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철감선사 차 살림을 찾아
- 2009년 4월을 보내며
4월은 아무래도 차분할 수가 없었다. 이른봄부터 봄맞이 의식을 치렀기에 좀 조용하게 4월을 보내려고 했다.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는 마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한 때 뿐일 4월을 어찌 벌 나비가 되지 않을 수 있었으랴! 마침 배달된 모란꽃이 이 봄 축복의 결미를 장식해주는 것 같다. 모란꽃이 뚝뚝 떨어져야 4월을 잊을 것이다,
긴 나들이가 많았다. 살날이 살아온 날보다 분명 짧은 터이니, 어찌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으랴. 산빛 물들기 시작하면 다신(茶神)이 내려 옴짝달삭 못한다. 신라 구산선문의 사자산문 개산조 철감선사(798-868)께서 입적한 절, 법주사 팔상전과 더불어 목조탑으로 남았던 국보 대웅보전이 불타버려서 안타까웠던 쌍봉사엘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복원된 쌍봉사 대웅보전도 아름다웠지만 그보다 철감선사의 차살림의 흔적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평상심이 도(道)'라고 외쳤다던 중국의 남전회상에서 차(茶)의 부처로 불리는 조주선사와 법형제가 되어 공부했던 스님이기 때문이었다. 그분이 조주선사와 사형제 간이었으니 그때부터 스님의 차살림은 시작되었으리라. 너무나도 유명한 공안(公案)이었던 '끽다거 (喫茶去)'로 유명한 조주선사 아니던가. 초의선사는 <동다송>에서 '안휘성 차는 맛이 뛰어나고 몽산차는 약효가 뛰어나다. 동국차는 다 겸했느니라' 했다. 그 안휘성이 철감선사가 조주선사와 함께 남전회상에서 정진했던 땅이라고 한다. 남전이 열반하기 전에 이미 철감선사에게 '우리 종(宗)의 법인(法印)이 너로 인해서 몽땅 동국으로 돌아가는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중국에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 가지고 왔을 차 씨앗으로 쌍봉사 주변에 야생차가 많은 것이 아닌가. 철감선사의 부도는 내가 본 부도탑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 미를 갖춘 탑이었다. 선사의 부도탑 오르는 길은 돌계단으로 되었는데 길가에 철쭉밭 같이 우거진 차나무들이 있었고 찻물로 안성마춤인 샘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아직 차나무에서는 새순이 나지 않았고 양지의 나무에서 겨우 새순 몇 잎을 따먹을 수 있었다. 선사께 헌차를 올리기도 전에 방정맞게도 찻잎을 씹어 샘물에 마시고 말았다.
너무나도 밀린 일이 집안 가득하여 밥 때를 놓치곤 한다. 이럴 때 잠시 차 한 잔이 나를 다독이며 정신 차리게 하는 좋은 친구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어지러운 가운데 찻잔을 만지작거린다. 차가 우러나는 잠시의 시간이 그리도 고요하고 깊은 산골 암자에 앉은 듯하다. 차 한 잔이 준비되는 몇 분의 시간은 물 흐르는 산골의 솔바람을 내기도 하고, 향기에 따라 가을의 영화를 누리던 차밭 풍경으로 가다가, 석탑 하나 뎅그러니 남은 옛 절터에 있게도 한다. 감히 철감선사와 마주해 보기도 한다. 오랜 차지기와 함께 있는 듯도 하다. 드디어 모든 상념도 살아진 경계가 나타나면 그냥 무념이다. 마음이 고요하여 태초와 같다. (心淨似太初) 찰나로 살려지는 순간. 이 때 남는 것이 있다면 차 한 잔뿐이다. 오른 손이 왼손으로 넘겨주며 잔을 건네며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이다. 그 차 한 잔은 또 무엇이랴! 깊은 산골에 있다보니 모든 것이 시시해지고 남은 것이 있다면 경(心) 하나와 한 잔의 차가 있을 뿐이라고, 부휴선사 말씀하였던가. 산 넘고 골짜기 따라 강물로 흘러 바다에 이르는 그 멀고 험난한 과정의 길이 녹아난 모든 경전이 한 권으로 함축된 심경(心經)을 어찌 사량하랴! 이제 꽃피는 사월을 보내고 차분히 신록의 산 빛을 우려 마시러 정말 산골로 들어야 할 때. 창 끝 같은 새 차(茶)순이 하늘을 찌르듯 솟아 산천초목께 차공양을 올리고 있으려니. 늘 푸름의 정신을 흡입하러 찻잎들께 오체투지로 다가 갈 일이다! 4월을 보내면서 모란을 보내주신 분의 마음이나 신록의 춘광 속에 빛나는 새 차순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평상심'이지 않을까. (2009년 4월 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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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쟈스민과 할머니 냄새 -20009 쟈스민-
가뭄에 단비다. 신록이 우거져서 온 산야에서 신차(新茶)물이 고이는 듯 입안의 단 물 삼키기에 바쁜 5월이다. 차 숲에 비가 내리면 촉촉한 찻물이 우러날 것 아닌가. 차밭으로 가지 못하니 괜스레 창 밖을 내다보며 서성거린다. 움직일 때마다 나를 에워싸며 따라다니는 것이 무엇인가. 가만히 있으면 고요해지는 깊은 숨 뿜어내는 향내. 베란다 창문을 열고 창가에 쟈스민 화분을 옯겨 놓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어요. 빗방울을 느껴보세요.' 라고 말하면서. 2년 전에 9월에 핀 쟈스민 화분을 발견하고 그 화분을 집에 들여서 쟈스민 화분이 두 분(盆)이다. 2004년 봄이던가. 쟈스민 화분을 받고 꽃이 진 후 상태가 좋지 않아서 식물원에 맡겼다가 가을에 찾아왔다. 늦가을에 잎을 전부 다 따주면 다음해 봄에 꽃이 많이 핀다는 아저씨의 말을 기억했다. 아직 싱싱한 잎을 따주는 일은 마음을 크게 먹어야 했다. 해마다 겨울맞이 행사처럼 잎을 따주는 의식을 거듭하고는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4월이 되면 가지마다 돋아난 잎이 다 자란 후 앙징스런 꽃봉오리가 맺고 피어나면서 향을 선물했다. 그때마다 너무나 기특해서 쟈스민의 기념비 1. 2를 탄생시켰다. 신록이 탁해지기 전에 2009 쟈스민 이야기를 또 하고 싶다. 천리향이 향 피우고 다소곳한 춘란화가 고개를 내밀어도 쟈스민의 가지에는 소식이 없었지만 믿고 기다렸다. 4월 12일 철감선사 차살림을 살펴보고 오던 중 전통한옥집을 건축하는 분의 집에 들렀더니 그 집은 웬 향을 평소에 피워놓는가 싶었다. 만발한 쟈스민 화분이 집안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의 것은 그 때 겨우 잎눈이 트고 있었다. 4월 28일 첫차 잎을 따던 날 맺기 시작한 꽃봉오리는 일 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벅찬 마음의 파문은 분명 생명의 약동 이상이었다. 차잎을 따면 그 날은 집에서 밥도 먹지 못하고 차 사랑에 빠져 있어야 한다. 다음날 오전까지 차 손질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침 꽃이 피어나기 시작하여 내 햇차에게는 축향(祝香)이 되었다. 쟈스민 꽃분 아래서 차잎을 손질했다. 꽃잎이 하얗게 바래면 그 꽃잎을 찻잎과 맺어주고 싶다.
문향(聞香) 향성(香聲))이란 말이 이럴 때 생각난다. 쟈스민 꽃은 전에도 말했듯, 봉오리 때부터 활짝 피었을 때까지는 오묘한 보랏빛이다. 날이 갈수록 하얀색으로 변한다. 힘든 생을 말하듯 하얗게 바래는 꽃잎과 함께 나도 깊고 고요한 호흡을 하며 위안을 받곤 한다. 도대체 그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냄새가 들어오는 내 신체의 기관인 코가 없으면 향을 느끼지 못할 건지. 그러나 가까이 가서 가끔 킁킁거려 보지만 결코 그 향은 코로만 들어오는 것 같지는 않다. 문향이나 향성에 대하여 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건가. 들리는 듯 보일 듯 말 듯, 무슨 뜻일지 온 몸의 세포를 쫑긋거리면서 꽃 주위를 돌아본다. 모든 향기 나는 꽃들은 그 꽃잎이 영혼의 향을 담는 그릇인가. 어디에 있다가 그 나무의 가지를 통하여 꽃잎에 담기는지. 처음 내게로 온 화분은 그새 분갈이를 한 번 해주었다. 지금은 처음보다 나무도 커졌고 수형도 좋아졌다. 비록 실내에 있긴 해도 나무가 자라고 꽃잎이 피기까지 공기와 물과 빛의 작용이 한데 모아졌을 것이다. 나무가 살아가는데 나는 겨우 물을 가끔 주었을 뿐이다. 언제 얼마큼 물을 주어야 되는 지도 잘 모른다. 그저 잎 상태를 보아서 감각으로 주었을 뿐이다. 사람은 태양과 바람과 물이 엉겨서 탄생하는 다른 생명을 먹어야만 한데 말이다. 쟈스민 꽃향을 들을 수 있다면 식물과 같이 그렇게 고요히 살 수 있을까.
쟈스민 꽃눈이 터질 무렵 우연히도 다용도실에서 무꽃이 핀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겨울동안 먹으려고 무를 몇 개 신문지에 싸서 보관했던 것이 싹이 나고 긴 줄기를 뻗어 왕성한 꽃을 피우고 씨앗까지 맺고 있었다. 태생으로 받은 에너지만으로도 그 비좁은 틈에서 가지를 여러 갈래로 피워냈던 것이다. 어떤 곳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분출하고 있는 존재의 힘이다.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어디에서든 자신이 지닌 역할과 힘을 보람 있게 피워내야 할 일이다. 생명의 신비를 어찌 다 알려고 한단 말인가. 세월이 흘러도 나에게는 막막한 무지(無知)와 몸의 허약함만 드러날 뿐이다. 끝까지 향내를 하얗게 지니는 쟈스민 같기만 해도 좋으련만. 오직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생명의 몸짓에 찬탄할 일만 남은 것 같다.
만발한 쟈스민 꽃이 모두 하얀색이 되었던 5월 끝 주말에 아이들이 내려왔다. 여섯 살 손녀가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아! 냄새’ 하였다. 며느리는 ‘할머니 냄새’ 라고 덧붙였다. 흔히 냄새라고 하면 나쁜 느낌을 갖기 쉽고, 향이라면 좋은 느낌을 주게 된다. ‘할머니 냄새나 할아버지 냄새’라고 하면 보통은 쾨쾨한 냄새를 상기하기 쉽다. 집안에 쟈스민 향이 스며있어 순수한 어린이는 금방 알아차렸던 것이다. 아직 향(香)이란 말을 모르니 냄새라고 했다. 사람이 향을 낼 수 있다면 어떤 향을 낼 수 있을까. 사는 토양에 따라서 영육(靈肉) 간에 먹고 마신 것과, 생각과 마음에 따라서 사람에게도 분명 어떤 냄새가 있기 마련이다. 그 어떤 생명개체도 가지지 못한 정신을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면, 정신의 향을 내는 것이 사람다운 냄새일까? 빛 바랜 세월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데, 거대한 우주의 역사 속 별 하나에서 그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협소한 시공에서 뱅뱅 돌며 어떤 삶의 향기를 남길 수 있을까? 후에 내 손자들이 할머니를 기억할 때면 쟈스민 고은 향을 떠올려도 좋겠다. 아니, 할머니를 볼 때마다 ‘할머니, 차(茶) 마셔요.’ 하는 애들이니까 할머니가 그리울 때면 차향을 생각하며 차(茶)를 마셔주면 더 좋겠다. (2009/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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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정궤(明窓淨机)'를 위하여
참 다냥한 아침 햇살이다. 봄이되자 거실로 들어오던 햇살은 베란다에서만 놀다 간다. 작은 유리 차관과 잔 하나와 보온병을 들고 창가에 앉는다. 멀리 동쪽 바다로부터 봄바람을 거느리고 와서 이 작은 창안으로 들어와 준 해님께 찻잔을 들어 경배한다. 겨울에 피었던 차꽃이 말라붙어 있는 차수분(茶樹盆) 가지에 새순이 피고 있다. 햇순을 따서 그대로 씹으면 단 침이 고여 생 햇차 맛이 된다. 너무 고귀해서 쳐다보며 차를 두 차례까지만 마시고 먼 산자락 끝으로 펼쳐지는 봄날의 정경들을 마음에 안아본다.
차 맛이 입안에 맴돌아 몸속으로 퍼지자 생기가 일어서 얼른 밥상을 준비한다. 어제는 오전 내내 침대에서 신문도 보고 전화도 걸다가 거실로 나와 운동을 하고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햇살이 방안을 헤집어서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던 것이다. 가까운 언덕으로 산책을 나가서 나물을 뜯었다. 언제부터인가 꽃피는 사월은 황사 바람으로 맑은 날도 연두 빛 물오르는 산경(山景)은 늘 부옇다. 바람이 몹시 세어서 추웠지만 고덕산을 넘는 노을이 고와서 마음이 훈훈했다. 쑥을 다듬어서 국을 끓이고 나물전을 부치는 등 두어 시간 걸렸다. 이렇게 봄나물을 초대하여 식사를 하는 것이 나의 진정한 봄맞이 의식이다. 3월도 되기 전에 성급히 제주도의 봄부터 맞고 왔지만, 이렇게 해야 온전한 봄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아니랴! 밥 먹고 다시 햇살이 가기 전에 차 한 잔 더 나누련다.
차나무에서 새순이 피어나는 것을 보니 또 차신(茶神)이 속닥이기 시작한다. 남녘에는 벌써 차를 따는 곳이 있으리라. 분의 차나무에서 새순이 나온 걸 보면 우리보다 위도가 낮은 중국의 차 산지에서는 차 따는 시기를 청명(4월5일경) 곡우(4월20일 경)라 할 만 하다. "청명은 너무 빠르고 입하는 너무 늦다. 곡우 전후가 그 시기에 적중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날씨로 그 시기는 빠르다. 벌써 제주도에서는 차를 딴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동에서 나는 우전차(곡우 전에 딴 차)를 아주 귀한 것으로 수선대지만 많지도 않아서 값만 많이 비싸다. 맛으로 보아서는 참으로 앳된 맛이다. 차의 정신을 알고 보면 우전차가 좋다고 떠들썩거릴 필요도 없다. 차는 모두 다 고귀하다. 절강의 장흥현 사람들은 입하 전이 아니면 따지 않는다. 처음 차를 따기 시작한 것을 밭을 연다 이르고 입하 때부터 딴 것을 봄차라고 했다. 우전의 세작차 사기를 마땅해 하는 것은 옛 상식(당송대)에만 익숙하고 오묘한 이치를 이해치 못함이다 라고 허차서도 말했다. 지방마다 산지마다 다른 것이다.
중국 명나라 때는 잎차 시기였다. 허차서는 그의 다소(茶疏)에서 차 마시는 때를 24가지 열거했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좋은 때를 '심수한적(心手閒適)'과 '명창정궤(明窓淨 )'를 들고 싶다. 심지(心地)와 수족이 한적할 때를 첫 번 째로 곱았다. 여자들은 결코 심지와 수족이 한적하기가 그리 쉽지 않기에, 나는 '심수한적'하고 싶을 때로 한다. '방우초귀(訪友初歸)'도 적절한 때이다. 벗을 방문하고 막 돌아왔을 때, 특히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일이 있었을 때는 그 뒷맛을 갈무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부녀자들이 아침 일을 마치고 잠시 쉬고 싶을 때가 밝은 창가에서 갖는 커피 타임일 것이다. 그러나 맛에 길들이게 되면 좀 더 깊은 명상으로 들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오늘 같은 햇살 좋은 창가에서라면 '명창정궤'가 얼마나 적격인가. 따로 이런 서실은 없지만, 깨끗한 집 맑은 한지 창 아래 깨끗한 책상도 갖추지 못하지만, 이런 햇살에서는 늘 '명창정궤'가 그립다. 생활 속에 있었지만, '명창정궤'란 말을 음미하게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다소의 차 마시는 때를 열거한 글에서 '명창정궤'란 글귀를 보았지만 허투루 보았다. 지난 해 홍해리 시인의 '명창정궤(明窓淨 )의 시(詩)를 위하여'란 시(詩)를 소개받은 후에서야, 다소(茶疏)의 '명창정궤'가 가슴에 꽂히게 되었다. 그리도 절묘하게 차 마시고 싶은 때인 것이다.
시인의 '명창정궤의 시(詩)를 위하여'는 차 맛이나 차(茶)의 정신도 충분히 담고 있다. 너무 긴 시(詩)여서 여기에 다 인용하지는 못한다. 시인이 일생을 통하여 얻은 지혜의 압축인 것도 같은 장시이다. 한 마디로 시인은 혹은 문인은 '오로지 올곧은 선비의 양심과 정신이 필요할 따름이다' 라고 하는 것 같았다. 즉 "시(詩)는 시적(是的)인 것임을 시인(詩人)으로서 시인(是認)한다. / 생전에 상을 받을 일도, 살아서 시비를 세울 일도 없다 / 상(賞)으로 상(傷)을 당하고 싶지 않고 시비(詩碑)로 시비(是非)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 / 시인은 새벽 한 대접의 냉수로 충분한 대접을 받는다 / 시는 시로서, 시인은 시인으로서 존재하면 된다 / 그것이 시인이 받을 보상이다./……. 장시(長詩)의 대미를 그렇게 쓰고, 맨 끝을 '여시아문(如是我問)' 으로 일축했다.
햇살 밝은 창가에서 마시는 차 맛이 깊고 고요하다. 오늘 마신 녹차는 묵은 중국녹차이다. 지난겨울에 큰언니 댁에서 마시던 차이다. 내가 차를 좋아하니까 내놓은 것인데 언니는 잘 마시지 않아서 뜯은 채로 한 통 그대로 있었다. 내가 가지고 와서 다시 햇 맛이 나도록 볶았더니 깊고 고소한 맛을 다시 내게 되었다. 묵은 것은 묵은 대로 그 성질을 알고 우려내면 좋은 맛을 찾아낼 수도 있다. 묵은 맛이 좋을 때가 많다. 늘 새로운 오랜 친구, 늘 새로 맞는 햇살, 매일 먹는 새 밥과 물, 특히 오늘 같이 옆에 있어도 그리운 봄 햇살 속의 묵은 차가 그렇다. 차를 잘 마시는 일이 쉽지만 않으나 잘 마신다고 해서 그 정신을 얻었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진정한 차의 정신을 챙기지 못해서야 어찌 차茶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맛볼수록 묵은 차에서도 새 맛 나는 '명창정궤(明窓淨机)'의 정신을 음미한다.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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