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구름, 꽃 구름, 꽃 구름 속에서
늙은 가지에도 꽃은 피나니
조윤수
저 유명한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찬양한 봄날의 서정이야말로 더 바랄 것이 없다.
‘봄날 밤 도리원 연회에서 지은 시문의 서’와 같은 문장이다.
“무릇 천지는 만물이 쉬어가는 여관이요
시간은 긴 세월을 지나가는 나그네라
부평초 같은 인생 꿈같은데 즐긴다 한들 얼마나 되랴!
따뜻한 봄날의 아련한 경치로 나를 부르고
천지가 나에게 아름다운 경치를 빌려주었음이랴!”
벚꽃이 만개하여 전국이 꽃 대궐에 싸였다. 남도 다솔사의 적멸보궁에서 하루를 지냈다.
올라오는 길도 꽃 구름에 떠오는 것 같았다. 하동 쪽으로 올라오면 벚꽃 10리 길도 만나고 섬진강이 꽃 구름으로 흐를 것 같았다. 역시 하동포구에서부터 가로수의 벚꽃이 잔치를 하듯, 환희에 찬 듯했다. 벚꽃 터널을 이루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뒤따라오는 자동차도 서고 그 뒤차도 서고 사진을 찍는다. 혼자 가는 사람도 꽃 풍경을 그냥 갈 수 없는 듯.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인사를 나누었다. 하동포구 강 둘레길이 있었다. 데크 바닥에 떨어진 꽃 카펫을 밟으며 걷는 맛이 그윽했다. 언제 이런 풍경을 보았을까. 또다시 볼까. 천지의 은혜로움을 누리는 기쁨을 어찌 축복하지 않으랴! 이 순간 시간이란 긴 세월을 지나는 나그네이며 또 오늘 벚꽃 길을 지나는 나그네라! 잠시 누리는 행복은 꿈 같이 꿈 너머로 사라질 진데….
월요일인데도 쌍계사 근처에 오니까 자동차가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내려오던 눈꽃들이 잠시 나무에 붙어서 꽃구름으로 소복하게 쌓였다. 화개천 양쪽은 활짝 핀 벚꽃 길이 띠를 이룬다. 꽃나무 아래를 걷는 사람도 뭉게뭉게 모두 행복하다. 한 바퀴 돌아내려 오는 길은 자동차들이 밀려서 꽃 터널 속에서 천천히 꽃비를 감상하기도 한다. 옆길에 차를 세워두고 잠시 걸으면서 화개천을 내려다보고 빠질 듯한 꽃가지들을 아련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눈처럼 휘날리는 꽃잎을 손들어 전송하기도 하고 바닥에 떨어져 모인 꽃을 사뿐히 ‘즈려밟으며’ 가는 길이 어디 일지 마음으로 그리나, 알 수 없는 그 길. 같이 흐를 뿐이다.
오래된 벚나무들이 당당한 둥치에서 뻗은 굵은 가지를 늘어뜨리고 화개 천을 따라 줄 서고 있다. 시커먼 아래 둥치의 옆구리에서 불쑥 붉어져 나온 꽃송이가 얼마나 기특한지. 알 수 없다. 그 신통력. 꽃잎들은 어디를 갔다가 봄날 이맘때만 되면 다시 나무속으로 들어갈까. 나도 거기가 어딘지 알고 싶다. 가면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니, 떠나간 모든 임이 꽃잎이 되어 내려오는지도 모른다.
늙은 벚나무도 옆구리에서 툭툭 생생한 꽃잎을 틔워낸다. 꽃잎 날리는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은 옆구리에서 싯다르타 태자를 생산했지 않은가. 그리고 세상을 떠났지. 그리고……. 나도 늙었지만 싱싱한 정신으로 옆구리에서 오래 기억될 글줄이나 터졌으면…. 늙은 벚나무의 몸피에서 피워낸 벚꽃 같은. 아니 가슴에 쌓인 그리움이 꽃 같은 글줄이 되어 생산되면 좋으련만, 황홀하고 환장할 봄이 누군가의 가슴에서 오래토록 살 수 있는 열매 같은 문장으로 익어가도록.
이백이 저런 명문장을 이미 써버렸고 송한필이 짧은 인생을 이리 읊었으니 나는 즐거이 詩情을 음미하며 묵묵히 세월을 이겨보리라. “花開昨夜雨 花落今朝風 可憐一春事 往來風雨中” 어제 내린 비에 핀 꽃이 오늘 아침 비바람에 떨어지네, 가련타 봄날의 일이 비바람속에 오가네. 인생사가 또한 그러하니…. 어제 화사했던 꽃잎이 오늘 밤 비에 다 떨어지겠다. (2016.4.7 )
이런 길을 같이 걸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