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불모산 장유사

차보살 다림화 2016. 3. 22. 01:59

 

 

장유사

 

김해시 장유면의 불모산佛母山에 있는 장유사를 찾았다. 자동차 길이 잘 되어 있지만, 몹시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했다. 불모산이니, 부처의 어미니 격인 산인 점으로 보아 유서 깊은 산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입구에 장유폭포가 맞이하고 있으며, 계곡이 수려했다. 아직 새잎이 나지 않은 잡목이 우거진 산이 봄의 기운이 서리는 듯했다.

절은 산의 정상 바로 아래의 가파른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보면 김수로왕과 허황후에 얽힌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려 있다.

"붉은 돛을 단 큰 배를 타고 / 장장 2만 5천리의 긴 항해 끝에 / 남해의 별포 나룻목에 이른다. / 영접을 받으며 상륙한 다음 / 비달치고개에서 입고 있던 비단바지를 벗어 / 신령에게 고하는 의식을 치르고는 / 장유사 고개를 넘어 수로왕이 기다리고 있는 행궁에 가서 상면한다."

설화가 아닌 역사적 사건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김해시에는 이야기의 두 주인공인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능이 현존하고 있다. 황후가 아유타국에서 가져왔다는 파사의 돌탑이 이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채 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허왕후가 수로왕을 만났을 때 장유사는 지금의 이런 절은 아니었을 것이며, 이 높은 고개까지 올라올 필요도 없었으리라. 지금의 장유사 고개 쯤을 지나서 만나고 준비된 행궁에서 결혼식을 했지 않았을까.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수로왕과 처음 만났다는 곳이 장유사라고 한다. 공주와 수로왕과 공주의 오빠라는 장유화상의 설화가 묻어 있는 신비로운 절이다. 이 장유사에는 장유화상의 부도가 있다. 장유화상은 허왕후의 오빠로 보옥(寶玉)선인(仙人)이라고도 하며 수로왕의 7왕자를 데리고 가야산에 들어가 도를 배워 신선이 되었으며 지리산에 들어가 7왕자를 성불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지리산 반야봉 칠불사에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왕후는 모두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그 중 큰아들 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 셋째는 어머니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됐다. 나머지 일곱 왕자가 3년간 불법을 수도했다. 왕후가 아들들이 보고 싶어 자주 가야산을 찾자 장유화상은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왕자들을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왕후는 다시 지리산으로 아들들을 찾아갔으나 여전히 장유화상에 의해 제지당하였다.

그후 다시 지리산을 찾은 왕후를 장유화상은 반가이 맞으며 아들들이 성불했으니 만나라고 하였다.

그때 '어머니, 연못을 보면 저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라는 소리가 들려 연못을 보니 황금빛 가사를 걸친 금왕광불(金王光佛), 왕상불(王相佛), 왕행불(王行佛), 왕향불(王香佛), ()()(), 왕공불(王空佛) 등 일곱 생불(生佛)이 공중으로 올라고고 있었다.

그 후 김수로왕은 크게 기뻐하며 아들들이 공부하던 곳에 칠불사를 세웠다.

허보옥은 동생의 신행길을 함께 왔는데, 산에 들어가 부귀를 뜬구름과 같이 보며 불도(佛道)를 설경하고 산을 떠나지 않았다고 하여 장유불반(長遊不返)하여 장유화상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김해시 장유면 불모산 정상 부분에는 장유화상 사리탑으로 알려진 8각 원당형 부도가 있지만, 양식상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가락국기에는 장유화상의 허왕후 신행길 수행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에 대한 기록은 김해 <은하사 취운루 중수기>에 적혀 있다고 한다. 역시 후대의 기록이다. 장유화상에 대한 설화는 허왕후 도래설화의 불교적인 유색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칠불사에 가면 근처에도 차나무가 많다. 또한 조선 후기 차문화를 부흥시킨 초의선사 동상도 최근에 세웠다. 초의 선사가 여기에 머물면서

동다송을 집필했기 때문이지 싶다. 허씨가 인도에서 가지고 왔다는 차 씨앗은 여기에도 전해질 수 있었지 싶다. 칠불사 밑에 쌍계사 주변에

차나무의 시목지도 있으니 서로 상관이 있을 것도 같다.

 

 

 

 

 

 

 

 

장유화상이 암자를 짓고 수도했을 때는 작은 암자 정도였겠지만, 2천 년을 지나오면서 몇 번의 전환기가 있었으리라. 가장 오래된 흔적으로 장유화상의 부도란 탑이 고려말이나 조선 초의 양식이란 점에서 그 무렵에 절집이 세워지고 또 전쟁으로 없어진 후, 최근에 절집의 규모가 갖우어진 것 같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종탑루와 너른 마당 산 기슭에 대웅전과 요사채, 그 뒤 높은 곳에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앞 마당에 서면 산 아래는 안개 바다 그 자체다. 옛날에는 맑은 날이면 지금의 김해 들판은 바다였으며 진해와 부산까지 바다가

내려다 보였다고 한다.

 

 

 

대웅전 뒤로 돌아가면 부도탑으로 이어진다. 대웅전 용마루가 신비롭다. 용마루답게 두 용의 머리가 양쪽 치미를 장식하며 절을 수호한다.

꿈틀대는 용의 허리가 지붕 마루에 앉았다.  말 그대로 용마루다.

 

 

 

고려말 쯤에 만든 부도인 것 같다

기단 위 복련 위의 받침 돌에 앙, 그 위의 몸돌은 팔각 지붕을 이고 있는, 좀은 투박하며 강인한

체구를 하고 있다. 돌 위의 푸른 이끼가 세월의 무게처럼 설화로 피었다.

 

 

 

 

 

 

 

 

 

사리탑을 내려오는 계단 입구에 작은 불상들이 안치된 것은 오가는 사람들의 기원이 모인 것이지 싶다.

맑은 석간수 한 잔을 올리며 나누어 마시고 불모산에 서린 장유화상의 기원에 함께 하는 마음을

정화수 한 잔에 담을 수도 있으리라.

 

 

불모산 기슭으로 내리오는 작은 폭포수들이 소를 만들고 산 아래 언덕에 오르니 이 산의 영험한 기운을 받은

야생화가 봄기운을 먼저 토하고 있는 것을... 

 

언 땅을 뚫고 올라온 노루귀라는 야양화다.

분홍색, 화얀색, 이 신비로운 꽃을 보려고 많은 사진작가들이 렌즈를 들이댄다.

부엽토 사이에 부스럭대는 소리 한 점 내지 않고 언제 트는지도 모르는 사이 누구를 보려고

솟았는지 모른다. 가장 절정인 때를 맞이한 초봄의 생의 찬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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