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내 사랑, 화암사

차보살 다림화 2015. 8. 10. 12:38

 

 

 

 

 

 

 

 

 

 

 

 

 

 

 

 

 

 

 

 

 

 

 

화암사(花巖寺), 내 사랑/ 안도현

 

인간세(人間世)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 시집 『그리운 여우』(창작과 비평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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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찾아가는 길을 남에게 알려주려하지 않았던 ‘잘 늙은’ 절집 화암사는 전라북도 완주 불명산 산자락에 놓인 작고 허름한 사찰이다. 세월의 풍파에 부대껴 기둥은 거무튀튀하고 단청은 흐릿해졌으며 목어에는 두껍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어느 한 곳 반질반질한 곳 없이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붙은 화암사는 그 가는 길 또한 울퉁불퉁하다. ‘잘 나가는’ 절집 대개가 일주문을 통과해서 법당 앞까지 길이 놓여 차로 편히 갈 수 있는데 반하여, 불명산 중턱 화암사는 벼랑에 허리 낮추고 계곡을 아슬아슬하게 건너 어둑어둑한 참나무 숲을 따라 한 20분 가량 산길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절집이다.

그래서 화암사는 여럿이서 분답하게 찾아가는 절집이 아니라, 스스로 고요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찾아가면 좋은 곳이다. 여름한철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타박타박 걷다가 나무그늘에서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 한 자락에 땀을 식혔다가, 봄이었다면 현호색과 얼레지가 지천이었을 산길을 좀 더 걸어 화암사 우화루나 불명당 툇마루에 당도해 앉으면 절로 마음이 평온하고 겸손해지리라. ‘구름의 어깨를 치고가는 불명산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기도 할 것이고, ‘안마당에 먼저 와 있는’ 햇볕을 보며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한’ 자신을 되돌아보게도 하리라.

한 건축전문가는 이 절을 ‘환상적인 입지와 드라마틱한 진입로, 그리고 잘 짜여진 전체 구성만으로도 최고의 건축이다’라고 칭송했으니 시인이 ‘화암사, 내 사랑’이라며 오래도록 아껴가며 남몰래 찾고자했던 그 연유마저 알 것 같다. 하지만 반드시 그 같은 입지조건과 분위기를 갖추어야 내 마음의 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땅 어느 산자락이든 절이 있고 부처가 있으며 이끼 낀 돌계단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면 됐다. 지치고 헐벗은 육신을 잠시 벗어던지기에 부족함이 없다. 나도 4년 전 화암사에 가서 안도현의 또다른 시에 등장했던 ‘하얀 강아지’ 두 마리를 두리번거리며 찾았던 기억은 있지만 시인의 사랑을 가로채거나 공유할 궁리는 하지 않았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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