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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꽃사과 꽃 고운 자태

차보살 다림화 2010. 6. 14. 20:28

 

유채꽃 큰잔치를 시샘하는 안개와 가랑비가 내리던 어제.

우리는 직선거리 1km 정도 떨어진 구두리와 가문이, 쳇망오름에

다녀왔다. ‘가는 곳마다 비가 피해간다.’는 해설사 3기생들과의

산행이었지만, 번영로에서 남조로에 들어서는 순간 컴컴하다.


오전 중에 한 때 비가 내리고 오후에 개겠다는 예보가 있었기에    1

큰 걱정은 안했지만, 컴컴한 동굴 속으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해발 400m 정도 되는 지대여서 고사리가 솟았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구두리오름으로 진입하데, 성급한 고사리가 몇 개 보일뿐

며칠 동안 찬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아직은 철이 아닌 것 같다.


복수초는 거의 끝물이고, 남산제비나 흰제비, 개별꽃, 현호색 등은

춥거나 말거나 난만히 피어 우리를 맞는다. 가랑비가 조금 내렸으나

산행에는 지장이 없었고, 내심 꽃 잔치가 열리는 정석항공관에

가보려 했던 마음을 접고 남조로를 벗어나는 순간 비가 조금 내렸다.

그러나 제주시가지는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길이 말라있었다.



 

♧ 꽃사과 - 안경희


하루를 더 못견디고 잎들이

하르륵、하르륵、 바람에 져 내렸다.

지상의 목숨들 하나 둘 꺼져가는 소리도

이와 짐짓 다르지 않을 것이다.

꽃들은 울음을 남기지 않고서도 사뿐사뿐 잘도 지는데

떠나가는 사람들은 눈물을 남겼다.

꽃들이야 햇살 만나 그 나무에 다시 피면 그만이지만

우리 한 번도 그리운 사람의 환생을 목격한 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품안으로 은밀히 싹을 내리나 보다.

꽃을 만나 잎처럼、

잎을 만나 꽃처럼、

오늘 나의 뜨락에 올망졸망 과실들이 열고

잠든 아기 손 어느 샌가 꼭 쥐고 놓지 않는

꽃사과 한 알. 언제 주웠을까

자박 자박 걸음마 하며 꿈결엔 듯 다녀왔을까

너무 쪼끔 해서 구슬인양 아롱아롱

잠결에도 놓지 못하는 내 아기 손안에 꼭 잡힌

바알갛게 태열 앓는

애기꽃사과.

 



 

♧ 꽃사과가 익을 무렵 - 김영자

    

해마다 꽃사과가 익을 무렵

아파트 경비원들은 잔디를 깎았다. 

 

작은 사과 알 사이

빠알간 빛 사이사이

한 움큼씩 바람을 집어넣으며

잔디를 깎았다.


깊은 그리움을 깎아내고

몇 개의 산을 내려오면 


봄날 잔디에 새순이 돋듯

그리움 그 자리

환한 꽃사과 꽃 피면서

침묵의 바람 불겠다.

 



 

♧ 사과꽃이 필 때 - 김종제


사과 한 알

손바닥 가운데 올려놓고

빛 고운 살갗에

선뜻 입술 가까이 하지 못하는 봄날

가지에서 툭 떨어져

한 철 어둡고 찬 방에서 쓸쓸하게 보냈을

속내를 들여다보기 싫어

꽃 핀 날을 더듬어 보는 것이다

번뇌 같은 사과꽃이 피었을 때

눈감은 부석사를 찾아갔다

삐이걱, 불이문을 열고

진흙 묻은 발을 내밀었는데

손님도 없이

독경 소리가 봄꽃처럼 활짝 피었다

캄캄한 불 옆엔

사과 한 알이 덩그러이 놓여있고

꽃 내음새 대신

법당의 짙은 향내가

예불을 알리며 범종을 치고 있었다

누구 손을 잡고 있었는지

마음속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아득한 계곡에 누웠는데

꽃잎 같은 당신 손에

한 알 사과 같은 내가 놓여있었다

사과꽃이 필 때였다

당신과 내가 벌거벗고 놀았던

사월의 어느 날이었다

 

 

 

♧ 사과꽃 - 이향아

    

6.25 사변이 터지던 몇 해 후

이북에서 월남했다는 내 친구 경옥이

경옥이 얼굴은 사과꽃같이 작았다

목청을 떨며 사과꽃 노래를 불렀었다

이북에서 배웠다는 소련 노래 사과꽃

발바닥으로 마룻장 굴러 손뼉을 치며

아버지가 알면 혼찌검이 난다면서

그 애는 졸라대면 사과꽃을 불렀었다.

우리가 이남에서 미국 노래를 배울 때

경옥이는 이북에서 사과꽃을 배웠다.

지금은 수녀가 된 내 친구 경옥이

사과꽃보다 이쁘고 향기로운 경옥이

소련에 핀 사과꽃은 경옥이의 노래였다



 

♧ 사과꽃 향기 - 강세화

 

아침에 길을 가다 아파트 담장 너머

미소처럼 피어있는 사과꽃을 보았어요

내뻗은 나뭇가지가 얼마나 생생하던지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보았어요

이쁘게 비어지는 살냄새를 맡은 듯이

능금이 익는 생각에 얼마나 떨리던지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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