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1일
드디어 러시아 행 비행기를 탑승한다.
오후 1시 비행기 출발인데, 탑승 준비 때문에 오전 10시 30분에 공항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전날 김포에서 가까운 아들네 집에서 하루 묵고 아침 일찍 출발해서 공항에서 기다렸다. 비행 시간은 단 두 시간이었는데 탑승 수속과 도착해서 항공 수속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하루가 다 지난다. 우리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면 4시간을 타야 한다. 러시아 항공이기 때문에 북한 영공을 날라오기 때문에 두 시간만 걸렸다.
블라디 공항은 단조로웠다. 복잡하게 사람이 많지도 않고, 건물도 드넓은 들판에 직각형 큰 건물만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후 4시 반에 공항을 벗어나서 버스에 올라 넓은 가로를 달렸는데, 가로수가 훤칠하게 키가 큰게 눈으로 들어왔다. 이름을 알 수 없었지만 초가을 빛을 띤 나무잎들은 초록빛이 퇴색한 듯 하지만 시원하게 보였다.
저녁 시간이 되어서 식사 장소로 갔다.
카페 같은 곳이었는데, 음식 주문이 차질이 있는 듯, 피자만 나왔다. 우리는 기내 음식이었던 토스트를 끄내어서 같이 먹었다.
토스트 속에 들은 것이 연어 저림 같았는데, 몹시 짜서 먹지 않았는데, 다른 빵과 같이 꿀을 발랐더니 먹을만하였다.
오래 씹을 수록 러시아 빵은 속이 불편하지 않았다.
숙소로 가서 방을 배정 받고 짐을 풀었다. 같이 가기로 한 일행이 가지 않게 되어서 혼자 독방을 쓴게 되었다.
다행이 욕실 사정이 좋아서 피로를 풀기 알맞았다.
9워 22일
날씨는 쾌청하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구름도 긴 맑은 날이며 시원한 날씨 였다.
먼저 찾은 장소가 독수리 전망대였다.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의 극동의 항구이고 군자전략지여서 개방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한다.
한국에서 지도를 보면 북한의 함경북도 끝 위가 블라디였는데, 지도 상으로 그쪽에 서면 북한 땅이 아래로 내려다 보일 것 같았다. 평면상 그러하지만, 그러한 기분을 안고 여기 온 것이다. 독수리 전망대에서 항구를 내려다 보면 현수교 하나가 바다에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고 있다. 그 바다를 헤쳐나가면 4시간여만에 북한의 어는 항구에 닿은다고 한다. 우리나라 동해시에서도 일주일에 한 차례씩 이 블라디에 오는 배가 있다고 한다.
동해가 내려다 보이고 현수교를 건너면 루스키 섬으로 들어간다. 블라디는 우리의 부산항 처럼 항구 건너편 높은 지역에 건물들이 모여 있다.
독수리 전망대에는 키릴 형제 동상이 서 있고 그 아래 줄에 연인들의 자물쇠가 모여 있다. 연인들이 이곳에 와서 사랑의 맹세를 하는 모양이다.
키릴 형제가 러시아 문자의 기원인 키릴 문자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러시아 문자는 눈에 익은듯 낯설었다. 아무리 보아도 뜻을 알 수 없다.
키릴 형제가 처음으로 알파벳 문자를 가지고 오다가 떨어뜨려서 알파벳이 거꾸러진 것이 많다고 하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분명 알파벳 문자인데
뒤집혀서 쓰인 글자가 많다. 키릴 형제를 기리는 뜻에서 독수리 전망대에 그들의 동상을 세운 듯 하다.
전망대에 오르는 언덕에는 갈대 같은 풀들과 가을 꽃이 한창이었다. 노란 계란 후라이 같은 꽃인데, 언뜻 보면 우리의 민들레처럼 보이지만 꽃은 개망초 큰것과 모양이 같으며 키도 크다. 또 하나는 크로바 꽃인데, 하얗지 않고 분홍색을 띠고 있다. 분홍색 크로바는 우리나라에서도 흔치 않고 최근에 임실 지방에서 처음 보았는데, 여기서 만나게 되니 그쪽 사람을 만난 듯 반가워서 자꾸만 가까이 들여다 보게 된다.
러시아 문자도 읽을 수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그들이 제국이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나라 말을 배우지 않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말로도 소통하지 않으니 나는 자주 꽃들에게 혹은 풀과 나뭇잎을 들여다보고 중얼거린다. 너희는 엊제부터 이곳에
자리잡고 살았느냐고.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를 아느냐고.
러시아 정교회 성당
러시아의 종교는 정교회다.
러시아는 기독교의 한 종파인 동방정교회를 국교로 받아들여서 다양한 미신적인 종교를 통합하여 국가의 전례로 삼은 것 같다.
국가의 존망과 개혁의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것 같다. 1917년 공산주의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붕과하자 정교회는 약 2제시만에 부활하였지만 소비에트 정권의 탄압을 받고, 그 후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정부와 교회의 타협이 이루어져 활동의 자유를 보장받게 되었다고 한다.
교회 내부에 들어가 보았다. 화려한 조각이 전면에 장식되었고 각 면마다 예수상과 성모상이나 성인상을 따로 배치하여 예배할 수 있게 되었다.
입구에 수건함이 있어서 예배하는 사람은 그 수건을 쓰고 나갈 때 벗어놓는것 같다. 모두 서서 예배드리는 것이 특징이다. 모스크바나 유럽의 중에 교회의 건축물보다는 싼 듯 하다고 누가 농을 할하지만 나름대로 웅대한 맛이 있다. 지붕 꼭대기가 양파 모양이 빛나는 채색이어서 멀리서도 특색 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마당의 꽃밭에서 다알리아를 만나고 참으로 반가웠다. 옛 친구를 만난 듯, 그리고 작은 구절초 닮은 국화꽃도.
그들을 마주하고 사진도 찍고 그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조각상 옆의 금잔화까지 놓치지 않고 들여다 보았다.
대답없는 대답, 그들도 언제 이곳에 왔을까. 겨울이면 이 동토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봄이 되면 꽃대를 올리고 여름과 가을까지 그들의 꽃말을 중얼거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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