 존재의 정체성, 사랑, 인간관계, 시간, 두려움, 인내, 인생놀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하는 것들이었던 것 같다. 결국 내 마음의 산을 항복 받아 하나인 우주의 마음으로 드는 것이었다.
  이제 내 여행도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 것 같다. 지난 여름에 나는 이미 시작된 나의 클린 에베레스트의 마무리를 위하여 알맞은 베이스캠프로 다시 옮겼다. 이 베이스캠프에서는 새로운 산을 정복해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남아 있는 우리 두 사람 중 누가 먼저 이 캠프를 떠날지 알 수 없다. 그것이 영혼의 먼 여행을 위하여 반드시 통과해야 할 세상의 마지막 터널이 될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내가 철저하게 활용되어져서 살면서 받았던 은혜를 조금이라도 되돌려 주었으면 좋겠다. 이담에 내가 영원한 본래 고향으로 돌아갈 때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일부의 책임이라도 졌다고 자위할 수 있도록 말이다. (2006년 10월 27일)
종합문예지 <한국미래문학> 2007년 제 18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