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일기

더 높은 환생을 위하여 (쟈스민 2)

차보살 다림화 2007. 10. 1. 16:39

 

 

 

 

더 높은 환생을 위하여
 -쟈스민 (2) -                                  
                                    
                                                                                                 
  
  쟈스민 꽃잎은 모두 하얀 색이 되었다. 다 핀 쟈스민 꽃은 채송화 만하다. 보라색이 점점 옅어지면서 끝내는 하얗게 바래 버린다. 힘없는 꽃잎이 뒤로 넘어져 주름지고 파리해지면서도 떨어지기 전까지 향을 낸다. 향기를 자아내려면 너무 힘들어 그렇게 바래버리는 것일까. 하얀 꽃잎 하나가 떨어진다. 소복 한 채 스스로 마지막 분향 올리고 말라서 오그라진 모습 그대로 나무 밑으로 곱게 돌아간다.
 
  한참을 망설이다 지난 가을 어느 날 나는 모진 마음을 먹고 또 쟈스민 나무의 잎을 모조리 따 주었다. 같이 빈 몸이 되어 기도하자는 마음으로. 겨우내 빈 가지로 있던 쟈스민 가지를 보면 정말 잎이 날까? 지난 해 체험을 하였지만 그래도 가끔 빈 가지를 눈여겨보며 기다렸다. 안타까운 성장통을 이겨낸 후, 이른 봄 가지가 가려운 듯 눈이 돋는 것 같았다. 하나씩 잎눈이 돋기 시작하더니, 여기저기 잎이 다시 피기 시작하고 빈 가지는 푸른 옷을 입어 따뜻했다.
  가느다란 꽃줄기 위의 꽃망울은 애기 손가락 끝마디만 하다. 그 앙증스런 꽃망울이 그렇게 몇 날 필 때를 기다리더니, 한번에 활짝 열지 못하고 배시시 벙글다가 날마다 조금씩 조심스레 피었다. 활짝 열린 꽃잎은 평면으로 펼쳤다가 색깔이 변하면서 나중에는 뒤로 접혀져서 꽃받침을 가린다.

  하루의 피로를 녹이는 시간이면 어디선가 묘한 향이 나를 어딘가로 실어간다.  고개가 절로 돌려지면 거기 쟈스민이 눈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를 위하여 분향을 올려주는 거룩한 기분이 들어 화분 쪽을 돌아보다 옷깃을 가다듬고 정좌하게 된다. 부처님께 가장 귀한 것을 올리는 공양 거리 중에 ‘향공양’ 이 들어 있지 않은가. 내 안의 부처가 소생하는 시간이 된다. 옛날부터 향은 부정을 없애고 몸과 마음을 맑게 함으로써 신명과 통한다 하였기에 거룩한 제사의식에 분향을 하여 왔던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욕구는 한계를 짖기 어려워서 좀처럼 오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맡는 것은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꽃을 보면 냄새를 맡아보게 되고 과일을 보아도 냄새를 맡아보게 되며, 음식은 여러 가지 냄새로 구미를 자극한다. 마음과학이 점점 밝혀지는 현대는 병의 치료에도 향기치료, 그림치료, 음악치료, 등을 활용하고 있으며 공부 잘하는 아이를 위하여 공부방의 색깔도 좀 더 신경을 쓰면 그 효과가 증명되고 있는 때다. 오감을 통하여 풍요로운 감각을 키워내게 되면 그것이 꽃받침이 되고 그 위에 고귀한 의식의 꽃을 피우게 되는 지도 모른다.

 

  벌나비들이 꽃들의 향에 의하여 모여들 듯이 식물들도 동물들도 그들 고유의 냄새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기에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외면을 꾸미는 일이 산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옛날에 향수의 대명사로 불리는 유럽의 샤넬을 선물 받은 적이 있어도 쟈스민 생향보다 좋지 않았다. 향내를 풍기는 나무는 향나무, 백란, 정향나무가 있고 그 많은 꽃들 중에 쟈스민도 한 목하여 중국에서는 쟈스민차도 생산하고 있다. 오룡차에 마른 쟈스민꽃이 섞인 차는 우리 입맛에는 별로이지만 중국의 식생활에는 맞는 모양이다.
  현대인에게 너무나 낯설기만 한 고대부터 중세까지 있었던 유럽의 치열한 향료전쟁. 향료를 구하기 위해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을 허비했던 길고 힘든 여정을 감안한다면 향 자체를 구하는 일은 신을 찾는 순례자의 길과도 통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조촐하게 차 한 잔 나누면, 차 맛인지 달콤한 쟈스민 맛인지 분간이 잘 안 된다. 맹탕 한 잔 마셔도 쟈스민차를 마시는 것과 같다. 그냥 쟈스민차를 마시게 된다. 밖에 나가면 쟈스민차 맛이 생각나서 얼른 집으로 오고 싶다.  현관을 들어서면 쟈스민이 사~악 나를 감싸며 반긴다. 청정한 향이 저절로 의식의 날개를 달아주는 것 같다. 향기가 안개처럼 나를 감싸면 신명과 통한다.

  이제 꼭 내가 여야 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가끔 물어 본다.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분명 짧아지고 있는 지금. 꽃이 지며 떨어지듯 나도 그런 날을 맞을 순간을 위하여 마지막까지 신명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리라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나무형은 작고 별 볼일 없는 쟈스민처럼 보잘것없는 내 마음의 뜰에서도 스스로 향을 발할 수 있다면 전체인‘나’ 를 위한 분향이 되리라.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의 길, 볼 품 없는 형상으로도 무심한 향을 발할 수 있으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을까.
  올 봄은 쟈스민으로 하여 행복하다. 가을이 되면 분갈이도 하고 일 년을 같이 보낸 감사와 참회를 하면서 잎을 따주는 의례를 해야 하리라. 보다 높은 환생을 위하여….
(2006년 4월을 보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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