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되어도 봄은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꽃샘, 잎샘이 이리도 많은가. 4월에 눈비가 내리다니! 나무 꽃들이 거의 다 피어가고 있는데... 벚꽃이 절정인 때, 벚꽃무리인가 눈꽃인가
'찬란한 슬픔의 봄'
조윤수
"모란이 피기까지는 4월에 눈이 내리다니! 지구마을이 혼란스럽다. 서해바다에서 천안함이 침몰되어 죽어간 장병들의 주검들이 더욱 비통해지는 날이었다. 풀란드에서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을 태운 비행기 추락 사건으로 많은 생명이 몰살당하였으니 이 꽃불 타는 봄날이 어찌 슬프지 않으랴! 역사 속의 잔인한 4월까지 기억해야 하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폴란드도 온 국민이 애도의 물결에 휩싸여 있을 것이다. 지금쯤 중국에서는 햇차 잎을 따는 손길이 봄볕에 사분사분 나비처럼 즐거운 춤사위 같을 텐데, 칭하이 위수현에 지진이 일어나서 온 마을이 또 산산조각이 났다. 이어서 아이슬랜드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나고 유럽의 항공사들이 난리를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피기도 전에 떨어지는 꽃봉오리처럼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떨어졌다. 하얗게 질려버린 이 땅의 봄. 제 목숨대로 한껏 피어난 후에라도 꽃이 지는 날은 서러운데! 채 피어나지도 못해보고 떨어져야만 하는 운명의 봄이라면 어찌 봄의 찬가를 부를 수 있으리. 꽃피는 4월의 찬란함이 잔인스럽게도 눈물겨운 아름다움을 피우고 또 핀다.
눈꽃을 헤치면서 눈부시게 벚나무를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고 또 찍는다. 길지 않을 영화로움을 마음에라도 담아보는 것이다. 눈이 많이 쏟아져서 희부연 벚꽃무리가 구름 꽃되어 처연하게 하늘에 파묻힌다. 금산사에는 고목이 된 벚나무가 많다. 몸통의 한 쪽이 부서지면서도 꽃을 피워 우리 마음 속에 희망을 심어준다. 벚나무는 생명이 길어도 백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단다. 한 시에 그토록 수많은 꽃을 피워내는 벚꽃은 꽃철마다 뿌리에서부터 젖 먹던 힘까지 한꺼번에 소진하는 지도 모른다. 늙은 허리춤에서도 꽃잎이 툭 불거지는 것을 볼 수 있으니….
오월의 모란을 노래한 민족의 시인이었던 김영랑( 1902-1950) 시인의 봄은 얼마나 아팠을까. 일제강점기에 잃어버린 민족혼, 자아의 상실감을 되찾으려 했던 안타까움에 '찬란한 슬픔의 봄'이란 시어(詩語)를 탄생시켰다. 암울한 민족의 환경 속에서는 봄이 왔지만 민족의 봄이 아니었다. 처절하도록 아름다웠던 슬픔을 절감한다. 금산사 담벼락 옆의 모란은 오늘은 꿈도 꾸지 못한다. 매화가 겨울과 봄 사이에서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고 이른 봄 고목의 잔가지에서 피어나는 인고의 상징이어서 희망이라면, 모란은 꽃샘바람과 황사로 점철되는 짧은 봄의 끝자락과 여름 사이에서 피어나니 지나가는 시간의 한계성을 말함일까. 생명의 유한성을 보고 더욱 슬퍼지는 찬란함이었다.
꽃밭의 수선화도 눈꽃에 떨면서 간들간들 무언가 속삭이는 듯했다. 자동차 지붕의 눈더미를 치우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음악도 틀지 못한 채, <침묵의 봄>을 묵상했다. 잠시 내리는 4월의 눈발 속의 꽃구름 터널을 지나오면서 그 아름다움 속에 우리는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가, 어떤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영랑이 기다린 희망 오월의 모란은 어떤 것이었을까. 오늘날 우리나라는 해방의 기쁨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 것인가. 아직도 북한과는 대치 국면이지만, 이제는 남북만을 따질 때도 아니다. 지구촌 마을 속의 우리다. 지구촌 사람들은 여기저기 혼란의 도가니에서 이 4월의 아픈 봄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는 희망을 놓치지 않아야겠지. 기다림의 뿌리가 희망이라면 우리는 희망 속에서 놓치고 있는 그 무엇을 찾아야 되는 것일까. 소망의 실현을 위해서, 생명의 순환을 위해서 자기의 자리에서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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