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북두로 은하수를 길어
마침내 오늘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차 봉지를 뜯었습니다. 식전의 차 두어 잔은 아침을 깨워주며 입맛에 생기를 줍니다. 차 한 잔을 놓고 아파트 앞동 사이에 펼쳐진 기다란 하늘 자락에 솟은 눈부신 태양을 우러러 봅니다.
그날 토부다원의 다실의 정경이 눈에 소연(昭然)히 떠오릅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좌우의 산자락 사이로 호수의 한 면이 들어와 있고 그 끝에 아스라하게 드넓은 하늘이 산봉우리들 위로 펼쳐져 있었지요. 다원으로 올라오는 길이 굽어져 있어 오른 쪽 언덕 뒤에서 올라오는 자동차 이마가 보이면 누군가를 그리는 설렘까지 불러일으키기에도 적당한 자리였습니다. 별밤이라면 창으로 별들이 쏟아질 것 같으며 달밤이라면 달님이 창안을 기웃거릴 것 같은 다실이었습니다. "북두로 은하수를 길어 / 한 밤에 차를 달이니 / 차 연기 싸늘하게 / 달 속의 계수나무를 감싸네." 고려 때 진각국사의 차시(茶詩)를 떠올리기에 손색이 없을만한 풍경이었습니다.
차 향을 가득 머금고 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맛 또한 고즈넉한 향미였습니다. 아무도 기다려주는 사람 없으나 또한 기다리는 것들이 많은 집으로 돌아와서, 그 밤에 홀로 나누었던 차나무 꽃차를 달이니 진각국사의 시심이 되었습니다. 부르르 재빨리 끓어오르는 전기 포트에서 품어내는 물 연기는 방안에 가득한 '감국 향을 감싸네' 였지요.
순천만에 쏟아져 내린 겨울 햇살이 포근했습니다. 세찬 바람에 기울어지는 갈대밭을 스치는 유람선이 물살을 가르며 해안 끝까지 돌며 갯벌에서 활동하는 철새들을 멀리서나마 보여주었지요. 강물이 오랜 여행 끝에 닿은 간석지에서 잠시 철새들과 조우하며 한가롭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놓은 것 같았지요. 멀리서 무리 지어 앉아 있는 가창오리떼며 몸집이 큰 흑두루미들이 조을고…….
우리도 50여 년 세월의 강물로 흘러와서, 갈대바람 속의 한 가닥 갈대로 한나절 머무르게 될 줄을 어찌 예감할 수 있었겠습니까. 남편의 친구로써 그보다 먼저 알았던 학연이었지만 그냥 친구 같았고, 만나면 스스럼없이 가족 이야기로 안부를 묻기도 한 사이. 우리들 중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 안부까지 물을 수 있는 사이. 떠나간 사람은 떠나간 대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의 시간까지 나누게 합니다.
차(茶)는 주로 내가 만든 것을 차 지기들과 나누는 편입니다. 차 스님은 함께 만든 차를 각별히 제게 나누어주시기도 하지만, 이렇게 차 선물을 받는 것은 별미입니다. 내가 만든 차도 다른 사람이 잘 우려주면 더 기막힌 맛을 내기도 하는 것이 차 맛입니다. 같은 차라도 내어주는 사람 따라 환경과 분위기에 따라 다른 맛을 내기도 합니다.
18세기 우리나라 차 부흥을 위하여 차 경전을 남기신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 이야기는 잘 아시겠지요. 토부다원 주인장께서도 초의선사 다풍을 이은 여연스님과 차연(茶緣)을 맺고있다고 했지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시절에 대흥사, 당시는 대둔사라고 했습니다, 승려들과 교류를 많이 했지요. 특히 초의나 호의스님은 다산의 제자로서 학문을 익혔습니다. 그 인연은 아들들에게도 이어졌지요. 다산의 장남이 정학연이었습니다. 초의는 서울 걸음을 할 때면 으레 남양주 초천 가 정학연의 집에서 묵곤 했답니다. 그 때마다 그는 차를 선물했는데, 정학연은 그 차에 장춘차(長春茶)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장춘동은 대둔사가 있는 골짜기 이름이었답니다. 그런 정학연이 대둔사 스님께 편지를 보냈지요.
"지금 세상에서 차의 知己로는 두실 태사뿐입니다. 두실 태사께서나를 통해 장춘차 몇 사발을 마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내가 어려서부터 중국의 이름난 차를 두루 맛보았네. 차의 품질을 품평하는 것은 스스로도 나만한 이가 없으리라 여긴다네. 무슨 놈의 기막힌 차가 저 먼 고장에서 생산되어 이제야 비로소 이름을 드러낸단 말인가. 절강과 나개와 동갱은 진품이 제법 많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맛보기가 힘들다네. 질 나쁜 중국 차를 마시느니, 차라리 장춘차를 취하겠네 그려." 이 말이 몹시 좋아 스님을 위해 외워 드립니다. 내년 곡우 때는 능히 유념해 주실 수 있을는지요. 괜스레 산인山人께 한바탕 번뇌만 안겨 드릴까 염려됩니다."
이렇게 두실태사의 몫까지 다음 해의 차를 부탁하는 은근한 편지 같았습니다. 그리고 작년 봄 초의 스님과 초천 가의 임청정(臨 亭)에서시회(詩會)를 열며 꽃구경을 하려 했는데 이루지 못해 애석하다는 내용과 다음을 기대하는 뜻을 담은 것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옛 선비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는 즐거운 대목이었지요.
토부차의 맛을 보자니 그리고 그 감상을 말해달라는 님의 말을 기억하자니 그 옛날 선비들의 학문과 풍류의 현장이 떠오릅니다. 초의나 호의 스님이 만든 차는 추사 김정희에게만 간 것이 아니라, 정학연이나 문신 박영보, 서화가 申위 등에게도 보내져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신위는 초의(草衣) 차를 맛본 후 전다(煎茶)박사란 칭호를 주었고 추사는 명선(茗禪)이란 호를 글씨로 써 주었다는 일화는 유명하지요. 그 명선이란 글씨를 지난 시월 초에 간송미술관에서 만나고 몹시 기뻤습니다. 한 시대 흥성하게 꽃 피었던 차문화의 현장을 증언하는 편지를 보고 감회가 깊었습니다.
토부차는 순연한 야생차보다 고소한 향이 일미입니다. 차 봉지를 열면서부터 차관에 차를 넣고 물을 부을 때 그 특유한 고소함이 풍겨옵니다. 차 잎을 따서 만든 과정을 무엇으로 가름하겠습니까. 그보다도 아름다운 다원이 형성되기까지의 십수 년의 지난함이 베어 있어 더욱 귀합니다.
다시 두 번 째 차를 식후에 두어 잔 마십니다. 혼자서 둘처럼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차는 늘 나에게는 둘도 없는 지기지우(知己之友)이자 일상의 여유와 여백입니다. 여백이 없는 그림은 주제가 살지 않듯 차 한 잔의 여유가 생활의 전면을 살려줍니다. 있어도 없는 듯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없어도 될 것 같은 명선(茗禪), 그 여백의 맛이 오히려 주인일 때도 많습니다. 저녁에는 아침의 차관에 뜨거운 물을 바로 부어서 세 번 째 차를 우립니다. 이렇게 마지막 떫은맛까지 우려 마시면 하루의 차가 다한 것입니다. 혹 밤중에 차 맛이 그리우면 꽃차를 마십니다.
순천여행에 초대받은 것은 순전히 <바람의 커튼> 덕분입니다. 저 옛 선비들처럼 보낸 하루의 풍류가 참 행복했습니다. 고마움을 보냅니다. 아마 우리의 생의 여행도 해안에 닿은 강물인가 싶습니다. 바다로 나가기에 앞서 잠시 숨을 고르며 갈대밭 사이 갯벌 언덕에서 철새들과 뭇 생물과 한바탕 석별연을 누리는 강물 말입니다. 정학연이 대둔사 스님께 보낸 운치 있는 편지 같지는 못하지만 그에 준한 편지가 되었으면 싶습니다. 그럼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 보내십시오. 저는 계속 <바람의 커튼> 너머를 여행하겠습니다.
(차지기 조윤수 드림 2008년 12월에)
토부다원 가는 길 도중에 잠시 눈감고 있으라 했지요. 눈을 뜨라고 해서 보니 바로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 앞이었습니다. 그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태백산맥의 배경을 언젠가 돌아봤던 기억이 있었지요. 바로 '현부자 네 집' 옆이었습니다. 문학의 향기와 소설의 배경까지 내게 선물하신 님의 배려에 감동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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