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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팝나무 꽃 흐드러진 날에

차보살 다림화 2010. 6. 14. 20:26

 

 

결국 컴퓨터를 병원에 보내고 나서

3층에 올라와 작업을 한다. 그래도 내 컴이

시원치 않다 싶어 근래 딸네 것에 사진을 저장했었기로

블로그에 글 올리는 정도야 할 수 있지만

다른 원고 쓰는 일은 당분간 힘들게 되었다.


지난 주말 경남지역에 갔을 때 이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걸 보았는데, 이곳 제주에는

자연적으로 자라는 것은 볼 수 없고,

어느 아파트 입구에서 우연히 만난 꽃이다.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뭇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높이 20m까지 자라며, 잎은 마주나고 타원형이다.

4월에 흰 꽃이 취산꽃차례로 피고 열매는 핵과로

가을에 까맣게 익으며 정원수나 풍치목으로 재배한다.

민속적으로 보면 이 나무의 꽃 피는 모습으로

그해 벼농사의 풍흉을 알 수 있다고 하여

치성을 들이는 신목으로 받들어지기도 하였다.



 

♧ 이팝나무꽃의 노래 - 서지월


저렇게 많은 할 말이

높은 가지 위에서 손사래 치며

아우성인 것을,

우리가 위로만 쳐다보며 살아온 나무들처럼

이같은 보람 한번 만나지 못하고

높이 쳐다보는 것으로 해가 지고

새들이 제 집 찾아 떠나가듯

돌아오는 길섶에 앉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소리

그냥 내버려 두는 수밖에



 

♧ 이팝나무 - 이승복


신록의 푸른 숨결이

오월의 눈꽃 속에

그리움이 여물 즈음

살폿한 자태 뒤에 오는

공복(空腹)의 욕구


봄의 싱싱 바람이

가슴 파고든 손놀림

간지럼 입힌 미소는

사랑, 그 고운 사랑이

만개한 순결의 몸짓


추억을 화관 만들어

흰 눈처럼 머리에 얹고

붉게 익은 겨울 사랑을

회상하는 입하목*으로

오래 사랑하자던 님


여망의 날들 위해

젖어오던 눈물 흔적

흐드러진 이팝꽃 위에

오월 나비는 얼굴 맞대

입맞춤으로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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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목- 여름에 들어서는 입하에 꽃이 핀다 하여 이팝나무를 지칭함



 

♧ 이팝나무꽃 순정 - 姜大實


꽃이 아닙니다

우리 님 떠나던 어스름녘

신작로가에 애달피 늘어선 그 꽃은

꽃이 아닙니다

떠나는 우리 님 서러운 눈물입니다


꽃이 아닙니다

우리 님 말없이 가던 길에

해마다 서글피 찾아드는 새하얀 그 꽃은

진정 꽃이 아닙니다

기다리다 지친 내 처량한 그리움입니다


올해도 어느덧 봄은 가고

홀연히 떠나던 그날은 또다시 와

길섶에 이팝나무꽃 흐드러지는데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임이여

한번 가더니 그예

소식조차 없는 못 잊을 사랑이여


 

들리지 않으시나요

산그늘 속 소쩍새 처연한 울음소리가

보이지 않으시나요

강변 풀잎들 요동치는 몸부림이


걸음걸음 흘린 눈물자욱 찾아 밟고

사알짝 한 번 오소서

꿈길에 말 없이라도 가끔은

잊지 말고 들러 가소서


이팝나무꽃 흐드러지는 계절에.



 

♧ 이팝나무 - 김숙자

  

  용추사 이팝나무에 키 큰 물소리 나네, 유월 바람 불어와도 초록보다 더 푸른 삼매에 들었나, 봄은 다 가고 유월 더위 때문일까, 키 큰 이팝나무 맥 풀어져 하얀 삼매에 들어 있네, 하늘에 닿은 눈꽃등 아래 소쩍새 소리 사이로 아버지 걸어오시네, 아버지 발자국에서 소쩍 소쩍 소리가 나네

  아버지 소쩍새 소리를 양팔 간격으로 떼어 놓으시네 굳게 잠긴 사락정 대문 밖 마당에 개량종 채송화가 빨간 베갯모를 펼치네, 사르르 유월바람 오디 먹은 입술로 잔 발을 내리네, 파뿌리 같은 잔발로 어린 모를 쓸다가 아버지 하얗게 이팝나무 휘둘러보고 광목처럼 길게길게 언덕 넘어 가네

 



 

♧ 깊은 밤 이팝나무 숲은 등을 켜 든다 - 유수연


이팝나무 숲 속에 들어서자 한 겹 푸른 어둠이 덧칠해졌다

바위구절초나 금강초롱꽃도 푸른 물감을 한 자락 끌어 덮고 조용하다

햇살 중에 금빛 줄만 뽑아 몸 안에 빛을 뭉치는 반딧불이


제 짝을 찾을 때 낮 동안 애써 뭉친 빛을 가장 강하게 내쏘는

반딧불이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돌아와야 할 누군가를 기다린다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닐까

방향 표지판은 제대로 놓여 있는 걸까

아무래도 안 되겠어

제 몸을 태워 불을 밝히고 숲을 나서는 반딧불이

낮 동안 꾹꾹 눌러 뭉친 금빛 햇살로 길을 열어 놓는다

어둠으로 덮여 있던 이팝나무 잎 무성한 숲이 술렁인다

오랜 기다림으로 몸을 태우는 불빛이 까만 어둠에 상처처럼 박힌다

하나둘 가쁜 숨을 쉴 때마다 새살 밑의 그리움이 씀벅씀벅 불빛이 된다

보고 싶어 보고 싶어

기다림을 깜박이면서 금강초롱꽃에 앉아 호롱불을 밝혀 든다


이팝나무 숲이 반딧불이의 등불을 밝혀든 집 한 채로 서 있다

그 집 문을 밀고 들어서자 새살 밑에 뭉쳐 놓은

금빛 햇살이 일제히 일어서서 그를 향한 길을 열어 놓는다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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