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천리채(穿籬采)

차보살 다림화 2006. 6. 16. 20:12

  
천리채(穿籬采)

                                          

 

 

                                                                     신 진 탁

 

 

 

매미껍질 벗듯 육신의 옷을 가볍게 벗어 놓고 가고 싶었던 곳이 바로 산사였다. 그러나 하루 이틀이 지나 열흘이 되면서 자연의 섭리로 필수 영양분과 술의 욕구가 나타나 뼈아픈 통한의 몸부림을 쳐야했다.

그러나 불자들이 자기 믿음에 대한 무지함을 알면? 그리고 뒷전에 서서 입방아나 찧지 않을까? 걱정 속에서도 나는 기본적인 교리를 알아야만 하는 고비가 있었다. 스스로 자탄도 했다. 이런 고행은 공양을 하면 그때 잠시 뿐이고 다시 서운함을 넘어 외로움과 아픔들뿐이었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고 보니 몸이 점점 허약해지더니 어느 날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종합병원 입원실이었다. 외로웠던 마음을 달래주고 메말랐던 가슴에 감로수를 내려 주었다. 또 방향 잃은 영혼을 치유해주신 분이 바로 파란 눈의 프랑스 신부요, 의사였다. 

신부님은 종교를 초월해 나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시고 자애롭게 맑고 파란 눈으로 삶의 리듬을 바꿔준 그분이 식사를 하면서 같이 하자고 했다. 그리고 닭다리 한 점 떼 주며 포도주도 한 잔 곁들였다. 권하는 바람에 거절할 수가 없었고 그 후 여러 차례 인연이 되어 술 양도 늘었다. 차차 병이 완쾌되어 퇴원을 했다. 다시 산사를 찾았으나 마음 한구석엔 항시 죄스런 감이 엉켜있었다. 그래서 큰스님께 천주교 신자가 고해성사를 하듯 솔직히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큰스님은 아무런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천리채( 籬采)를 먹었군!" 하셨다.

"천리채가 무엇인가요?"하니 닭을 비롯해서 날짐승 고기를 일컫는다고 하셨다. 뚫을 천( ), 울타리 리(籬), 나물 채(采) 울타리를 뚫고 다니는 나물이라 는 것이었다.
땡감 물 옷에 두 무릎 뀷고 두 손 모아 합장을 해도 나의 영혼 속에 담겨 있는 그 눈이 파란 의사의 깊은 정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할 수 없이 산사생활을 청산하고 속세로 내려와 천주교에서 '안셀모'란 교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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