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열하일기를 생각하며

차보살 다림화 2013. 7. 18. 19:44

열하일기를 생각하며  / 조윤수

 1780 713일 기축일.

  바람이 세게 불었다.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세수하고 머리 빗는 것이 왜 이토록 싫증이 나는지! 지새는 새벽하늘에는 총총한 별들이 마주 눈을 깜박일 때 마을 닭들은 번갈아 홰를 쳤다. 몇 리를 못 가서 안개는 자욱이 넓은 들을 먹어들어 수은 바다처럼 되었다. 의주 장사꾼 떨거지가 웅얼웅얼 무슨 이야기들을 하면서 길을 가는 것이 어렴풋이 꿈속만 같았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7월 13일 치를 들췄더니 이런 대목이 있었다.

 

  수필의 날 행사 때는  연암의 열하일기를 생각하면 한더위를 이겨내기가 좀 수월해진다.

  233년 전 연암은 사신 단을 따라 한양에서 북경까지 그리고 열하를 밟았다. 3개월여를 걸어서 또는 말을 타고 변변치 못한 숙박을 하면서도 새벽이나 늦은 밤까지 주변을 세심한 눈으로 관찰하고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통한 체험을 세세히 기록했다. 때로는 노숙하기도 했다. 문명화된 현대에 생각하면 마치 야전장 같은 여행을 했던 것이다. 715일에서 723일까지 9일 동안 562리 간의 여정을 <일신(馹迅)수필(隨筆)>이라 했다. ‘일신수필은 달리는 역마 위에서 구경하듯 성큼성큼 빨리 본 것을 휘뚜루마뚜루 내갈겨 썼다는 의미이다. 이때 공식적인 수필이란 말이 등장하여, 한국수필분과위원회에서 이를 기념하여 수필의 날을 제정했다고 한다.

  수필의 날에 참가하는 요즘 일행은 거기에 비하면 행복한 나들이였다. 좀 불편한 점조차도 신선한 체험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12일 여정은 일신수필을 쓰듯 주마간산으로 본 것을 겉모습이라도 내갈겨 쓸 수밖에 없다. 이제는 일신수필 같은 흥미꺼리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의 기록에서 미래의 꿈을 발견하고 '수필의 날' 선언문의 말처럼  수필이 진정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미래의 향연이고, 언어의 축제가 될 수 있을까, 꿈을 그려본다.

    

 

 

 

 

 

 

 

 

 

왼편부터 욕실, 주방, 이 간장 방,갓방

 

별채

 

기왓집 같았으면 마루에 창을 내고 후원이 보이도록 했을 것이고, 뒷 언덕에 장독을 놓았을 수도 있었으리라.

 

아랫집 색시들이 아침 문안 왔다.

 

 

마당 징검 돌.

 

 

이 마을 대부분의 집들은 민박을 위하여 옛 형식을 살려서 개조하였다고 한다. 문화재 마을이기에 정책적으로 지었다고 한다.

윗쪽에는 높으신 분들의 기왓집이고, 아래 집들은 서민과 하인들의 집이 둘러싸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반상의 제도가 형상화된 듯 해 보였다.

 

 

 

 

 

 

 

 

 

 

 

 

 

이 연꽃은 개량된 새 종의 꽃으로 겹꽃잎이다.

 

 

  2013713일 초복이다.

  오전엔 개었으나 한낮에 소낙비가 한 차례 내렸다.

  전 날, 경주 불국사와 안압지를 제각기 일별하듯 돌고 경주에서 20분 거리에 있다는 양동민속마을에서 한 밤을 지샜다. 한밤중에 도착하여 마을의 입구와 마을의 첫인상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다만 가로에 전등불빛이 없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내린 것만으로도  낯설었다.

그토록 한 밤이라도 자고 싶었던 옛 시골 초가집이었다. 양동마을은 수년 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고대문화의 박물관인 경주에서 조선시대 500여 년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것으로도 유명해졌다. 높은 곳에는 고관들의 기왓집이 있고 아래로는 일반 서민이나 하인들의 초가집이 에워싸고 있는 구조가 조선시대의 계급사회를 고스란히 형상화한 듯하다.

  양동마을은 보여주기 위한 마을이기 때문에 겉모습은 옛 모습이나 시설은 현대적인 편리함을 두루 갖추고 있다. 연암처럼 세수하고 머리 빗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수월한 편이다. 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는 이 철에는 자주 씻어야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한데, 그 당시에는 정말 그랬을 것 같아 짜증이나 불평이 자리 잡을 겨를은 없었다. 더운 물이 나오는 욕실도 있고 방에는 에어컨도 있었다. 별채도 있는 다섯 칸짜리 초가집이니 그래도 괜찮은 집이란다. 6.25때 잠시 피난 갔던 아버지의 고향 마을 같았다. 여러 사람이 한 욕실을 차례로 사용해야 되니까 기다리기도 했다. 더러는 마당의 우물에서 속옷 차림으로 세수하고 팔 다리를 씻는 회원도 있어 조선시대 미인도를 연출했다. 옛날에 우물가에서 등물하듯이 말이다. 그런 광경에서 나는 꼭 꿈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늦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캄캄한 속에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별채에서 공주 셋이서 새살떨며 웃는 소리는 계속되고, 먼 산의 쑥국새 소리, 개짓는 소리, 잠시 시각을 보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정말 새벽하늘은 캄캄하기만 한데, 연암의 시대처럼 닭들이 번갈아 홰를 쳤다. 어찌나 그 소리가 큰지 시끄러웠다. 어찌어찌 하다가 날이 밝아졌는데, 째쟁이들은 벌써 아침 단장을 하고 있었다. 옷 갈아입기가 귀찮았다. 옆 사람 말을 들으니 새벽 140분에 닭이 홰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니, 나는 그 시간에 잠시 잠이 든 모양이었다.

 

 

 

 

 

   가방을 챙겨들고 아침식사 시간 전에 마을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가 잠잤던 집은 산 밑에 있었기 때문에 주변 마을 풍경이 내려다보였다. 바로 옆에는 기와 고가가 있었지만 둘러 가 볼 수가 없었다. 어젯밤 집주인 할머니로부터 이 마을의 유래를 들었다. 소문으로 벌써 들어

알고는 있지만 현지 사람의 이야기로 다시 들으니 재미있었다. 이 마을은 여강 이씨와 경주 손씨, 모두 처가의 재산을 이어받고 서로 사돈이 되어 수 백 년의 선비 전통을 이어온 마을이다. 마을에 정자만도 열 개나 된다고 자랑했다. 물론 그 여강 이씨가 저 유명한 동국의 5대 문인에 든다는 조선 중종 때의 문인인 회재 이언적이다. 이언적에 대해서는 많이 조명이 되지 않았지만 정신이 부재한 현대에 반드시 거울이 될 만한 정신적 유산이 있으므로 앞으로 재인식될 것이다. 이언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의 훌륭한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노수신이란 데서 기리고 있을 뿐이다.

   집집에 민박집이란 표지판이 붙어 있다. 아침에 집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마당에는 작은 채마밭도 있고 우물가에 화초도 심어 보기 좋았다. 옛날식의 퍼세식 화장실도 있었다. 접시꽃이 마당 끝에서 전송했다. 마을의 문전옥답은 연을 심어 연밭이 잠시 더위를 잊게 했다. 연암도 마을에 도착하면 마을의 풍경을 그대로 그렸다. “가산 앞에는 길 나마 되는 큰 항아리를 놓았고 그 속에는 네댓 포기 연()을 심었다. 땅을 파고 한 간 폭이나 되는 나무통을 묻고는 한 쌍의 뜸부기를 기르고 있었다. 가산을 빙 둘러 종려나무, 장미꽃, 석류 등 화분 십여 분을 놓아두었다.” 우리가 아침식사를 했던 아랫집은 그런 풍경이었다. 자형 집 가운데는 각가지 꽃들을 화분에 심고 화단에는 포도송이도 달려 있었다. 옆집에는 새벽부터 홰를 쳤던 닭들이 우리 안에 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있어야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지. 모두 보여주기 위한 그림 같은 집이며 숙박업 하는 사람뿐이니 어쩌랴!

  연밭 둑을 거닐며 연꽃에 취해볼 수밖에. 못 가의 둑에도 큰 항아리를 묻고 연이 피어나고

있었다. 저쪽 물가에는 물오리도 몇 마리 어울려 놀고.

 

 

 

 

 

 

 

 

 

 

 

 

 

  원앙새 노는 모습 한 폭의 그림인가

   갓 피어난 연꽃이야 저 선경을 어이 알랴!”

  연암의 시 한 소절처럼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이 철엔 연꽃이 피었다는 것만으로도 격세지감을 줄일 수 있었다. 나는 연방 연암의 시절에 있었다. 그의 글을 따라 함께 걷고 있었다.

이언적의 고가나 손씨 고가 혹은 어젯밤 할머니가 자랑했던 정자는 한 곳도 찾을 수 없이

숙제로 남겨놓고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갔는데 적어도 마을 입구에 있는 문화관에라도 들어서 마을 전체를 조망하고 왔어야 했다. 다음 발걸음이 언제 될지 모르나 경주에 갈 때면 그 마을까지 다시 가서 숙박해야 할 것 같다.

   햇빛이 쨍한 날 시내에 나갔더니 꿈에서 깬 듯 옛날에서 지금으로 나들이 나온 것 같았다.

  지금 낯선 여행지에 온 듯 하루하루가 지난다. 이번에는 오래 묵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