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를 나르는 옛길(차마고도)은 고생과 고통의 길(茶馬苦道)
숭고한 영혼의 하늘을 걷는 수만 척(尺 ) 높이의 길(茶馬高道)
그러므로, 또한 감히 아무나 갈 수 없는 외로운 길(茶馬孤道)"
아름다운 날
아름다운 길
전주수목원에서 봄향기를...
잎갈이
조윤수
졸가리만 남은 겨울나무가 갸륵하다. 눈이라도 내린다면 실가지 끝에도 축복이 쌓이리라. 잎을 여윈 나뭇가지들이 희망의 싹을 틔우기 위해 숨을 고르는 계절. 졸가리 끝까지 땅 밑에서 자양분을 끌어올리는 뿌리의 숨결이 있으리라. 회색빛 도화지에 나목들의 소묘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지난해를 떠올려본다, 힘들었지만, 힘든 줄 모르게 한 해가 급물살을 탔던 것 같다. 거리엔 세월호 침몰 사건의 노란 깃발이 여전히 나부끼고 있으며, 어수선한 뉴스가 끊임없이 보도되었다. 년 초부터 주 중에는 아들이 지방 근무하게 되어서 나로서는 새살림을 꾸리는 것 같았다. 아침저녁으로 학생을 보내고 맞는 것처럼 식사 시간을 맞추는 일도 새삼 힘들었지만, 한편으로 밥값을 하는 것 같아 보람과 즐거움도 있었다. 가을이 되자 산행의 마지막 고비를 넘는 것 같았다. 제4 수필집 <<나의 차마고도(茶馬孤道)>>가 마침내 2015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도서로 선정되는 영광도 얻었다. 오히려 문인으로서 책임감을 더 지게 된 것 같다.
편백 군락지로 든다. 빈 산 너머 푸른 숲이 이 겨울엔 유난히 짙푸르다. 벌써 숲 향이 내려앉아 온몸을 적신다. 숲으로 오르는 길은 아직 잔설이 녹는 중이다. 구름에 가려진 해가 곧 사라질 것 같은 시각, 잠시 흙을 밟는 즐거움을 누린다. 비탈진 길이지만 바닥에 쌓인 갈잎이 양탄자 같아서 발걸음을 떼기가 수월하다. 세한연후(歲寒然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푸른 줄 안다고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 저 푸른 잎나무가 거룩하게 보인다.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아본다. 나무처럼 미동 없이 고요하게 나무의 숨결에 가슴을 대어본다. 온몸으로 나무 향에 젖는다. 어쩌다 나무 밑으로 내려와 앉는 희부연 볕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새 숨결을 받는 것 같다. 사철 푸른 나무도 분명 잎갈이 할 때가 있다. 나무 밑에 바늘 갈잎들이 수북이 쌓인 걸 보면. 소나무는 1년생 잎과 2년생이 함께 있으므로 늘 푸르게 보인다. 나무는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언제 어떻게 잎을 떨구고 새잎을 키우는지 알 수 없다. 소나무의 새잎은 3년생 정도가 되면 노쇠하여 떨어진다고 한다. 더는 나무에 이득이 되지 않는단다. 그리하여 푸른 숲은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인간에게 치유의 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리라. 인간이 알아챌 수 없는 사이에 사계절 청량한 향을 모은다.
이 겨울에 나는 무엇을 여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일생을 살면서 묵은 잎을 떨구며 어떤 새잎을 만들고 성장했을까. 수많은 욕망의 잎을 무성히 나풀거리면서 다른 나뭇잎과 비교하며 살지나 않았을까. 지난 세월의 고통과 영광도 털고 다시는 욕망의 잎을 틔우지 않으리라. 끝내 바람의 승화가 되도록 도전 아닌 자연한 삶의 정진이 있을 뿐이다. 아직 새로운 잎갈이를 할 힘이 남았다면, 떨어낸 잎 진 세포층에 평화와 희망의 새순을 틔우도록 이제 호흡을 안으로 모으리라. 가녀린 졸가리들처럼 발끝과 손끝에서 머리끝으로 새 자양분을 호흡해야 한다. 심장의 박동이 습관에 낭비되지 않으려면 조용히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이리라. 사철 푸른 나무가 잎갈이를 하듯이 고독한 명상의 숲에서 영혼의 촉수를 세울 일이다. 사는 날까지 푸른 정신을 키워 청락(靑樂)한 삶의 무늬를 지니고 싶다. (2016/3/18, 전북도민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