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흐드러졌다. 그런데도 꽃그늘 아래 한가로이 걷는 이가 없다.북적북적 장사꾼과 떠들거나 행사성 소란에 떠밀려 다닌다.사람은 많아도 사람답게 누리는 걸 아는 이가 적다.이러다 보니 산다는 게 싱겁다, 혹은 지친다. 고독, 열정, 고뇌,희망,사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알뜰살뜰 돈 좇는 돈의 노예가 되는 재미, 공허한 지식으로 자만하는 재미, 허무맹랑한 종교로 포장하는 위선의 재미. 이 모두 각양각색 인생의 포장지 아닌가. 포장지엔 참맛이 없다. 길들여진 인스턴트 맛쯤이나 될까. 사람은 가끔 두 발을 움직여 한바탕 바람이 휘감아도는 산야를 헤매어야 한다. 일렁이는 바다나 호수의 물과 함께 뒤척여야 한다. 초목이나 물, 그 앞에서 한없이 외로워져야 한다. 겸손해져야 한다.들녘이나 바다, 그 너머 바람을 바라보라. 바람은 그 너머에서 오고 그 너머로 간다. 한 바람이 달려갈 동안에 이미 과거가 된 고달픔이 눕고 한 바람이 달려올 동안에 미래의 불안과 죽음이 날을 세우고 일어선다. 덧없다. 없다. 텅 빈다. 마음이 무미(無味)가 된다. 홀로 서서 바람에 씻김굿을 하는 것이다. 그리곤 광대무변한 하늘을 눈부처한다. 대지를 늘 있는 그대로 둥글게 감싸 안고 있는, 높고 먼 하늘을 보라. 대지의 생명들은 끊임없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일지라도 하늘은 대지의 생사를 인식하지 않는다. 저 하늘같은 평상심을 닮아야 한다. 아이고, 또 덫에 걸렸다. 행불행, 호불호를 가르는 것은 마음의 장난질이다. 같은 단어로 말해도 그 뜻은 서로에게 다를 때가 많다. '마음이 어디 있나? 마음을 내놓아 보아라!' 나는 손바닥을 허공에 내밀고 나에게 질문한다. 봄안개 자욱한 하늘 아래 겨우 티끌 한 점으로 존재하는 내가 생각한다. 운명의 문은 열리면 들어갈 수는 있지만 스스로 열 수는 없다. 다만 살아가야 할 뿐, 인생의 완성은 죽음뿐이다. 삶의 마지막 안식처는 죽음뿐이다. 죽음에 당도하기까지 인생의 주인은 삶이다. 아직, 나는 살아있다. 이 세상 삶의 주인은 나다. 꽃그늘 아래 걸어가는데 통증이 심하게 일렁거린다. 통증이 살아있는 증거인 양 몸속에 들락거린다. 통증이 안면을 두드리고 손가락을 쑤셔보고, 팔꿈치를 여닫아대고 허리를 비틀어댄다. 그래도 겁낼 건 없다. 어차피 대문 밖이 저승길이요 물 한 모금 마시다가도 저승사자가 호명하면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했다. 그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언제 달려가야 할지도 모르는 저승길에 마음을 쓰는 건 삶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아프니까 살아있는 것이다. 저 들판에 꽃 피고 꽃 지듯이 욕심 없이, 고이는 듯 멈춘 듯 흘러가는 물처럼 걸림 없이, 높아도 낮아도 하늘처럼 흔들림 없이, 일심으로 사는 일에 전념해야겠다. 잘 먹고 자는 일, 잘 놀고 일하는 일은 나의 파랑새며, 이 모두 생(生)놀이의 필수원소다. 업은 아기를 세 면 찾듯이, 삶을 업은 채 삶을 잃어버렸다고 한숨을 쉬었다. 꽃잎이 하르르 날아 내린다. 어리석은 줄 알았으면 미망에서 깨어나라, 싱거운 사람아. *수필가 김용옥씨는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시와 수필을 넘나들며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시집 「누구의 밥숟가락이냐」 외3권, 수필집 「생각 한 잔 드시지요」 외4권, 화시집 「빛·마하·생성」이 있다.
정점(頂點)/ 김용옥
그는 변화하고 싶다. 어느 정점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정점에선 오래 머물 수 없다. 내려가는 길만이 살길이다. 욕망의 덫에 두뇌가 결박당한 채 갇혀 날마다 더 높이, 더 직선으로, 더 빽빽이, 칼로도 베어지지 않는, 쇠망치로도 부서지지 않는, 한 조각 한 조각 욕망으로 빚은 고층건물의 거리에 갇혀 그가 지나간다. 미로를 돌고 도는, 기어도 기어도 거기서 거기를 맴도는 벌레 같다, 지금, 그는.
일찍이 사람은 갇히기를 욕망했다. 자연을 버리고 집에 갇히기 시작한 후 현대인은 현대문명을 엄청나게 열애하여, 결국 공간분할의 시멘트벽에 갇히고 철골콘크리트에 갇혔다. 걷기를 버린 후 자동차에 갇히고 철마에 갇히고 비행기와 철선에 갇혔다. 더 빨리 더 깊이 더 높이 갇히며 스스로 갇히는 줄을 몰랐다.
그리하여, 날마다 갇혀 사는 그는, 날마다 자유를 찾듯이, 직선의 고층아파트의 문을 열고 외출한다. 자유를 그리워하듯이, 자동차와 지하전동차나 고속열차에 갇혀 혹은 비행기나 철선에 갇혀 공간과 시간을 횡단한다. 해와 달과 상관없이 기계로 시간을 인식하고, 물과 바람과 상관없이 돈으로 정화되는 숨을 쉰다. 도무지 갇히지 않아 비참한 건 그의 육체. 육체는 자연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육체의 두 손과 두 발로 걸어야 하고 일해야 하는 동물 혹은 사람이다.
그는 여전히 대지의 소산인 식물과 동물을 입으로 먹어야 사는 동물 혹은 사람이다. 사람은 살아있는 한 먹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못한다. 화학 알약 한 알 먹고 기계로 대신 배변하기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 기계 한 접시 삼키고 기계똥 누면 얼마나 편리할까만.
그는 변화하고 싶다. 문명의 덫에 갇혀 발버둥치던 그가 점점 욕망의 돈벌레가 되었다. 문명을 소유하려는 욕망 때문에. 처음엔 욕망의 두 손과 두 발이더니 점점점점 욕망의 손발이 갈퀴처럼 늘어나 지네발이 되어 지네로 변신했다. 더 박박 기는, 더 은밀한 구멍에 숨는, 건드리면 재빨리 독을 뿜는 독충이 되었다.
독충이 먹는 건 무엇이나 독(毒) 원료. 먹는 대로 제 목숨에 독을 품는다. 독충은 더 호화 찬란하게 치장된 색을 입는다. 독충의 공간은 아무나의 눈에 띄지 않게, 단단하게 갇힌 공간이다. 독충은 더 이상 사람들의 공간에서 살지 못한다. 위대하기를 바라지만 독충은 결국 독충일 뿐이다.
그는 변화하고 싶다. 이 새로운 바벨탑의 도시를 이룬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가 속한 곳에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 떠나고, 노무현 16대 대통령이 떠나고, 법정스님이 이 도시를, 이 지구를 떠났다.
그리고, 그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우리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머리와 손 사이엔 가슴이 있어야 한다."는 명제 혹은 인간의 진리를, 오래도록 생각한다. 그는 변화하고 싶다.
* 수필가 김용옥씨는 월간'시문학'으로 등단, 시와 수필을 넘나들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누구의 밥숟가락이냐' 외 3권, 수필집'생각 한 잔 드시지요' 외 4권, 화시집'빛·마하·생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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